홍북 ‘상하리 마애보살입상’(빈절골사지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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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 ‘상하리 마애보살입상’(빈절골사지 마애불)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05.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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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우의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7〉

홍성군 홍북읍 상하리 산1-1에 있는 ‘상하리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은 다른 이름으로 ‘빈절골사지 마애불’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2019년) 1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250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용봉산의 남서향골짜기의 용봉폭포 위에 있는 ‘상하리사지(빈절골사지)’로 알려진 사역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암반면에 광배를 포함한 높이 400cm, 폭 135cm로, 불상의 전체 높이는 297cm, 어깨너비는 122cm, 최대 너비는 135cm로 남서향으로 서있다. 

마애보살입상은 옆으로 길게 늘어진 눈의 모습이나 넓적한 얼굴 등의 표현, 낮은 부조로 양각하고, 하체로 갈수록 선각에 가깝게 표현한 방식 등이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돼 왔다. 통견아래는 양발이 뚜렷하게 양각으로 조각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마애보살입상의 지정사유는 이목구비의 표현, 보관의 양식적 특징, 장식성이 배제된 원형 광배의 표현 등 9~10세기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양식으로 판단되며, 제작 시기는 나말여초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상의 착의법이 대의 옷깃이 목둘레에 형성되면서 하반신까지 주름을 형성하는 형태로 이는 용봉산 마애불, 홍성의 고산사 석조여래입상, 상하리 가마밭골사지에서 발견돼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석조여래입상’ 등과 비슷한 형태로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유행하거나 동시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학술적, 문화재적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현재 마애보살입상은 일부 균열을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나 지의류 등으로 인한 생물학적 손상이 육안으로 확인되며, 균열로 인한 훼손이 진행될 소지가 있어 충남도 유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제도권 내에 편입함으로써 보존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시대 전기의 불교유적과 유물이 용봉산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용봉산이 이 시기 내포지역에서 불교 성지로 기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히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마애보살입상이 자리한 상하리사지는 지난 2018년 6월 시굴조사를 통해 대형석축을 기반으로 하는 건물지, 탑지 등과 함께 인화문토기, 청자정병편, 치미편, 납석제호 등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기도 했다. 특히 용봉산 지역은 태봉, 고려, 후백제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홍주지역 호족들이 후삼국을 거치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의 열두 번째 부인인 흥복원부인(興福院夫人) 홍씨(洪氏)를 배출한 지역으로 ‘상하리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은 이러한 배경에서 조성된 용봉산 지역 불상 조성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면에서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해 불신을 조각하는 기법은 안동 이천동 석불상과 파주 용미리 석불상 등 같은 시대의 불상에 자주 보이며, 전체적으로 풍기는 토속적인 지방양식은 관촉사 미륵보살입상, 괴산 미륵리석불입상 등 충청도 지방에서 나타나는 양식과 같다는 평가다.

그 옛날 용봉산 일대를 99암자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때는 숲이 우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치 또한 뛰어나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암자가 무려 99개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곳곳에 산재돼 있었던 절터로도 그 증거가 되고도 남을만하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불교유적과 유물이 용봉산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용봉산 지역이 이 시기 내포지역에서 불교 성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3년부터 시행하는 비지정 주요 폐사지 발굴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진 상하리 사지(寺址) 발굴조사에서 건물터와 유적 12기, 높이가 7㎝인 소형 금동불입상, 청동방울 조각 등을 찾아냈다. 상하리 사지는 용봉산 정상부에서 남동쪽으로 향하는 능선 중단부에 조성한 산지 가람이다. 건물은 경사지에 대형 석축(石築)을 세워 건립했다. 건물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하며 건물 배치가 평지의 사찰처럼 정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금동불과 청동방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건물터에서 출토됐다. 불상은 대좌와 일체형이며,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장식기와인 치미 조각, 막새 조각 등이 확인됐다. 용봉산은 홍성팔경 중 제1경으로, 정상이 해발 381m로 능선을 따라 많은 불교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불교문화유적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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