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 100주년 ‘단장지통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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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100주년 ‘단장지통비’ 바꿔야
  • 이상권 변호사
  • 승인 2020.07.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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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16〉

단장지통비를 그대로 두고 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겠는가?

홍성군이 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음악회와 보은행사를 오는 10월 24∼25일 양일간 김좌진 장군 생가지와 홍주읍성 일원에서 개최한다. 홍성군으로서는 매우 뜻 깊은 해이고, 군민들로서는 크게 자랑스러워해도 누가 무어라 하지 않을 당연한 2020년이다.

장군의 생가지에 가면 정문을 들어서서 왼편에 ‘백야 김좌진 장군 어록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석에 새겨진 그 어록의 제목이 ‘단장지통’이다. 한편 생가지 옆에 조성된 장군의 사당에 가면 장군의 흉상 옆에 장군의 일대기가 연혁별로 기록돼 있으며, 그 아래에 역시 ‘단장지통’이라는 제목 아래 생가지 어록비에 있는 어록(?)이 적혀있다. 기념행사에 오는 한글 해독자들은 누구나 읽어보고 갈 것이 틀림없는 그 ‘어록’은 아래와 같다.

 단장지통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우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 없구나.


그런데 장군은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신 바가 없으니 위 글에 ‘어록(語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장군은 1905년 만주로 망명하면서 아래와 같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漢詩)를 지었다고 한다.

刀頭風動關山月(도두풍동관산월) 
劍末霜寒故國心(검말상한고국심)
三千槿域倭何事(삼천근역왜하사)
不斷腥塵一掃尋(부단성진일소심)


장군은 ‘어록비’와 같은 한글로 된 시를 쓴 적도 없고, ‘단장지통’이라는 제목도 후세에 누군가가 위 한시를 한글로 번역하면서 임의로 붙인 제목일 뿐이며, 장군은 위 한시(漢詩)에도 제목(詩題)을 붙인 적이 없다. 장군의 한시를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직역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첫 구(句) : 칼머리(刀頭), 바람이 움직인다(風動), 고향의 달(關山月)
- 둘째 구(句) : 칼끝(劍末), 서리처럼 차다(霜寒), 고국을 생각하는 마음(故國心)
- 셋째 구(句) : 삼천리(三千), 우리 강토(槿域), 왜가(倭), 어쩐 일(何事)
- 넷째 구(句) : 부단히(不斷), 비린내 나는 티끌(腥塵), 싹쓸어버리고(一掃), 토벌하다(尋)
이 중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을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 없구나’로 번역한 부분이다. 어떤 분이 이런 번역을 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이 번역을 심하게 평가한다면, 번역이 아니라 장군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장군의 이 한시를 해석한 다른 어떤 분은 이 구절을 ‘내 쉬임 없이 피 흘려 왜적을 물리치고 진정 님의 조국 찾고야 말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 번역이 좀 더 원문의 뜻에 가깝다. 장군의 시 한 편을 더 보면 그 진정한 뜻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1920년 5월 장군이 북로군정서 사령관 겸 사관연성소 소장일 당시 사관 입소식을 마치고 지었다는 한시의 일부이다.

山營月下磨刀客(산영월하마도객)
鐵寨風前秣馬人(철채풍전말마인)
旌旗蔽日連千里(정기폐일연천리)
鼓角掀天動四隣(고각흔천동사린)
十載臥薪嘗膽志(십재와신상담지)
東浮玄海掃腥塵(동부현해소성진)


이 시의 번역을 동아일보 1969년 3·1절 특집 ‘저항의 어록’에 실린 대로 옮겨보자.

산 위의 병영 달빛 아래 칼 가는 나그네
철책성벽 바람 부는 앞에 말 먹이는 병사
깃발은 해를 가려 천리에 뻗어있고
고각소리 하늘을 들먹이고 사방 이웃을 뒤흔들도다.
십 년 동안 섶에 누워 쓴 쓸개를 맛본 뜻은
동쪽으로 동해를 타고넘어 비린내 나는 티끌을 쓸어버리고자 함이니라.


2011년 SBS TV의 광복절특집 2부 다큐드라마 ‘북만벌 칼을 가는 나그네’의 타이틀은 이 시에서 따온 것이다. 위 두 편의 시에는 공통적인 구절이 있다. 각 마지막 구절의 ‘성진일소(腥塵一掃)’와 ‘소성진(掃腥塵)’은 ‘성진을 쓸어버린다’라는 의미로 결국 같은 뜻이다. ‘腥’은 ‘비릴 성’자이고 ‘塵’은 ‘티끌 진’자이므로 동아일보는 글자의 뜻을 그대로 직역해 ‘비린내 나는 티끌을 쓸어버리고자 함이니라’라고 했다. 

‘東浮玄海’의 ‘현해’는 현해탄(玄海灘; 대한해협의 일본식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고, ‘浮(부)’자는 ‘물에 뜨다’를 의미하는 글자이며, 또한 ‘腥’은 ‘비리다’는 뜻 외에 ‘군살 같은 것처럼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동부현해의 腥塵’은 ‘동쪽 바다건너에 있는 비린내 나는 쓸모없는 티끌’이라 할 수 있고, 결국 ‘왜’ 또는 ‘왜놈’을 비유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시의 마지막 구절을 지극히 간단하게 직역하면 ‘동쪽 현해탄의 물 위에 떠있는 성진을 쓸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풀어보면 의심할 여지없이 ‘동쪽 대한해협 건너의 왜 또는 왜놈을 소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매우 간명하게 ‘현해탄을 건너가서 원수를 무찌르세나’로 번역한 분도 있다. 매우 공감이 가는 번역이다.

‘단장지통’의 마지막 구절인 ‘不斷腥塵一掃尋(부단성진일소심)’에서 마지막 글자인 ‘尋(심)’자는 보통 ‘찾을 심’으로 쓰이지만 ‘치다, 토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다. 그러므로 이를 ‘쉼 없이 왜놈을 일소할 방도를 찾다’ 또는 ‘쉼 없이 왜놈을 일소하기 위해 토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같은 인물이 지은 시이고, 그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취지도 동일하다면, 같은 시어(詩語)의 의미도 같게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단장지통’의 종구인 ‘不斷腥塵一掃尋(부단성진일소심)’을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 없구나’로 해석하는 것은 어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원작자인 장군의 마음과 글을 제대로 헤아린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장군은 심성상 그런 한탄조의 푸념으로 자신의 시를 마무리할 분이 아니다. 번역 중에서 시를 번역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나에게는 그만한 재주가 없지만, 3년쯤 전에 주제넘게 아래처럼 시제를 붙이고 번역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

소심성진(掃尋腥塵)
칼머리 바람일어 고향달 아련한데
서리찬 검끝엔 나라생각 뿐이로다
삼천리 금수강산 왜놈이 웬말인가
한순도 쉬임없이 쪽발일 쓸으리라


쪽발이는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따로 들어가도록 앞부분이 나뉜 신발이나 버선을 신는 사람, 즉 일본인을 소나 돼지와 같이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의 발에 빗대어 비하해 이르는 말인데, 장군이 셋째 구(句)에서 ‘왜(倭’)라고 표현했다가 종구(終句)에서 ‘성진(腥塵)’이라고 표현한 속마음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말은 ‘쪽발이’일 것 같다. 생가지의 ‘어록비’는 어록비가 아닌 ‘시비’이므로 이것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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