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당, 17대 총선 자민련·19대 총선 자유선진당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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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당, 17대 총선 자민련·19대 총선 자유선진당 ‘몰락’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2.04.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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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자민련 마포 당사 △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 △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총재와 심대평 대표

국회 의석 25석(대전광역시 6석, 충남 10석, 충북 8석, 세종시 1석)이 걸려 있는 충청권은 선거 초반부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의 3당 경쟁구도로 진행됐다. 다만 홍성·예산 선거구의 경우 민주통합당이 무공천지역으로 결정하면서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통합진보당의 3파전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충청권 지역정당을 자처하던 자유선진당은 이번 제19대 총선판에서는 충남뿐만 아니라 대전·충청권에서 모두 힘이 빠진 상태로 시종일관 지역정당으로서 특별히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 유권자의 관심조차도 크게 끌지 못했던 결과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 소속 이상민, 김창수, 이용희 의원이 당을 떠났고, 자유선진당을 쌍끌이로 이끌던 이회창·심대평 두 전·현직 대표가 갈등을 빚으면서 이번 선거에서의 고전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기 때문이다. 세종시선거구가 신설되면서 자유선진당에서 심대평 대표가 직접 출마했지만 민주통합당에서 청양출신의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출마시키면서 심 대표마저도 고배를 마시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민련 이어 충청지역당 표방한 자유선진당 19대총선서 ‘몰락’
제19대 총선결과 최대의 이변 중 하나는 충청지역 정당을 표방했던 자유선진당의 몰락이다. 제18대 총선에서 18석을 얻었으나 이번 제19대 총선에서는 이회창 전 대표의 지역구 불출마, 심대평 대표의 세종시선거구에서 낙선.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는 하지만 충청인들에게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라는 지역정당의 몰락에 이은 자유선진당의 몰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전국 정당으로의 진입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한때 자민련은 창당 직후인 1995년 6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하면서 야당으로의 존립기반을 다졌다. 이어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는 충청권 20개 선거구(대전 7개, 충남 13개) 가운데 1개 선거구(당시 홍성·청양)를 제외한 19개 선거구를 휩쓸었음은 물론 한나라당의 심장인 대구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면서 국회의원 54석의 정당으로 성장하며, 제2의 야당으로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별다른 정책비전 없이 지역주의에 기대다가 제17대 총선에서 대 몰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원조로 불리는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은 1990년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YS) 당시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통해 ‘YS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뒤 YS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신민주공화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자민련이 탄생됐다. YS는 자신의 존립 기반을 닦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며 ‘대구·경북(TK) 홀대’ 인상을 심어줬고, JP는 그 틈을 파고들어 충청과 TK의 세력을 한 데 모아 54석의 막강 진용을 갖춘 ‘힘 있는 야당’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후 JP는 DJP 연합(김대중 전 대통령(DJ)+JP)을 탄생시키며, 국무총리를 맡아 일부 장관까지 입각시키면서 공동 정권의 절반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나 DJ의 ‘내각제 약속 파기’로 DJP 공동 정권은 붕괴됐고, 자민련도 서서히 몰락해 제17대 총선에서 4석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낳았으며, 결국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JP도 낙선해 국회의원 10선의 꿈을 접고 정치권에서 멀어지게 됐다.

자민련은 1997년엔 DJP 공조를 통해 공동 정권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제16대 총선에서는 17개 선거구(대전 6개, 충남 11개)에서 9개 선거구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자력으로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수 없는 17석에 그치면서 몰락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몰락이 예고됐던 자민련은 제17대 4·15 총선에서 4석에 그치고, 정신적 대부인 JP가 퇴진하면서 당의 폐업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후 한나라당으로 흡수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후 일부 인사가 국민중심당을 만들어 현재의 자유선진당으로 연결되는 충청지역당의 명맥을 이어왔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은 김종필(JP) 전 총재가 이끈 자민련의 명맥을 잇고 있었지만 정국 운영의 영향력 면에서는 JP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간극을 보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5대 국회에서 자민련의 의석수는 54석이었다. 제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의 의석은 17석이었다. 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했다. 자민련이 지난 제16대 국회에서 몰락 조짐을 보일 때의 의석수와 같았다. 결국 자민련은 제17대 총선결과로 몰락을 길을 걷게 됐다. 자유선진당도 결과적으로 제19대 총선결과, 몰락하면서 자민련과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됐다. 결국 거대 여당을 이끌었던 이회창 전 대표가 집권을 목표로 야심차게 창당한 자유선진당은 충청권 정당을 표방한 심대평의 국민중심당과 합당했으나 자신의 대권도전 3수 실패와 함께 제18대 총선서 17석을 확보했으나 이번 총선 전 14석의 비교섭단체로 머물렀고, 결국 제19대 총선패배로 이어지며 제17대 총선서 4석을 차지하며 좌초한 자민련의 형국이 됐다.

자민련의 몰락은 DJP공동정권을 운영하다 내각제를 고리로 했던 약속이 깨지면서 지역만을 근거로 했을 때 정당의 생명력이 길 수 없다는 지역주의 정당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더불어 자유선진당의 몰락도 같은 맥락에서 일단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자민련의 몰락을 3김 정치의 종식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번 자유선진당의 몰락은 이회창과 심대평식의 정치 종식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어 향후 정계개편 등 충청권 정치지형의 변화에도 관심이 끌리는 대목이다. 새로운 충청권의 젊은 정치리더의 등장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자민련은 김종필(JP)전 총재와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내각책임제 추진’을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지난 1995년 3월에 창당했다. 이 보다 앞서 자민련의 전통은 1963년 김종필의 민주공화당 창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1987년 창당된 신민주공화당(민자당으로 합당)과 국민중심당을 거쳐 현재의 자유선진당까지 맥이 잇닿아 있다.

자민련, 17대 총선 지역구 4석, JP 비례대표 1번 후보로 ‘낙선’
제19대 총선이 끝난 자유선진당의 오늘은 과거 자민련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악순환이 재현된 셈이다. 따라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17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으며, 이때를 눈 여겨 봐야 할 것이다. 충청권의 제17대 총선 선거결과는 열린우리당 ‘압승’ 자민련 ‘몰락’ 한나라당 ‘참패’로 나타났다. 제17대 총선 개표결과 충청권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의 압도적 우세 속에 일부지역에서만 자민련 후보(보령·서천 류근찬, 부여·청양 김학원, 논산·계룡·금산 이인제, 당진 김낙성)와 한나라당 후보(홍성·예산 홍문표)가 당선됐다. 나머지 대전·충남북 전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모두 당선(24석 중 19석)됐다.

특히 자민련의 경우 김종필(JP)총재의 ‘국회의원 10선’이 예상됐지만 지역구에서 4석을 얻는데 그쳐 쇠락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JP는 10선 국회의원 등원을 목전에 두고 비례대표 1번이라는 배수의 진을 쳤지만 자민련은 비례대표 1번도 낙선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JP 비례대표 1번’ 배정은 노욕으로까지 인식되면서 유권자들에게 마지막 미련마저 거두게 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정당을 표방하던 자유선진당의 몰락을 보면서 냉정한 시각과 사고로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제17대 총선이 끝나고 당시 서울 마포에 있던 자유민주연합의 당사는 썰렁함 그 자체였다. 사무실을 비롯한 기자실조차도 텅 비어 있어 더 넓어 보였던 기억이다. 당시 11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자민련은 의원 1인에 당 대표 1인의 ‘1인 정당’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국회의원 4명을 당선시켰지만 이마저도 3명이 심대평(현 자유선진당 대표) 전 충남지사가 만든 국민중심당으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국민중심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의 심대평과 이회창이 결합하여 자유선진당을 탄생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 정당을 표방했지만 충청인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절망만 안겨주며, 뚜렷한 정책비전도 제시해 주지 못한 채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자유선진당의 앞날이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총선 파고’ 제17대 총선 자민련 ‘몰락’
제19대 총선에선 자유선진당 ‘몰락’
이러한 서곡은 지난해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가 전격 사퇴하면서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올해의 4·11 총선과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당내에 팽배한 위기감을 반영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회창은 사퇴의 변을 통해 “우리 당에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당대표직에서 물러서고자 한다”며 “우리 당이 어떻게 변화하느냐가 생존의 갈림길이 될 것이고, 그 변화를 위해 나를 묻어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자유선진당은 그때까지 전국 수권정당을 꿈꾸는 목표와는 달리 지역정당으로서도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해 올해의 총선과 대선에 대비한 ‘포석’을 깔기 위해 이회창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제1막인 제19대 총선에서 사실상의 완패로 끝나며, 제2막인 올해 12월의 대선을 바라보기에는 벌써부터 절망이 앞서는 분위기다. 오히려 당의 존립과 몰락을 걱정해야 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자유선진당의 현실이다.

자유선진당의 몰락은 총선 이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민심을 외면한 채 독선과 독단으로 운영되는 당의 속내가 읽히면서, 민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2004년의 제17대 총선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2004년 자민련이 ‘총선 파고’를 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과거가 있듯, 제19대 총선결과를 놓고 ‘자유선진당’이 ‘몰락’이란 악몽의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다는 분석에 설득력이 더하는 이유다. 이번 총선결과는 지역정당인 자유선진당의 고전에 힘입어(?) 4년을 벼려왔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약진을 보인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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