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구절암 마애불(洪城 九節庵 磨崖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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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구절암 마애불(洪城 九節庵 磨崖佛)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1.01.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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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30〉

·충남문화재자료 제361호(1998년 7월 25일 지정)

구절암(九節庵, 일명 칠절사)은 구항면 지정리 지석마을의 뒷산인 보개산(寶蓋山, 274m) 남동쪽 정상부에 위치한다. 보개산은 홍성의 진산인 월산(月山)이 남쪽으로 달리다가 동(남산)·서(보개산)에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보개산은 서쪽에 해당한다. 구절암은 중건기에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사력(寺歷)은 알지 못한다. 다만 강희(康熙, 서기 1662∼1722년까지 사용됐던 청나라 강희제의 연호)라는 연호(年號)가 새겨진 조선시대의 기와편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볼 때, 구절암은 늦어도 1662∼1722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사찰의 조영(造營)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구절암에 대한 사력을 알려주는 사찰의 중건기(불기 2512년에 작성)에 의하면 보개산은 보개(寶蓋) 여래(如來)라는 부처의 명칭에서 유래하는데, 이곳에 만들어진 구절암은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해 절의 흔적만 남아 있었는데, 주지(住持) 조만호(趙萬鎬)가 개탄하면서 신도회장 김상갑(金上甲)과 협력해 서울의 답십리에 사는 김영상(金永商)의 희사에 의해 절을 중건(重建)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200여 평 남짓한 사역(寺域)에는 법당 건물 1동과 산신각 건물 1동, 요사채 1동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홍성 구절암 마애불(洪城 九節庵 磨崖佛)이 있다.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 산101-2 보개산 구절암 경내에 조성된 홍성 구절암마애불은 충남문화재자료 361호(1998년 7월 25일 지정)로 지정됐다. 마애여래좌상은 보개산 남쪽으로 솟아 오른 바위면의 동남쪽에 불상을 조각할 부분만을 다듬은 뒤에 선각(線刻)으로 앙연좌(仰蓮座; 위로 향한 연꽃)의 대좌(臺座; 밑받침)를 새기고 그 위에 좌상의 마애불을 새겼다. 높이는 대략 320cm이고 얼굴높이는 130cm이며 신체부위는 190cm, 폭은 190cm로 마애여래좌상으로는 큰 편에 속한다. 고려시대(13~14세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마애불의 형식이 보인다는 평가다. 
구절암의 마애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선각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마애불의 얼굴은 신체에 비해 매우 크게 표현했다.

특히 선각으로 소담스럽게 처리한 육계(肉髻; 부처님의 덕을 표현한 것으로 머리 위에 작은 또 하나의 머리가 있는 것으로 표현됨)와 소발(素髮; 머리카락이 없는 모습)은 간결하면서도 인자하게 표현하고자 한 부처의 상호(相好; 부처의 인상)와 잘 어울린다. 아울러 얕지만 돋을새김의 방법을 사용한 상호는 마애불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기도 하다. 이마에는 뚜렷하고도 깊게 백호(白毫; 부처님의 이마 가운데에 난 흰털을 표시한 것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 가장 강한 빛이 나타난다고 함)를 표현했으며, 그 밑으로 인중 부분은 깊게 조각하고 끝으로 갈수록 얕게 표현한 반원의 눈썹이 아름답다. 눈은 코와 붙여 조각했는데 좁고 길게 치켜뜬 모습이지만 초리를 살짝 내리고 있어 근엄함보다는 인자함을 보이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코는 좁은 인중 아래로 밑 부분을 매우 넓게 표현해 뭉툭한 모습이지만 이 마애불의 표현 가운데 가장 돋을새김이 강한 곳으로 보인다. 살짝 다문 듯한 입은 적당한 두께의 입술과 얼굴의 비례에 잘 어울리면서 전체적인 상호의 모습과 함께 인자함을 더하고 있다. 귀는 백호의 위치에서 목 부분까지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근엄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인자함을 갖춘 부처님의 상호이다. 목에는 삼도(三道; 부처님의 덕을 표현한 것으로 목에 표현된 3선)가 매우 뚜렷하게 조각됐는데, 마애불의 위치에서 볼 때 왼쪽 부분을 좀 더 깊게 표현하고 점차 오른쪽으로 갈수록 얕게 처리했다. 삼도의 두께도 달리 표현해 선각의 마애불이지만 선의 강약과 두께의 표현을 통해 간결한 표현 속에서도 불상의 모습을 최대한 표현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신체는 통견의 법의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속에 나타난 둥글게 처리된 작은 어깨와 볼륨이 없이 밋밋하게 처리된 가슴, 전체적으로 얼굴의 크기에 비해 작게 표현된 체구는 전체적으로 거구의 당당한 모습을 잃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과 왼손을 들어 가슴에 모으고 있는데 부식된 바위 면으로 인해 왼손의 모습은 명확하지가 않은 편이다. 다만 확인 가능한 수인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손을 곧게 편 자세에서 손등을 밖으로 보인 다음 약지와 종지를 약간 구부린 듯 표현했으며, 왼손은 엄지의 표현만을 살펴볼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오른손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처리됐다. 아마도 구품인(九品印)내지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체는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했는데, 무릎과 다리의 표현은 보이지 않고 위로 향한 발바닥만 양 옆으로 대칭되도록 표현했다. 아울러 위로 향한 발바닥에는 정확하게 다섯 개씩 발가락의 표현을 잊지 않았다. 

법의는 통견 식으로 옷 주름의 표현이 거의 없이 간결한 선 처리만으로 법의를 표현했다. 가슴 앞에서 여민 법의는 어깨에서 가슴 선으로 내려오는 선은 1조의 선으로 구획했고, 오른쪽에서는 팔을 구분하기 위해 1조의 선을 추가했다. 왼팔에는 2중의 사각형을 표현해 약간의 옷 주름을 표현했다. 한편 법의는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까지 길게 덮은 것으로 처리됐는데 가운데 부분에서 2조의 U자형 옷 주름이 나타난다. 대좌는 앙련좌로 역시 선각이다. 현재 확인되는 연꽃잎은 다섯 잎만이 보일 뿐이나 분명히 앙련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부각돼 비례는 어색하나 강약의 선 처리, 중요한 부분의 돋을새김 등은 간결하게 처리하면서도 근엄함 속에 인자함을 함께 갖춘 부처님을 표현하고자 했던 조각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마애불 앞으로 조그만 바위 그늘이 있는데 그곳에는 조성 당시의 것으로 직접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상하 종서의 명문이 있다. 명문에 의하면 이 마애불은 미륵불로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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