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역사·발전의 원천 대전천, 대전의 정체성 대표
상태바
대전의 역사·발전의 원천 대전천, 대전의 정체성 대표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1.05.09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심속 자연하천, 생명과 문화가 흐른다 〈2〉

대전천, 동구 하소동~대덕구 오정동 22.4km 물줄기, 대전도심 3대 하천
1974년 목척교 위·아래쪽 대전천 시멘트 복개, 중앙데파트·홍명상가 세워
1932년 충남도청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2012년 홍성·예산으로 이전해
역사문화자원을 관광 콘텐츠로 재조명 ‘대전근대문화유산탐방로’ 조성돼

 

조선 전기(1531)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밭’이란 우리말 지명이 문헌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곳이 지금의 ‘대전’이다. 공주목편의 산천 항목에 ‘대전천(大田川)은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는데, 전라도 금산군에서 발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대전’이란 명칭은 1872년 지방지도의 공주목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장시 항목에 ‘대전장’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대전장은 산내면 대전리에서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읍으로8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전’이란 명칭의 공식적인 행정명 사용은 1895년(고종32) 지방관제 개편 때부터다. 전국을 23부로 통폐합했을 때, 공주부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 산내면 마을의 행정명으로 ‘대전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1935년 일제에 의해 부제가 실시되면서 대전부로 승격, 1949년 대전시로 개칭,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 1995년 대전광역시 개칭으로 현재에 이른다. 

이렇듯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대전천’의 명칭이 사용됐다. 지금의 ‘대전천(大田川)’은 동구 하소동에서 대덕구 오정동까지 22.4km의 물줄기를 갖고 있는 도심의 중심을 흐르는 대전의 3대 하천 중 가장 작은 하천이다. 대전천은 물길이 대전에서 시작되는 유일한 하천으로 대동천, 대사천, 오정천 등의 지류를 거느린다. 대전천의 발원지는 해발 537m인 만인산이다. 만인산의 줄기 하나는 보문산으로 또 한줄기는 식장산을 거쳐 계족산에 이른다. 만인산의 남쪽 기슭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의 태실이 있을 만큼 예부터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산이다.
 

대전천의 목척교에 세워졌던 홍명상가 교각.

■ 대전천, 한밭 넓은 벌판 둘로 나누는 역할
‘대전천(大田川)’은 지금의 동구와 중구의 경계를 이루며 한밭 넓은 벌판을 둘로 나누는 역할을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는 대전천변 버드나무에 많은 동학군의 시신들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해 온다. 이와 같은 아픔을 지닌 대전천에는 1904년 대전역이 생기고 기차가 달리기 시작할 때도 다리 하나가 없었다. 그저 징검다리가 여기 저기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대전의 인구가 늘어나 대전천 서쪽, 그러니까 지금의 은행동 지역에까지 주택이 늘어나자 1912년 나무로 된 다리지만 제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목척교가 탄생했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1932년에는 대전역과 도청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와 함께 목척교도 나무다리에서 콘크리트 교량으로 탈바꿈 했다. 특히 6·25한국전쟁 때는 목척교가 피란민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전쟁 통에 헤어진 혈육을 만나기 위해 목척교에서 무한정 기다리기도 하고 전보를 듣기도 했던 것이다. 목척교가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 것이다. 

1974년에는 목척교의 위와 아래쪽 대전천을 시멘트로 복개를 하고 그 위에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라는 고층 상가를 세웠다. 자연환경을 거역하는 두 건물은 많은 잡음을 일으키며 흉물스럽게 서 있다가 2008~2009년 모두 철거됨으로써 목척교는 다시 다리의 모습을 되찾았다. 35년의 긴 세월 동안, 그렇게 목척교는 모습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옛 목척교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됐는데 오히려 ‘다리의 맛’을 잃은 이미지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아름다운 강과 다리는 도시의 굉장한 자산이다. 그런데 대전천은 그 값진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하상도로라는 교통의 편의성 때문에 하천변이 콘크리트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전천은 한밭 넓은 벌판을 둘로 나누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대전은 일제의 식민지 자원 수탈과 맞물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철도가 계획되고 1904년 지금의 자리에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촌락을 형성했고 대전은 점차 도시로 발전했는데 그 중심이 바로 현재 ‘대전의 원도심’으로 불리는 곳이다. 일제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가로축, 세로축으로 신작로를 만들었다. 각각 지금의 대전로와 중앙로다. 일제는 특히 경부선철도 건설과 맞물려 호남선철도도 개통했는데 대전을 그 분기점으로 삼았다. 최대한 산지를 피해야 철도건설이 빨라지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 바로 대전이다. 대전이 일약 교통의 요지로 급부상하자 대전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까지 대전으로 이전(1932년)시켜 대전을 충남의 수부도시로 만들었던 것이다. 충남도청이 다시 충남으로 환원돼 홍성과 예산의 내포신도시로 이전한 것이 2012년 말이니, 꼬박 80년간 충남의 심장부가 대전에 있었던 셈이다.
 

대전천의 발원지인 만인산 봉수레미골.
대전천의 발원지인 만인산 봉수레미골.

■대전천,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천
대전이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천은 대전천이다. 이 물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시민 생활에 필요한 용수를 대전천이 공급했다. 대전천은 유등천·갑천과 달리 발원지가 대전에 있다. 대전과 충남 금산의 경계에 있는 만인산 봉수레미골(동구 하소동)에서 발원해 대덕구 오정동에서 유등천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천연장은 22.4㎞에 이른다. 발원지부터 중구 옥계동 옥계교까지 14.6㎞ 구간은 지방2급 하천이고 여기서부터 다시 유등천 합류지점까지 7.8㎞은 지방1급으로 분류되는데 지방1급 하천 구간 유역이 ‘대전시내’로 불린다. 유등천과 합류하기 전 보문중·고등학교 앞에서 식장산에서 발원한 대동천을 흡수한다.

최근에는 대전시가 지역 하천의 치수 기능을 확보하면서 건강한 하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대전시에 따르면 ‘푸른 물길 프로젝트’가 2021년부터 본격 추진되고 있다. 하천 재해로부터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고 하천을 생태적으로 복원해 테마가 있는 미래형 여가·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2030년까지 10년 동안 국비와 시비 등 총사업비 468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프로젝트의 주요공간은 지역 3대 하천으로 꼽히는 갑천, 유등천, 대전천이다. 대전시가 구상하고 있는 선도사업(안)으로는 3대 하천 8.8㎞ 구간에 탐방로, 자연학습장, 캠핑장 등을 조성하는 3대하천 명소화 계획을 비롯해 갑천을 횡단하는 스카이워크 설치, 유등천 친수공간 경관 조성, 에코브리지와 생태교육관, 둘레길 등을 만드는 도안누리길 조성사업 등이다.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대전천 복원과 도심활성화 사업이다. 푸른 물길 프로젝트 총사업비의 75%를 차지하는 3500억 원을 필요로 하는 핵심사업은 5.7㎞에 달하는 하상도로 철거다. 하상도로는 20여 년 전인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단계적으로 건설됐고, 일부 구간은 환경정비, 목척교 주변 정비, 도로정비 등으로 폐쇄된 상태다. 

대전천에서 가장 유명한 건 목척교다. 대전역과 함께 대전천·목척교가 대전 원도심의 상징이며, 구심점인 이유다. 대전천을 중심으로 부흥기를 맞은 만큼 주변에 일제시대 주요 건축물들이 다수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문화자원을 관광 콘텐츠로 재조명하면서 ‘대전근대문화유산탐방로’를 조성했다. 옛 철도청보급창고 3호(등록문화재 제168호), 소제동 철도관사촌 옛 모습, 옛 조선식산은행(등록문화재 제19호),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 제18호), 옛 충남도관사촌(등록문화재 제101호), 대흥동성당(등록문화재 제643호),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등록문화재 제100호), 옛 대전여중 강당(등록문화재 제46호), 이밖에 1951년 건립된 옛 한성은행(옛 조흥은행, 현 신한은행, 등록문화재 제20호)과 1922년 건립된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등록문화재 제98호), 1930년 건립된 옛 대전전기 제3발전소(등록문화재 제99호) 등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현재 하상도로는 대전 동구·중구 원도심과 둔산권 신도심을 신호 통제 없이 빠르게 연결하고 있다. 지난해 중구 옥계동(절암소하천)에서 대덕구 오정동(유등천합류점)에 이르는 대전천(7.86㎞)이 지방하천에서 ‘국가하천’으로 승격된 것 역시 하상도로 철거를 통한 하천 복원으로 기울게 한 요소다. 승격 당시 정부는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으로 최소한의 유지관리만 이뤄져 하천 정비 수준이 미흡하고, 지방하천과 도심지 하천에 집중호우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국가 차원의 관리가 시급한 지방하천을 승격 대상으로 삼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가하천에 대해선 하천 정비, 유지관리에 전액 국비가 지원되므로 하상도로 철거를 포함한 하천 복원에 국비 투입의 문이 열린 동시에 대전시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셈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현재 도심지 심장을 흐르는 3대 하천이 치수 기능위주에서 치수적인 안정성은 물론 생태·역사·문화·레저 등 다양하고 복합된 자연친화적인 하천정비는 물론 도시재생과 균형발전 등 다양한 종합계획 수립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