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의 시인 정지용, 삶과 문학 가득 채운 ‘생가·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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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시인 정지용, 삶과 문학 가득 채운 ‘생가·문학관’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6.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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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4〉
정지용문학관 전경. 문학관 앞에 정지용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정지용문학관 전경. 문학관 앞에 정지용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정지용 생가 옆에는 삶과 문학, 대표적 작품 감상공간인 문학관 있어
정지용문학관, 지난 2005년 370평 규모로 건립 1년에 2만여 명 방문
정지용 생가, 1988년 해금조치 후 ‘지용회’노력 1996년에 원형 복원
“소월과 지용은 동갑이지만, 그들의 시를 보면 100년의 차이가 난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하계리 39)에는 우리에게 ‘향수(鄕愁)’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정지용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정지용 생가 옆에는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정지용문학관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가 정면에 있고 우측으로 정지용의 밀랍인형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양옆에 빈자리가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이 인형과 함께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소품이다. 정지용문학관의 문학전시실은 테마별로 정지용의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지용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문학지도, 시·산문집 초간본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정지용문학관 내부 전경.
정지용문학관 내부 전경.
정지용의 작품을 감상중인 관람객들.
정지용의 작품을 감상중인 관람객들.
소박한 규모의 정지용 생가.
소박한 규모의 정지용 생가.

■ 정지용의 삶과 문학으로 가득 채운 전시 공간
정지용문학관에 들어가 보면 벽면의 “지용연보”에는 정지용과 그의 시대를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문학사의 전개 속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곳이며, 스크린 북에 상영되는 연상을 통해 추억의 앨범을 넘기듯 시인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지용의 삶과 문학’은 연대기와 주제별로 향수, 바다와 거리, 나무와 산, 산문과 동시 등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또 ‘지용문학지도’는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정지용의 시문학에 관해 알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현대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그 흐름 속에서 정지용 시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인 할 수 있다.

‘시·산문집 초간본 전시’는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 정지용 시인의 시와 산문집 원본을 전시하고 육필원고와 초간본의 내용을 영상으로 감상 할 수 있도록 해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테마를 따라 가는 동선은 전시실의 벽 3면을 가득 채운 문학전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흥미성과 오락성을 갖춘 문학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법을 활용해 관람객이 즉석에서 문학을 체험 할 수 있다. 문학체험은 관람객이 양 손바닥을 내밀면 자신의 손은 스크린이 돼 손 위에 흐르는 시어를 읽어보며 느끼는 ‘손으로 느끼는 시’, 음악과 영상을 배경으로 성우의 시  낭송을 들으며 시를 폭넓게 이해 할 수 있는 ‘영상시화’,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가곡 향수를 감상 할 수 있는 ‘향수영상’, 이해하기 힘든 시어를 검색해 그 의미와 시적표현을 이해 할 수 있는 ‘시어검색’, 배경음악과 음악과 함께 자막으로 흐르는 정지용 시인의 시를 관람객이 직접 낭송해 볼 수 있는 ‘시 낭송 체험실’ 등은 정지용의 시문학 세계를 눈과 귀,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특별한 감동이 있는 공간이다. 그 밖에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 인간미 등을 서정적으로 회화적으로 그린 다큐멘타리 형식의 영상이 상영되는 ‘영상실’과 강좌, 시 토론, 세미나, 문학 동아리 활동 공간이다. 또 단체관람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 할 수 있는 열린 문학공간인 ‘문학교실’도 마련돼 있다.

옥천군은 지난 2005년 10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370평 규모로 정지용문학관을 건립하고 전시관(50평)과 영상실(4.6평), 문학교실(19평), 낭송실(2.2평), 관리실(8평), 기타시설(40.2평)등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개관 1년 만에 방문객 2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정지용과 함께 1930년대 우리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지용이 “조선 신시사상(新詩史上)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소월과 지용은 동갑이지만, 그들의 시를 보면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말했다. 이는 소월이 한국적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정통적이고 잠재적인 모국어를 구사했다면, 지용은 시적 대상의 정확한 묘사력과 언어조탁, 시적 기법의 혁신으로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星座) 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문학관 주변 주택가는 정지용과 관련된 화벽으로 꾸며져 있다.
문학관 주변 주택가는 정지용과 관련된 화벽으로 꾸며져 있다.
정지용문학관 앞 광장에는 트릭아트가 그려져 있다.
정지용문학관 앞 광장에는 트릭아트가 그려져 있다.

■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 ‘향수(鄕愁)’
정지용은 1902년 5월 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약상(藥商)을 경영해 여유 있는 생활을 누렸으나 어느 해 여름 홍수로 집과 재산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의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동생 둘이 있었던 정지용의 아명은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 해 지룡(池龍)이었고, 이 발음을 따서 본명은 지용(芝溶)으로 했다고 한다. 세례명은 프란시스코다.

정지용 생가는 1988년 정지용 시인의 해금조치가 있은 뒤 ‘지용회’의 노력으로 1996년에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정지용 생가의 사립문을 들어서니 왼쪽으로 동그란 우물과 키 작은 굴뚝, 우물 옆 담장 밑에 장독대가 있다. 그 옆으로 본채가 사랑채와 마주보고 서 있다. 초가의 본채에는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등 시어에 나오듯 방안에 있는 소품 질화로와 마루에 있는 등잔이 ‘향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또한 방안에 놓인 가구는 아버지의 생업이 농업이 아닌 한약방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시선 가는 곳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정지용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사랑채 옆에 있는 또 다른 사립문으로 나서니 바로 옆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고,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실개천을 건너면 바로 문학관으로 이어진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하나의 큰 봉우리인 정지용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홍수로 집안 살림이 다 떠내려가고 중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등보통학교의 도움으로 중등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이 학교의 강단에 선다는 약속으로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8년을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정지용은 일에서 손을 떼고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그러한 연유로 6·25한국전쟁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이북에 들어갔다가 남북분단으로 못 나오고 북한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1993년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시 되었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수’는 정지용이 일본 유학길에 자신이 뛰놀던 유년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시(詩)다. 평화롭고 한가한 추억 속 고향마을의 정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짓밟아 버린 조국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그저 자신은 나그네였던 것이다. 1902년 5월 15일에 태어난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지 어느덧 120년이 됐다. 생가와 문학관은 이러한 정지용의 삶과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방분권 시대,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또 해야 하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방자치시대, 지역의 문화와 향유계층의 질적, 양적 확산을 위해 지속적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확대가 필요한 이유가 문학관의 또 다른 역할과 기능이 아닐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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