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 지키는 한국소설·詩 거목,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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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지키는 한국소설·詩 거목, 경주 ‘동리목월문학관’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7.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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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6〉
경주 토함산 자락에 위치한 동리목월문학관 전경.

문학관, 유족으로부터 기증·위탁받은 저서와 장서 등 소장·전시돼
김동리,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 ‘화랑의 후예’ 당선
 박목월, 1935년 문장에 ‘산그늘’과 ‘가을 어스름’ 추천 시인 등단
 자치시대, 지역 예술인들 예술작품 접근할 수 있는 공간시설 필요

 

경북 경주의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 자락에는 경주가 낳은 한국문단의 거장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의 작품세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동리목월문학관’이 있다. 한옥으로 건립된 반듯한 건물의 왼쪽 건물은 동리문학관이고, 오른쪽은 목월문학관으로 국내 문학관 중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불국사 정문 앞에서 길을 건너면 수련으로 가득한 연못이 있고, 이 연못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오르면 동리목월문학관 마당이다. 넓고 커다란 공간이지만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인적이 드물기까지 하다. 정면에는 ‘아사달 아사녀의 사랑 탑’이 우뚝 하고, 오른쪽에는 ‘신라를 빛낸 인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유족으로부터 기증받거나 위탁받은 김동리와 박목월의 저서와 7000여 종의 장서, 육필원고, 문학자료 1500여 점, 생활유품 250여 점 등 국내 문학관 중 가장 많은 자료가 소장돼 있다는 설명이다. 동리목월문학관은 경북 경주시 불국로 406-3(진현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의 두 거장인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인 박목월의 일대기와 작품세계 그리고 문학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김동리와 박목월(본명 박영종)은 대구 계성중학교 2년 선후배 사이이고 절친한 친구 사이로 한국의 대표적 작가이며 국민시인이다. 

김동리의 ‘을화’는 노벨상의 문학상 수상후보 본선에 오르기도 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목월은 경남고성에서 태어나 100일이 됐을 때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경주로 이사해 자랐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등을 지냈다. 

이들 작가의 작품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설날, 추석날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는 다음날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1500원(단체 1000원), 청소년·군인 1000원(단체 500원)이며 어린이 500원(단체 200원)이다.

소설가 김동리 상.

■ 소설가 김동리와 그의 문학세계
‘동리문학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김동리의 흉상과 마주한다. 흉상 뒤편에는 ‘동리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라는 이어령의 글이 적혀 있는데, 알 듯 모를 듯한 글이다.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호적명은 김창귀(金昌貴), 족보명은 김태창(金太昌), 아명(兒名)은 창봉(昌鳳). 자는 시종(始鍾), 호는 동리(東里)다. 1913년 경상북도 월성군 경주읍 성건리 186번지에서 아버지 김임수(壬守)와 어머니 허임순(許任順)의 5남매 중 3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시종(金始鍾)이다. 김동리의 아버지는 주정뱅이였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패에 못 이겨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다. 김동리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김동리는 경주 제일교회의 부설학교인 계남학교 6학년 때 교지 ‘춘우’에 논문과 동화와 동시 등을 발표한다. 이 가운데 ‘돛대 없이 배 탄 백의인’이라는 논설문이 문제가 돼 일경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지만, 동시에 ‘글 잘 쓰는 아이’로 주목을 받는다. 이후 대구 계성중학을 거쳐 서울 경신고교로 진학하나,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가세가 기우는 등 사정이 여의치 않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둔다.

1934년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각 신문사의 상금을 몽땅 타볼 작정으로 한 달 만에 소설 3편, 희곡 2편, 시 3편, 시조 3편을 써서 응모하는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만 가작으로 뽑힌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고,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다솔사와 해인사 등에서 은거한다. 다솔사나 해인사를 거처로 잡은 것은 이미 큰형 김범부가 다솔사에서 스님들에게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었고, 김동리도 선문(禪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 머물며 6개월 동안 숯굴을 소재로 한 ‘산화’를 써서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또 당선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43년 김동리는 조카의 주선으로 사천의 양곡 배급소 서기로 일하다가 1945년 8·15해방을 맞고, 이후 서울 돈암동에 정착한다. 1946년 조지훈·조연현·황순원·최인욱·박두진·박목월·서정주·김달진 등과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다. 김동리는 해방 공간의 문단에서 줄기차게 좌익 문학가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세계관’과 ‘진보적 리얼리즘’, ‘혁명적 로맨티시즘’과 ‘과학적 창작 방법론’ 등 유물 사관에 바탕을 둔 이론에 반박하며 휴머니즘에 기조를 둔 ‘순수 문학론’을 펼친다. 주로 순수문학을 창작했고,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을 통해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다. 
 

시인 박목월 상.

■ 시인 박목월과 그의 문학세계
‘목월문학관’에서도 가장 먼저 시인 박목월의 흉상과 마주한다. 뒤에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란 시구가 적혀 있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시 ‘나그네’다. 문학관에는 시인의 ‘생애와 문학’이 걸려있고, 친필 원고와 서신, 시집, 동시집, 산문집과 시인이 직접 발행한 잡지 ‘심상’과 ‘여학생’등과 시인이 받은 훈장과 상패, 감사패 등이 전시돼 있다. 

한국문단의 거목이자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시인은 1915년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571번지에서 출생했다. 건천초등학교와 대구의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본명은 영종(泳鍾)이다. 1933년 동시 ‘통딱딱 통짝짝’과 ‘제비맞이’가 특선·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한다. 1939년 문장지에 ‘산그늘’과 ‘가을 어스름’ 등이 추천돼 시인으로 등단한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함께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발간하면서 ‘청록파 시인’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8년 3월 지병인 고혈압으로 영면한 박목월의 시 세계는 초기와 중기, 후기 시로 나눠진다. 초기 시는 자연과 향토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본원적인 고향을 추구하는 시편들이다.

‘윤사월’과 ‘청노루’, ‘나그네’와 ‘산도화’ 등이 초기 시중 가장 많이 알려진 시들로 꼽히고 있다. 평화롭고 맑은 자연 속에서 잊혀져가는 고향을 찾는 순수한 정서로 창작된 박목월의 작품들은 가장 압축된 시형식속에 무한한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어서 박목월 시만의 독창적이고 특이한 시의 힘으로 볼 수 있다. 박목월의 시는 우리의 전통적인 율조와 조화됨으로써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어린 동심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이 지니지 못한 순수한 시세계의 폭넓은 정서를 엿볼 수 있다.

박목월의 중기와 후기 시는 인생과 삶 그리고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 문명 비평적 경향 등은 시가 시대적인 상황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삶과 죽음의 허무함을 현실적 자연과 교감해 시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거나 형상화한 시들이다.

문학관에 전시돼 있는 시인 박목월의 저작들.

박목월의 생가는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71번지다. ‘건천은 고향/역에 내리자/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아버님과/아우님이/잠드는 선산’이라던 고향이다. 실개천을 따라 난 좁은 동네 길을 오르다 보면 그가 자주 거닐었다는 작은 동산이 있고 조금 더 올라 마을 끝 즈음에 박목월의 생가가 있다. 목월이 살던 시절의 초가가 재현돼 있다. 마당에는 목월의 약력을 새긴 비와 펜을 든 목월의 동상이 서있고, 시 낭송장과 ‘나그네정’이라고 이름 붙인 정자가 마련돼 있다. 목월은 이 집에서 소년기를 보내며 보통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박목월은 소년시절을 달빛 속에서 자랐으며, 경주의 달빛 하얗게 비치는 골목길이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회고한다. 

‘동리목월문학관’에서처럼 지방자치시대, 문학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지역의 예술인들이 창조한 예술작품을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시설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역 문화·예술의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런 공간의 중요성이다. ‘문학관’은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 작가·시인의 유품과 각종 문학 자료의 보관을 비롯해 상설 전시를 통한 문학의 위상 정립과 선양을 통해 존립 의의와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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