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만 명 인제가 자랑하는 문화 공간 ‘박인환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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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 명 인제가 자랑하는 문화 공간 ‘박인환문학관’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8.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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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12〉
강원도 인제군 소재 박인환문학관 전경.

훤칠한 키에 수려한 얼굴의 박인환은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
‘세월이 가면’쓴지 일주일, 시인 이상의 기일 나흘 뒤 서른한 살에 요절
강원도 인제군, 2012년 박인환 시인의 생가 터에 박인환문학관 개관해
 소양강변에 펼쳐진 1950년대 서울명동거리의 옛 향수 가득한 시간 여행

 

박인환(1926~1956)은 1926년 8월 15일 소양강 상류에 위치한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현 인제읍) 상동리 159번지의 강촌마을에서 4남 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박인환은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 후 면사무소에 다니던 부친이 아들 교육을 위해 열한 살에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긴 후 경기공립중학교로 진학하는데, 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돼 중퇴 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한다. 열여덟 살에 부모님의 뜻(부친의 강요로)에 따라 3년제 관립학교인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녔다. 해방이 되면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내려온다. 

스물둘에 종로3가 낙원동 입구에 시인 오장환이 운영하던 것을 인수한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리’는 일본의 현대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함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마리서사는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장 콕토 같은 외국 유명시인들의 시집과 ‘오르페온’이나 ‘판테온’, ‘신영토’ 같은 일본의 유명한 문학잡지들이 진열된 고급 서점이었다.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정지용, 김광주, 김수영 등 여러 문인들이 자주 찾는 문학 명소가 됐고, 뒤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발상지로 회자되기도 한다.
 

■ 박인환, 시에서 누구보다 앞서간 모더니스트
박인환은 1946년 시 ‘거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에 들어간다. 1949년 김경린, 임호권, 김수영, 양병식 시인과 함께 ‘신시론(新詩論)’동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하면서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박인환 시인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문학관’에 가보면 1, 2층에 해방 전후의 문학공간들을 잘 꾸며놓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명옥’도 그 중 하나다. 시인 김수영의 어머니가 충무로 4가에서 운영했던 빈대떡집 유명옥은 ‘신시론’의 산실이었다고 전해진다. 신시론은 서정성을 대표하는 ‘청록파’의 전통적 자연예찬에 대한 반발과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에 따른 불안, 서구문화의 유입과 급격한 도시화를 비롯한 해방 이후 특수한 상황 속에서 30년대 임화와 김기림을 이은 후기 모더니즘운동이다. 

그의 일대기가 정리돼 있는 문학관 내부.

박인환은 195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대구, 부산으로 피난하면서 종군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시를 쓰고, 영화평론을 쓰고, 신문사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운 가난한 시인이었다. 부산에서 박인환을 비롯해 김경린, 김규동, 이봉래, 조향, 김차영 등 6명이 동인 ‘후반기’를 결성, 모더니즘 운동을 이어간다. ‘6인이 한 패가 돼 당시의 기성 문단과 문화계에 반기를 드는 문학운동을 폈는데 주된 공격은 낡은 전통문학, 이른바 구태의연한 서정주의 시 내지는 감상주의에 대한 것이었고, 문단과 문화계의 왜소한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반기’ 6인 중의 한 명인 시인 김규동이 ‘박인환론’에서 쓴 내용이다.

1953년 박인환은 서울로 돌아온다. 그 시절, 폐허가 된 명동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다방 ‘모나리자’, 예술인들의 보금자리 ‘동방싸롱’, 위스키 시음장으로 문을 연 술집 ‘포엠’ 등이 그들의 창작공간이자 무대였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얼굴의 박인환은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였다고 한다. 서구 취향에 도시적 감성으로 무장한 박인환은 시에서도 누구보다 앞서간 날카로운 모더니스트였다.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한 막걸리 집 ‘은성’에서 박인환은 송지영, 김광주, 김규동 등의 문인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당시 ‘은성’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막걸리 집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문학과 예술의 꽃을 피우던 사랑방이었다. 

그날 이 자리에는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도 함께 있었다.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는데, 마땅한 노래가 없다고 거절했는데, 그 때 박인환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가고, 완성된 시를 넘겨받은 이진섭이 단숨에 악보를 그려나갔다. 나애심이 그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렀는데, 바로 그 시가 ‘세월이 가면’이었다.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합류해 그 악보를 보고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박인환은 1956년 3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집 나이로 서른 한 살 이었다. ‘세월이 가면’을 쓴 지 일주일 뒤였고, 시인 이상의 기일로부터 나흘 뒤였다. 이상을 유난히 좋아했던 박인환은 이상의 기일인 3월 17일 오후부터 주위 사람들과 함께 추모하며 나흘간 통음을 했다고 한다. 그날 박인환은 옆자리에 있던 이진섭에게 ‘인생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라고 메모한 것을 주었다고 전한다. 
 

 문학관 내부에는 박인환 시인에게 영감을 줬던 장소들이 하나의 골목으로 구성돼있다.

■ 박인환 시인 생가터에 박인환문학관 개관
시인의 고향인 인제에는 박인환문학관이 세워져 지역의 젊은 문학동아리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인제군은 지역 출신 박인환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2년 10월 시인의 생가 터에 문학관을 개관했다. 박인환문학관(인제군 인제읍 인제로 156번길)은 인구 3만여 명의 인제군이 자랑하는 문화공간이다. 2009년 12월 시인의 생가 터에서 첫 삽을 뜬 이후 3년의 공정을 마치고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640㎡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제군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인제산촌민속박물관 옆에 자리한 문학관은 1·2층 전시실, 야외전시실 등으로 꾸며졌다. 

박인환문학관 앞마당에는 잘 생긴 박인환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박인환의 젊은 시절 모습과 매우 비슷한데, 코트를 입은 시인은 바람에 넥타이가 날리며 만년필을 꼭 쥐고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이 작품은 ‘시인의 품’이다. 2011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원경 작가가 만들었는데, 제목처럼 시인의 품에 안길 수 있고, 그 품에 앉으면 시인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가 낭송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시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짠해진다. 또 동상 앞에는 귀여운 목마가 서 있다. 역시 공공미술작품으로 제목은 ‘책 읽는 목마’다. 목마 내부를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설명이다.
 

문인, 예술인 등과 교류했던 박인환 시인의 아지트 마리서사, 이 곳은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난 발상지였다.

박인환문학관의 전시시설의 특징은 박인환 시인이 활동한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시인과 관련된 인물, 서점, 다방, 선술집 등의 역사적 명소를 현장감 있게 재현했다는 것이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1950년대 명동거리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시인의 일대기와 아카이브를 전시해 놓은 공간을 지나면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대표작들을 탄생시킨 다방과 선술집, 책방 등이 그대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책이나 사진, 유품들을 진열장에 배치해 놓은 여타 문학관과는 달리 시인이 활동했던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현장’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박인환이 꿈을 키웠던 역사적 명소들인 시 ‘세월이 가면’을 탄생시킨 은성다방, 박인환의 일터였던 책방 마리서사, 선술집 유명옥, 8·15광복이 되자 명동에서 가장 먼저 개업해 문인과 예술가들이 시낭송의 밤, 출판기념회, 전시회 등을 열었던 봉선화 다방, 위스키 시음장으로 문을 연 술집 포엠, 1950년대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명동의 모나리자와 동방싸롱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공간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인제의 문화적 행사에 사용된다는 2층 전시실은 인제의 과거를 볼 수 있는 흑백 사진으로 꾸몄다.

특히 해방전후의 격동기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한 박인환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수 박인희로 기억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의 동명 시에 극작가 이진섭이 곡을 붙였다. ‘세월이 가면’ 시를 쓴 이후 서른한 살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박인환의 절절한 시와 박인희의 촉촉하고 맑은 목소리는 인간이 지닌 운명과 숙명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박인환과 박인희를 오누이로 알고 있지만 가수 박인희는 “일면식도 없다. 그의 시가 그냥 좋았다”고 밝힌 바 있다. 

박인희는 이해인 수녀와 풍문여자중학교 동창으로 1971년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에 가수로 데뷔했다.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는 감성적인 음악을 곁들인 박인희의 청아한 낭송이 있었기에 청춘들의 가슴을 강렬하게 저격하며 더욱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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