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연동마을의 땅끝순례문학관, ‘시문학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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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연동마을의 땅끝순례문학관, ‘시문학 1번지’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9.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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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14〉
국문학의 본향 해남 땅끝마을에 조성된 땅끝순례문학관 전경.

해남, 조선시대 문인과 근·현대의 문인 160여 명 배출한 문학의 고장
문학관, 면적 1484㎡에 지하 1층, 지상 1층 한식과 양식 절충해 건립
해남의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오우가(五友歌)’의 고산 윤선도
남도 고유의 정서에 시대적 아픔을 풀어내는 국문학의 본향 해남 문학


한반도 끝자락인 전남 해남은 조선시대 문인과 근·현대 시인 등 문인 160여 명을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다. 한국 시조문학의 효시인 고산 윤선도(1587∼1671)를 비롯해 1980년대 한국 민족문학의 상징인 김남주 시인(1946∼1994), 현대시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 한국 페니미즘운동의 선구자 고정희 시인(1948∼1991) 등을 배출한 곳이다. 이곳 해남군 해남읍 연동마을(녹우당길 123)에 가면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해남 문학인들의 얼이 담긴 ‘땅끝순례문학관’은 지난 2017년 12월 27일 해남읍 연동리 고산윤선도유적지 옆에 문을 열었다. 이 문학관은 지난 2014년 7월에 착공해 3년 5개월 만에 총 사업비 64억 원을 들여 전체면적 1484㎡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규모로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건립됐다. 땅끝순례문학관은 사적 167호로 지정돼 있는 ‘녹우당’과 ‘고산윤선도유적지’와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돼 있다. 해남의 문학사를 정립해 해남의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 문인들의 작품과 문학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곳이 바로 ‘땅끝순례문학관’이다.

해남 출신 문학인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

땅끝순례문학관 조성은 해남이 배출한 문학인의 작품세계를 한곳에서 감상하는 ‘시문학 1번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해남 출신 문학인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문학관에 집대성할 방침으로 세웠다. 문학관에는 해남 출신 문학인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북 카페, 문학공원 등으로 구성됐다. 조선시대를 풍미한 최부, 임억령, 유희춘, 백광훈, 윤선도 등 해남 문인의 생애와 문학작품을 그래픽 패널·모형 등과 이동주, 박성룡, 김남주, 고정희 등 해남을 대표하는 현대 시인의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문인들의 창작활동과 신인작가 발굴을 통해 지역문학의 향유 폭을 넓히기 위한 문학창작공간도 운영하면서 기획전시, 문학교육프로그램 운영, 해남문학·작가연구, 대관 운영 등을 하고 있다. 문학관 외부에는 문학자연공원을 조성해 작품을 새긴 기억의 벽과 각종 조형물, 자연이 어우러지는 순례길 등을 조성했다.


■ 해남, ‘문학의 일번지’로 불리는 곳
해남군(海南郡)은 백제시대에는 새금현(塞琴縣), 신라시대에는 침명현(浸溟縣)으로 불렸고 고려 태조 때 해남현(海南縣)으로 개칭했다. 조선 태조 때 해남현과 진도군을 해진군(海珍郡)으로 통합했고, 세종 때 해남현과 진도군으로 나눴다. 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이 됐고 일제강점기에 13개면으로 통합됐다. 

해남군은 우리나라 기초 자치단체 중에서 면적은 호남에서 가장 넓고 경지면적은 전국에서 가장 넓다고 한다. 해남군은 한반도 서남쪽 최남단에 위치한 군으로 내륙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해남반도와 서쪽으로 뻗은 산이반도, 서북쪽으로 뻗은 화원반도와 부속 섬으로 이뤄졌다. 동쪽을 제외하고 3면이 모두 바다이고 남서쪽으로 완도, 동남쪽으로 진도와 연륙됐다. 해안의 침강으로 생긴 침강해안이 발달해 짧은 하천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전체 인구는 6만 7000여 명이며 30%가량(2만 4000여 명)이 해남읍에 거주하고 있다. 송지면은 한반도의 최남단의 땅끝마을이 있으며 해남 땅끝에서 온성 풍서리까지 거리를 ‘3000리 금수강산’이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해남의 문학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우가(五友歌)’로 우리에게 알려진 고산 윤선도(尹善道)이다. 국문학의 비조라 일컫는 윤선도는 특히 올곧은 정치가의 삶을 살았다. 해남 백련동에 터를 잡고 500년 넘게 살아온 해남윤씨어초은공파 녹우당 사람들의 역사와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곳이 바로 ‘고산윤선도유적지’의 ‘유물전시관’이다. 이 유적지 옆쪽으로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윤선도는 소현세자, 효종, 헌종의 스승으로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이다. 17년의 유배살이와 19년의 은둔생활을 하였다. 녹우당(綠雨堂)은 윤선도가 효종으로부터 하사받은 고택으로 녹색 바람 소리가 비처럼 내리는 곳이며 사적 제167호로 지정됐다. 보길도 원림(甫吉島 園林)은 윤선도가 13년 동안 머물면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을 남겼고 명승 제34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의 땅끝마을 유배지문학의 산실인 해남은 ‘무소유’의 법정스님을 비롯한 한국 전통 서정시를 계승한 ‘강강술래’의 토속적 서정과 정한(情恨)의 시인 이동주,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고향의 땅끝’과 ‘풀잎’의 서정시인 박성룡, ‘절명시 쓰듯 천일염이 될까 몰라’의 윤금초, 1980년대 민족문학의 기수이자 자유와 혁명의 시인인 ‘나의 칼 나의 피’의 김남주, 한국 페미니즘운동의 선구자로 사랑과 여성해방을 노래한 시인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고정희, ‘아아 광주여 십자가여!’의 김준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황지우, ‘땅끝에서 시작하리라’ 이지엽 시인 등의 고향이자 ‘문학의 일번지’로 불리는 곳이다.
 

문학관 내부의 안내데스크.

■ 현장문화운동 펼치며 지역문학 꽃 피워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해남의 시맥은 전후 시단에 등장한 현대시인들로 이어지게 된다. 해방 이후 등장한 이동주, 박성룡에 이어 1950~60년대 해남에서는 지역문화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민재식을 필두로 1959년 첫 지역문인단체인 ‘두류문학회’를 조직했다. 격정적인 사회변화와 더불어 해남 출신 시인들의 본격적인 창작 활동이 시작됐다. 이어 1970년대의 해남문학은 지식인들에게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쟁을 요구하며 현실참여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대하소설 ‘장길산’을 집필하던 소설가 황석영이 1976년 해남으로 내려와 농촌정서를 몸으로 익히며 김남주 시인과 함께 ‘해남농민회’를 조직하고 활발한 현장문화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때 지역동인지 ‘한듬문학’이 발간됐다.

또한 시의 시대라 불리는 1980년대는 해남 출신의 김만주, 황지우, 김준태, 고정희의 독창적인 문학 활동이 두각을 나타낸다. 당시에 오랜 감옥살이 끝에 출소한 시인 김지하가 건강상의 이유로 해남으로 이주해 문학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지역동인지로 ‘남촌문학’과 ‘해남문학’이 발간돼 활발한 지역문학 활동을 펼쳤다. 1990년대 이후의 해남문학은 역사나 시대에 대한 관심과 같은 거대 담론이 퇴조하고 일상적 삶과 생활, 감정과 자연, 생명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다원화 된 양상을 보인다. 다양한 주제를 소재로 많은 지역 문인들이 등단했고, 지역동인지 ‘땅끝문학’과 ‘미암문학’ 등이 발간됐다. 이밖에도 김경윤 시인과 윤재걸, 문주환 시조시인이 지역문학을 꽃을 피우는데 힘을 함께 한 작가들이다.

한편 해남문학의 뿌리로는 해남시가문학의 비조로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백미이자 세계적 표류기로 평가받고 있는 ‘표해록’을 쓴 최부(1454~1504), 해남6현 중 으뜸으로 3000여 수의 한시를 남긴 ‘석천집’을 집필한 호남시학의 스승인 임억령(1496~1568), 16세기 후반의 사회상을 잘 알려주는 조선시대 일기의 백미인 ‘미암일기’를 집필한 독보적인 기록가 유희춘(1513~1577), 다섯 살에 해남 옥산초당에서 글공부를 시작해 도교와 불교를 아우르는 넓은 시세계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옥봉집’의 저자 삼당시인 백광훈(1537~1582),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조선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고산유고’를 집필한 조선의 으뜸시인 윤선도(1587~1671) 등이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해남 출신 문인들이다. 이렇듯 조선시대 문인들을 뿌리삼아 발전의 길을 걸어온 것이 해남문학의 특징이며, 문학의 고장으로 불리는 연유다.

유배지문학의 고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우수영, 역사의 창과 방패였던 해남 땅은  그래서 아픔이 많은 땅이다. 남도 고유의 정서에 시대적 아픔을 풀어내는 국문학의 본향 해남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해남문학의 전성기 재현을 기대해 본다. 땅끝순례문학관 조성을 계기로 문학의 고장이라는 옛 명성회복에 주력해야 할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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