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 왜 보존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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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 왜 보존이 필요한가?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4.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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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을 보존하자 〈1〉
소새울다랑이논 가을 전경.

다랑이논, 작은 댐 같이 빗물 흐름 홍수 조절 기능·토양 침식 억제
경남 남해 가천 다랑이논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5호로 지정
계단식 농업은 평지보다 산지가 많은 인구가 조밀한 지역서 활발
아름다운 경관 다랑이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 아름다운 풍경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며 휴식처가 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농민 스스로 농지를 직접 개간해 만든 ‘다랑이논’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연 공간이다. ‘다랑이논’은 비탈진 경사지를 개간해서 만든 논으로 경지정리가 잘 돼 있는 논과 생산량을 비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다랑이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다랑이논은 작은 댐과 같은 홍수조절 기능뿐만 아니라 계단식 구성으로 인해 빗물의 흐름을 조절하며 토양 침식도 억제한다. 다랑이논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중요성, 기후변화의 완화기능, 대기오염 방지기능 등은 기후위기와 코로나 19에 묻혀 있는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맞닿아 있다.

‘다랑이논’하면 경남 남해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남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로 가천 ‘다랑이논’을 꼽기 때문이다. 가천 다랑이논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5호로 지정됐으며, 국내 명승 87곳 중 하나다. 경관적 가치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산비탈 급경사지에 유려한 곡선 형태의 108층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돼 있는 곳이다. 이 다랑이논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생존투쟁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문화재와는 다른 미적, 가치적 감동을 준다. 남해군은 ‘다랑이논 보존 및 관리 조례’를 공포했다고 한다.

조례는 다랑이논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 보존위원회 구성, 재정과 행정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휴경지를 귀농인들에게 임대해 실제 농사를 짓도록 하거나, 경작 농민에게 적자보전 등 소득 안정을 보장해 주는 실질적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인공과 자연, 생존과 초월이 겹으로 퇴적돼 숭고미를 전해 주는 다랑이논은 보존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시대, 다랑이논을 일군 선조들의 숭고한 생존 의지와 강한 생활력의 유전자가 지금도 흐르고 있는 홍성에도 아직 남아 있는 다랑이논에 대한 보존 방안과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이다.
 

경남 남해 가천 다랑이논 전경.

■ 계단식 논, 자연조건에 맞춘 독특한 농법
경사지에서 농경지를 개간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토양 유실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계단식으로 농경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계단식농업(階段式農業)은 개간 전의 자연적 삼림 피복과 유사한 토양보전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계단식 농업은 평지보다 산지가 많은 인구 조밀 지역에서 활발했다.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경사지에서도 농업을 영위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계단식 논은 토양 유실의 주요 원인인 집중호우 때 그 자체가 댐의 역할을 해 많은 양의 물을 가두었다가 서서히 내보냄으로써 이중의 토양 침식 방지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계단식 농업이 이루어졌다.

1123년 고려를 다녀간 중국의 사신 서긍(徐兢)은 “경지가 산간에 많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사다리나 층계와 같다”고 해 계단식농업을 언급하고 있다. 박지원의 ‘과농소초(課農小抄)’에 의하면 이러한 계단식 경지를 제전(梯田)이라 불렀으며, 산 위에 수원(水源)이 있으면 벼를 심고, 그렇지 않으면 조·보리와 같은 밭곡식을 심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제전 가운데 논은 10분의 1·2 정도이며, 대개는 밭이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뤄볼 때 조선시대에 계단식 밭은 상대적으로 산이 많고 기후가 열악한 북한과 강원도에 많았으며, 계단식 논은 벼농사가 활발한 남부지방에 주로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의 최대 산지인 지리산 일대에는 18세기 이후 계단식 논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계단식 농경지의 조성은 평지의 일반 경지보다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특히 논은 논바닥을 수평으로 만들어야 하며, 관개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기술과 노력이 투여된다. 그래서 계단식 논은 세계적으로 주민들이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창출해 낸 토지이용 경관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계단식 농업, 특히 계단식 논에서는 자연조건에 맞추어 독특한 농법이 개발돼 사용됐다. 지리산에서는 돌이 많아 물이 너무 잘 빠지는 토양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논을 만들 때 점토를 구해 논바닥을 다졌다고 한다. 청산도의 ‘구들장 논’은 관개용수의 조절을 위해 널찍한 판석 형태의 돌, 즉 구들을 사용했다. 계단식 농경지는 지형조건 때문에 평지의 농경지에 비해 구획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지리산의 논은 과거 한 배미의 면적이 1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적지 않았으며, 한 마지기의 논이 20배미 이상으로 이뤄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은 논배미를 ‘잔다랑이’ ‘삿갓다랑이’ ‘죽배미’라 불렀는데, 삿갓다랑이는 삿갓 하나로 논 한 배미를 다 덮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죽배미는 죽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은 논배미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계단식 경지는 영농상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이 많아 최근 들어 농사를 포기하는 면적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한 경제적 가치만 따지지 않고 환경 보전, 나아가 중요한 역사·문화 경관의 보전이라는 관점에서 계단식 경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 다랑이논이 잃어버린 가치는 시장가치
‘다랑이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형성된 곳이다. 흔히 한국의 아름다움은 곡선의 미학으로 표현된다. 다랑이논(다랭이논)은 아름다운 한국적 미를 담은 곡선이 계단식 층을 이루며 프랙탈 구조로 전개돼 있다. 한국적 선의 특징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자연미이다. 자연적 지형에 의지해 조성된 논배미, 그 경계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논둑길, 어느 것 하나 주변 경관과 거스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 노자의 미의식을 형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지역민들에게 논은 매우 소중한 토지였다. 가파른 경사지를 일구어 논배미를 만들고 물길을 놓기 위해,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아득한 옛날로부터 수많은 농민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땀을 흘려야 했음은 불문가지다. 논둑길로 서로 연결된 그물망처럼 펼쳐진 크고 작은 논배미마다, 이 땅 위에 살다간 이름 모를 수많은 농부의 노동이 응축돼 있다. 다랑이논이 잃어버린 가치는 시장가치이다. 그것이 갖는 농토로의 사용가치나 심미적 가치마저 상실된 것은 아니다. 이곳에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쌀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농토로의 사용가치는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다. 근대농업은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다량 투입하는 대규모 단작 농업에 기반하고 있고, 이러한 농업 시스템이 갖는 생산력적 비교우위가 시장으로부터 다랑이논의 경제적 가치를 박탈했다. 값싼 수입쌀에 밀려 시장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농업에 국한해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농업경영방식은 농사지을 수 있는 표토(top soil) 층의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지속가능성이 결여됐음이 입증된다. 인간과 농토의 건전한 결합방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점이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농토에 내재 돼 있는 인간 노동력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다랑이논 속에는 선조들의 노동과 함께 그들의 지혜도 함께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리 협소한 논배미일망정 자식처럼 아끼고 정성을 다해 가꿨다. 그들은 땅을 인간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일방적 수탈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탄생한 유기적 모체로 인식하고 지모신(地母神)으로 섬기는 지혜를 가지기도 했다. 생태적 가치와 자연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서 농사지어 왔던 농민들 수가 줄어들면서 다랑이논의 보존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농촌에 농사지을 농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다랑이논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휴경을 하거나, 경작을 하지 않는다면 다랑이논에 균열이 생겨 결국 다랑이논은 훼손된다고 한다. 농지로써 본연의 기능을 잃게 되면 경관적인 아름다움도 줄어들고 지금까지의 공익적 기능도 줄게 된다. 결국 농사를 지을 농민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지향하는 농업·농촌의 정책이 무엇이냐에 따라 보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될 것이다. ‘다랑이논’의 훼손은 농업·농촌의 손실뿐 아니라 국토 경관의 손실이라는 점에서 다랑이논이 가진 가치를 보전하는 일에 대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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