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80년, 소머리설렁탕 맛을 지키는 ‘오산할머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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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80년, 소머리설렁탕 맛을 지키는 ‘오산할머니집’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5.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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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다, 100년 가업을 잇는 사람들 〈4〉
경기도 오산의 ‘오산할머니집’은 4대째 80년 동안 가업을 이으며 옛 맛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소머리설렁탕과 수육전문식당이다.

예부터 ‘장날에는 장터국밥’이란 말이 있다. 5일마다 장이 서는 장날만큼은 꼭 장에는 가봐야 하고, 장에 간 김에 ‘장터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다. 장날만큼이라도 나름 필수적으로 ‘장터국밥’ 한 그릇으로 외식을 해야만 제맛이라고들 한다. 그러하기에 장터국밥은 ‘장날, 장터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에 사람 사는 향기가 번지는 곳, 에누리와 덤이 있는 넉넉한 인심과 정겨움으로 가득한 시골의 전통시장, 장날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사고 싶은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교환했던 장소다.

한국의 역사에서 근대의 상설시장이 들어서기 전에 형성된 상거래 장소였다. 조선 전기 무렵에는 보름, 열흘, 닷새, 사흘 등 지역마다 장이 서는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는 닷새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이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영조 시기 저술된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770년대 당시의 전국 장시의 수를 1064개로 헤아리고 있고,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는 1057개로 파악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서 오일장이 선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이 오일장으로 유명하다. 오일장은 인근 여러 지역이 날을 달리하며 열렸고, 장에서 장사이의 거리는 보통 걸어서 하루 정도였다. 보부상들은 이를 이용해 장터를 돌며 물품을 팔았던 것이다. 장터에는 좌판을 열 공간 이외에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주막과 같은 공간이 있었고, 장꾼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국밥’과 같은 음식이 자연스레 생겨나기도 했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봇짐장수는 값이 비싸고 들고 다니기 쉬운 방물과 같은 물건을 팔았고, 등짐장수는 소금, 미역, 생선과 같이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팔았다. 이러한 보부상들은 장터와 장터를 오가며 산다고 해 ‘장돌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장터에서 세월이 흘러 대를 이으며 명맥을 잇고 있는 ‘꾼’들이 있다.
 

창업자 故 이일봉 할머니의 모습.

230년 전통의 오산 오색시장의 역사
4대째 80년 동안 가업을 이으며 옛 맛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소머리설렁탕과 수육전문식당인 경기도 오산의 ‘오산할머니집’(오산로300번길 3)은 유서 깊은 오산오색시장 옆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오산의 오색시장은 다섯 가지 색으로 거듭났다는 설명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국밥’이라고 한다.
오산오색시장(오산시 오산로 272번길 22)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부터 5일 시장으로 유명했으며, 1700년대와 1800년대 문헌에도 기록됐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오산장터는 1753년 이중환의 ‘택리지’에 오산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오산장이 3일과 8일(당시 음력)에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1792년에 발간된 ‘화성궐리지(華城闕里誌)’에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설화된 지 108년이 지난 오색시장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오일장인 오산장의 역사가 270년, ‘화성궐리지’에 등장하는 때부터 23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성호읍 오산장으로 시작했다. 오산시장은 대동지지, 수원부읍지 등 여러 옛 문헌에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4년 현재의 위치에서 오산중앙시장이란 이름의 전통시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지난 2013년 ‘오산 오색시장’으로 명칭을 바꾸게 됐다. 5일장을 병행하는 상설시장으로, 6만㎡에 350여 점포에서 농·축·수산물과 의류, 생필품, 각종 잡화 등을 판매한다. 2013년에는 전국우수시장박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됐다.
이곳 오산장터에서는 오산지역의 3·1운동이 시작돼 1919년 3월 29일 장날(음력)을 기해 7~800여명의 군중들이 결집하고 대규모 ‘오산리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오산장터의 만세시위는 경기도 지역 전체로 번지면서 만세시위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러부위가 골고루 나오는 소머리수육.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
오산할머니집 장터국밥은 4대째 80년 동안 옛맛을 그대로 전수하며 지키고 있다. 예부터 전통시장에는 국밥집이 유명하듯 오산에서도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창업자 고(故) 이일봉 할머니가 1940년대 초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 자리를 넘겨받아 식당을 차린 이래 지금까지 80년 세월 동안 대를 거듭하며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소머리 설렁탕(국밥)이 주메뉴로 여기에 수육까지 두 가지뿐이다. ‘오산할머니집’은 경기도 지정 4대(代)물림 향토음식점으로 TV에도 방영됐으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과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00년 가게’로도 선정했다. 

‘오산할머니집’ 주방에는 대형 무쇠솥 두 개가 걸려 있는데, 한쪽 솥에서는 소머리와 사골 잡뼈를 고아낸다. 여기서 끓여낸 진국을 국솥으로 옮긴 다음 양지·사태 등을 삶은 국물을 더해 국물을 완성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뽀얀 소고기 국물이 구수하고 진하다. 

1940년 개업한 이후로 오랜 전통을 이어온 ‘오산할머니집’은 가마솥에서 한우 사골을 오래 고아내 진한 맛을 내는 소머리 설렁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이름이 났다. 오래 끓여 뽀얀 국물에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 소면을 푸짐하게 넣고 말아낸 설렁탕과 깍두기, 배추김치, 파김치를 함께 곁들여 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주방에서 옛 방식 그대로 무쇠솥으로 탕을 끓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탁 트였다. 모든 재료는 국내산만 사용해 믿고 먹을 수 있으며, 4대째 대물림을 하며 이어오고 있는 이 집에서는 소머리국밥을 설렁탕이라고 심플하게 부르기도 한다. 한우 사골과 머리뼈를 깨끗이 닦아 8시간 이상 정성 들여 푹 고아 낸 진한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다. 오산할머니집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무쇠 가마솥 뚜껑을 들춰보면 언제나 뽀얀 육수가 펄펄 끓고 있다. 순수한 한우 맛을 돋우기 위해 자극적인 양념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잘 삶아진 소머리 고기의 여러 부위가 골고루 나오는 수육은 새콤달콤한 간장 소스만 있다면 어떤 양념도 필요가 없다. 수육의 보들보들한 맛을 오래오래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손님상에 낼 때는 그냥 접시가 아닌 따끈한 철판 위에 낸다. 덕분에 고기는 오래도록 따뜻하고 부드러워, 천천히 맛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 전통을 이어온 소머리국밥의 명가임을 증명하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시선을 끈다. 4대를 이어 온 시증조모, 시조모, 시모 그리고 현재의 주인장에 이르기까지 4대를 한결같이 이어온 오산할머니집의 내력이고 역사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식문화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토종 향토음식의 계승과 보전을 위해 가업을 잇고 있는 오산할머니집의 소머리 설렁탕(국밥)과  수육의 맛이 우리네 삶의 독특한 향토음식의 가치와 의미를 담으며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소박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삶과 식문화가 깃들어 있는 음식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시대를 연결하면서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부담 없는 건강한 음식의 가치로 발전했으면 한다. 보전가치가 있는 지역 향토음식과 전통식문화의 체계적인 계승 발전을 통해 지역 명품화, 관광 상품화로 국내 관광객들은 물론 외국인들이 우리의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음식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관광상품 음식으로 개발·발전·재평가되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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