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삼례 근대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을 품었다
상태바
완주 삼례 근대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을 품었다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7.17 0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라지는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어떻게 보존·관리할까 〈7〉
비비정과 구 만경강철교에 폐기차를 활용해 카페와 상점, 레스토랑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사진=완주군청 제공)

완주, ‘법정 문화도시’ 지역 특색문화자원 활용 문화생태 조성
근대문화유산 양곡창고, 문화예술공간 삼례문화예술촌 탈바꿈
옛 삼례양수장·옛 만경강 철교, ‘비비정 예술열차’ 등 문화공간
낡음의 가치가 삶을 풍요롭게, 문화예술 보물창고 변신에 성공

 

전북 완주가 2020년 제2차 ‘법정 문화도시’가 됐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생태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5년간 1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인구 9만 명의 작은 도시가 기적을 이뤘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군 단위로는 처음이자 호남에서 유일하게 완주가 선정된 데에는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동안 ‘공동체 문화의 비전’을 바탕으로 주민들과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기반을 다지고 노력해온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문화의 색을 확연하게 드러낸 지역이 아니지만, 완주는 이미 로컬푸드로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했다. 또 문화로 도시재생을 한 선진지로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그 중심에는 수탈의 아픔을 지닌 장소를 문화가 깃든 장소로 승화시킨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인 ‘양곡창고’를 활용한 ‘삼례문화예술촌’이 중심에 있다. 2021년에는 전북 익산시가 제3차 ‘법정 문화도시’로 최종 확정됐다. 연속으로 전북지역이 확정되면서 전북만의 특색있는 문화예술 운영 기반이 마련돼 전북 문화자존의 시대를 열어 갈 수 있게 됐다.

특히 완주 삼례의 경우 일제강점기 삼례에 큰 규모의 양곡창고가 있던 것은 지리적인 요인이 컸다는 진단이다. 만경강을 끼고 있는 삼례는 김제, 익산과 만경평야를 품고 있는 곳이다. 과거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 1892년에 동학교도들이 ‘삼례집회’를 열어 동학농민혁명의 불씨를 지피고, 1894년 제2차 동학농민혁명의 봉기를 일으킨 주 무대로 농민들의 뜨거운 힘이 서린 곳이다. 반면,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일제강점기 수탈 물자 수송의 중심지가 되기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개항이 되자 일제는 본격적으로 수탈을 감행했다. 1920년에는 산미증식계획을 밀어붙여 호남지방의 질 좋은 양곡을 군산과 목포의 항구를 통해 수탈해 갔다. 삼례역에서 출발하는 화물열차와 서해만조 때 만경강까지 올라오던 배로도 지역에서 나오는 쌀 대부분을 걷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다.

한편, 삼례에 양곡을 보관할 대형 창고가 필요해지자 일본인 농장주들이 만든 농업회사인 이엽사(二葉社)가 그 일을 맡아 진행했다. 1926년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白勢春三)의 이엽사 농장 창고가 현재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는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완주지역의 대지주 농장이었던 조선농장, 전북농장, 공축농원과 더불어 양곡 수탈의 전위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삼례는 농업을 주산업으로 삼아 성장했고 물산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전성기를 보냈다. 점차 경제환경이 바뀌고 주변 지역의 개발 사업으로 삼례의 중심지 기능은 점차 약화됐다. 인근 전주로 인구가 유출됐고, 삼례역 역시 전라선 복선화사업으로 옮겨가면서 과거 양곡창고였던 공간들도 그 기능을 점차 잃었다. 1920년대 지어진 양곡창고는 해방 이후 적산(敵産, 적의 재산) 건축물로 분류돼 국가에 귀속돼, 농협으로 넘어갔으며 2010년까지 양곡창고의 기능을 유지했다. 
 

■낡음·시간·생명의 가치 돈으로도 못사  
양곡의 저장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능을 잃은 창고는 한동안 방치되다가 2013년 완주군에서 매입했다. 완주군은 농협의 소유였던 창고를 매입한 이후 이 공간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문화예술공간인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2013년 양곡창고와 관사였던 공간은 ‘삼례문화예술촌(삼삼예예미미)’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만1825㎡ 부지에 1920년대에 지어진 창고 5개 동과 1970~80년대에 건축한 창고건물 등 모두 7개 동이 책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보듬었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역사의 맥락을 잇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 했다. 외관은 세월의 때가 그대로 남아 허름하고 낡았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단장해 미술관과 카페, 공연장, 책 공방과 목공소 등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모미술관으로 들어서면 현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쌀가마니의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엇갈리게 벽에 댄 편백나무 원목이 설치미술처럼 장식돼 있고, 천장의 목조 트러스 구조물도 그대로 드러내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디지털아트관은 가상현실(VR)로 예술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1920년의 건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보강한 덕분에 삼례문화예술촌의 창고 건물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제580호’로 지정됐다. 시간을 이어 역사를 기억하는 현장이자 모두가 향유 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양곡창고를 근대문화 유산으로 보존함과 동시에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한 공간으로, 디자인 뮤지엄을 비롯해 목공소·책 박물관·책 공방·문화카페·미디어아트 갤러리의 전시동과 창작공간이 들어섰다. 낡음의 세월이란, 시간의 가치는 돈으로도 사지 못하며, 낡음의 흔적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삶의 가치는 세월을 오롯이 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삼례문화예술촌은 낡음의 가치가 문화예술의 보물창고로 변신에 성공했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끌며 주민들 스스로 예술과 문화를 생산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든 것이다. 문화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며, 지역의 문화예술은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높이고 풍부하게 하는 요소이다. 주민들이 합심해 완주를 로컬푸드의 중심지로 만든 것처럼, 완주는 완주만의 문화예술생태계를 형성해 특별한 문화도시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완주 삼례 근대역사문화유산의 ‘환생’
완주군의 또 다른 근대역사문화유산인 옛 삼례양곡창고(삼례문화예술촌;등록문화재 제580호), 옛 삼례양수장(등록문화재 221호), 옛 만경강 철교(등록문화재 579호) 등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전한 채 남아 있다. 또 삼례문화예술촌에서 1km 남짓한 만경강가에 ‘비비정(飛飛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높지 않은 강 언덕에 자리 잡아 살짝 들린 추녀 끝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하다. ‘날 비(飛)’ 자를 두 번이나 써서 어감마저 경쾌한데, 정자 이름을 지은 내력을 보면 다소 비장하다. 비비정은 1573년(선조6)에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었다고 한다. 후에 그의 손자 최양이 당대의 문인 송시열에게 정자의 기문을 부탁하는데, 이때 송시열이 중국의 명장 장비와 악비에서 두 글자를 따 비비정이라 명명한다. 최씨 가문이 대대로 용맹과 충효를 중시하는 무인 집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앞 강변 모래사장에 기러기가 내려앉은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했다.

일제강점기 만경강 수로와 전주~군산간 철도와 도로는 삼례 식량 수탈의 주요 수단이었다. 지금은 비비정을 가운데 두고 2개의 철교가 강을 가로지른다. 왼쪽은 전라선 직선화 이후 고속열차까지 운행하는 새 선로이고, 오른쪽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옛 만경강 철교다. 2016년 이 철교 위에 ‘비비정 예술열차’를 만들었다. 폐열차 4량을 구입해 증개축을 한 뒤 내부를 레스토랑·공연장·갤러리·카페로 꾸몄다. 지역주민이 만든 협동조합이 위탁운영을 하는데, 특히 해가 질 무렵 노을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졌다. 낙조와 야간에는 경관 조명의 풍경도 낭만적이다.

일제는 만경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1912년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리(현 익산)~전주 간 경편철도(폭 762㎜의 협괴철도)를 개통하면서 목교로 건설됐다. 1927년 호남지방의 농산물 반출의 중요성을 인지한 일제가 경편철도를 국유화하고 일반철도로 광궤화(레일 폭 762㎜에서 1435㎜로 확장)하면서 1928년에 만경강 철교로 준공됐다. 옛 만경강 철교는 스틸거더(Steel-Girder)형식의 철도교량으로 교량 상부구조와 교각과 교대는 일반적인 교량 형식으로 철교 길이는 476m이다. 

건립 당시에는 한강 철교 다음으로 긴 교량으로, 일제강점기 호남평야의 곡물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증거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1920년대 건설된 옛 삼례양수장은 삼례와 익산지역의 상수원을 목적으로 건립됐다. 창호의 상부는 모두 평아치로 구성됐으며 주 출입구 포치(porch) 상부는 수평의 돌림띠 형태로 벽돌을 포개 쌓았다. 각 모서리는 기둥 모양으로 돌출시켜 마감했다. 당시 치수 사업의 상황과 건설 기술 등을 잘 보여 준다. 역사문화유산이 갖는 가치이며, 힘이고 자산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