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격전지 양구 DMZ펀치볼둘레길, 원시림 ‘울창’
상태바
한국전쟁 격전지 양구 DMZ펀치볼둘레길, 원시림 ‘울창’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9.04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숲길에서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와 문화를 묻다 〈12〉
펀치볼(Punch Bowl) 또는 해안분지(亥安盆地)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침식분지를 뜻한다. 작은 사진은 DMZ펀치볼둘레길 안내센터.

백두대간트레일, 강원도 양구·인제·홍천 일원의 206㎞ 구간의 숲길
DMZ펀치볼둘레길, 6·25 한국전쟁의 상흔 간직한 한반도 이색지대
1956년 휴전 이후 난민정착사업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
민간인 출입통제지역 숲길, 예약탐방·등산지도사 안내·동행 꼭 필요

 

국가숲길은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림생태적 가치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우수한 숲길을 지정해 운영·관리하는 것으로, 지난 2019년 관련법이 제정됐다. 이후 산림청에서 지정한 최초 국가숲길 중 북부지방산림청 관내는 DMZ펀치볼둘레길과 백두대간트레일이 지정됐다.

DMZ펀치볼둘레길은 남한지역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까지 연결되는 백두대간트레일과 강원도 고성과 경기도 파주를 잇는 DMZ트레일의 중심지역이다. 특히 최북단 민간인통제선 내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숲길로 타원형의 특이한 분지 등 신비로운 경관이 일품이다. 백두대간트레일은 강원 양구·인제·홍천 일원의 약 206㎞로 숲길 내 최대의 전나무 군락지와 금강초롱꽃, 만삼 등 희귀식물 서식지 등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남한에서 유일하게 산정상에 형성된 습지 등 우수한 생태적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 해안면 DMZ펀치볼둘레길은 6·25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한반도 이색지대다. 산봉우리가 에워싼 해안분지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성과 이색적인 풍광으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곳이다. 펀치볼은 6·25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다. 6·25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곳곳에 지뢰지역 접근금지 표시가 있다. 펀치볼은 전쟁에 참전했던 외국 종군기자가 해안분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형상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고 명명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펀치볼은 실제 해안(亥安)분지다. 북쪽으로 1026고지(모택동고지), 924고지(김일성고지), 서쪽으로 가칠봉고지(1242m), 대우산고지(1178m), 남쪽의 도솔산(1148m), 918고지, 동쪽의 달산령, 908고지 등 1000m 이상 산봉우리들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DMZ펀치볼둘레길은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산림청이 전쟁의 흔적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경험하면서 잘 보존된 DMZ 숲 생태계의 청정함과 역사적인 사건을 돌아보기 위해 조성했다. 분지라는 지형 특성과 생태적 환경,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첫 국가숲길이다. 평화의 숲길, 오유밭길, 만대벌판길, 먼멧재길 등 4개 코스 73㎞ 구간이다. 하루 300명의 예약탐방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펀치볼 중간 쯤에 위치한 안내센터에서 방사선형으로 출발한다. 양구군은 강원도내 최초로 공정관광 조례를 제정,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간인통제선의 두타연과 DMZ펀치볼둘레길이 관광객들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국민여가지대(國民餘暇地帶)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립수목원 DMZ자생식물원 방문자센터 전경.

■ 펀치볼마을 해발 1100m 산으로 둘러싼 분지
DMZ펀치볼둘레길은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아픔 속에서 삶을 일궈 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를 안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걸을 수 있게 허락받음을 감사하고, 아름다운 여행자가 되기 위한 약속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하고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해안분지, 이른 아침의 안개 저녁노을로 물든 운해, 저수지에 나려 앉은 오리 떼, 밤이면 어둠 속에 총총히 뜨는 별, 정정지역 펀치볼 마을의 아름다움을 고루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에서 맑은 영혼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이곳 펀치볼마을은 해발 1100m 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형성된 지역이다. 펀치볼마을의 지명은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본 노을빛 해안분지의 형상이 마치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보여 탄성을 질렀다는 일화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펀치볼이란 본래 포도주에 과일을 섞어 만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은 화채 그릇을 일컫는다.

펀치볼마을은 양구군 해안면의 만대리, 현1,2,3리, 오유1,2리의 여섯 개 리로 구성돼 있다. 펀치볼마을이라는 이름은 먼 옛날 해안(海安)의 해자는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그 당시 해안분지에는 뱀이 많아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초 해안 주민들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 분을 모시니, 스님은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 해’자를 ‘돼지 해’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주민들은 돼지 해(亥)자로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전해진다.

이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은 집 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 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이후에 ‘해안(亥安)’으로 불렀다가, 다시 ‘해안’으로 바뀌었다가 1885년(고종32년)엔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 이후에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 스스로가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동면 관할 아래 있었던 해안출장소가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동면 북부를 분리·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구통일관 전경.
양구전쟁기념관 입구.

■ 6·25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의 푸른 숲
DMZ펀치볼둘레길은 양구 해안면 6개 리의 길을 따라 이어진다. 평화의 숲길(14km), 오유밭길(21km), 만대벌판길(21.9km), 먼멧재길(16.2km) 등 4개 노선이 연결된 총 길이 73.2km의 도보 길이다. 둘레길 주위는 야생화공원, DMZ 자생식물원 등 생태관광과 제4땅굴, 을지전망대 등 안보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새로운 관광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펀치볼 6·25둘레길(Korean War Trail)’로 명명한 이 둘레길은 33km를 17개 구간으로 나누어 대한민국 ‘물망초길’을 포함해 참전 16개국의 파병부대 또는 참전용사의 명칭을 부여하고 한국전쟁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통일 한국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양구 해안면과 인제 서화면을 가르는 경계가 등장하는데, 전쟁 이후 철책으로 덮이고 불편한 교통 오지로 전락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산을 가로질러 이웃 마을로 향하던 길이다.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그 시절 주민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사이, 급격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펀치볼 분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먼멧재봉’에 맑은 날 오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올라 왼쪽을 보면 저 멀리서는 금강산이 보이고, 뒤로 돌면 설악산이 보이는 드문 경관이다. 여기서 실향민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북녘의 피붙이를 그리며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그리움의 높이가 먼멧재봉 907m보다 높이 쌓여있으리라.

6·25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단장(창자가 끊어진다)의 능선’, 피로 물들었다는 ‘피의 능선’엔 전쟁으로 폐허였던 곳인데 울창한 원시림이 됐다. 지뢰 때문에 사람의 손·발길이 닿지 않아 오히려 더 아름답게 자란 숲속엔 쓰러진 나무가 많지만 들어가 치울 수 없다는 푸른 숲은 전쟁의 날카로운 상처다. 숲길을 걷다 위령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조각들도 만날 수 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열심인 산양들도 보인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 아름답고 슬프게 교차하는 길을 따라가면 두타연이 기다리고 있다. 휴전선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고 흘러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 내다가 폭포가 되고 다시 연못이 되는 곳. 휴전 이후 50여 년간 통제되다가 개방된 두타연을 만나는 것을 반갑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 단장의 능선 위로 투구를 쓴 병사 형상의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두타연에서 금강산까지는 32㎞라고 한다.

DMZ펀치볼둘레길 어느 코스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코스의 백미인 ‘숲밥’이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농사를 지은 시래기며 각종 나물로 차려주는 ‘진수성찬’인데, 단돈 만 원에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진정한 자연밥상을 누릴 수 있다. 메뉴는 매일 바뀐다고 하지만 시래기, 파프리카잎, 돼지감자잎, 직접 담근 장아찌와 젓갈 등으로 차린 반찬은 ‘정성의 맛’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약탐방 가이드제로 운영되고 있어 20명 이상 예약자가 차면 탐방을 출발할 수 있다. 또 DMZ펀치볼둘레길은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에 조성된 숲길로 주위에 미확인 지뢰지대가 아직도 남아 있어 탐방할 때에는 숲길 등산지도사의 안내와 동행이 꼭 필요한 곳이다.
 

DMZ펀치볼둘레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관계자 모습. DMZ펀치볼둘레길은 안전상 문제로 인해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있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