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겠다’는 의지의 상징 ‘다랑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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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겠다’는 의지의 상징 ‘다랑이논’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2.09.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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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을 보존하자 〈8〉
상주 낙동면 갑장산 자락의 다랑이논 전경.
상주 낙동면 갑장산 자락의 다랑이논 전경.

‘삼백(三白; 쌀, 곶감, 누에고치)’의 고장 ‘상주’ 농업 도시로 명성
 상주를 지나는 여러 하천에 물과 모래가 많아 농경문화가 발달해
‘다락논’ 낙동면 용포·비룡·수정·신오리마을 갑장산 자락에 펼쳐져
‘용포 다락논’ 밭과 논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조성돼 절경 이뤄

 

경북 상주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농업 도시다. 농가 수는 국내에서 네 번째, 농업인구는 일곱 번째로 많다. 농지면적도 여섯 번째로 넓다고 한다. 낙동강이 감싸 안고 평야와 산간지대가 고르게 분포해 농업 하기에 좋은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주 농업의 역사도 유구한데, 구석기 이래 상주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해 원삼국시대부터는 벼농사 등이 본격화하며 농경문화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삼백은 원래 쌀, 목화, 누에고치를 뜻했는데, 지금은 목화 대신 곶감이 들어간다고 한다. 농업의 고장으로 이름난 상주는 최근 들어 친환경 농업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낙동강 상류 지역에 위치해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난해 일찍부터 농경과 목축이 발달했다. 넓은 평야, 적당한 강우량, 여름철 높은 기온, 풍부한 일조량 등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쌀, 곶감, 포도, 배 등은 이미 상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수천 년 동안 상주 농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다. 비옥한 토양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태고부터 수많은 생명체가 강을 따라 삶을 유지하고 번성해 왔으며, 인류도 마찬가지다. 강은 인류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사를 지을 비옥한 땅까지 내줬다. 낙동강을 품은 경북 상주가 일찌감치 농업이 발달했던 이유다. 지금도 상주는 전국에서 농업 도시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상주 농업의 젖줄인 낙동강은 상주 농업의 역사다. 낙동강의 물줄기는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해발 1573m)에서 발원해 경북 주요 지역과 대구를 거쳐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낙동강은 상주의 옛 이름인 낙양(洛陽)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조선 시대 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지리전고(地理典故)’편에 “낙동(洛東)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다. 상주 동쪽은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낙동강은 상주의 들녘을 기름진 옥토로 만들었다.
 

다락논 테마마을 ‘용포마을’안내판.

■ 상주 벼농사 경상도 농업의 중심이자 뿌리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적어도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부터는 한반도 남쪽에서도 벼농사가 보편화한 것으로 학계에서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분지 지형에 낙동강을 품은 상주 역시 일찌감치 벼농사가 발달했다. 상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유적지는 낙동면 유적지다. 이를 고려하면 상주에서는 15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상주에서 벼농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원삼국시대 상주에 있던 고대국가의 이름에서도 벼농사가 번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상주에는 사벌국(沙伐國) 또는 사량벌국(沙梁伐國)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는데, 여기에 들어있는 ‘사(沙)’라는 글자는 당시 상주를 지나는 여러 하천에 물과 모래가 많아 농경문화가 발달했음을 나타낸다. 

고려 시대 1314년 행정구역 명칭에서도 농업중심지 상주의 위상이 확인된다. 영남지역 일대를 경상도(慶尙道)라 칭했는데 이는 낙동강을 좌우로 나눠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두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조선 전기 경상도를 관할하던 경상감영(慶尙監營)도 상주에 있었을 만큼 당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상주 농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상주 쌀은 옛날부터 임금님 진상미로 수라상에 오를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상주 벼농사는 경상도 농업의 중심이자 뿌리인 셈이다. 상주 쌀은 낙동강 상류 편마암 지대의 사질양토와 속리산 문장대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로 벼를 재배하기 때문에 그만큼 맑은 물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흔히 한국적 아름다움을 곡선의 미학으로 표현하곤 한다. 중국의 조형물이 형태를, 일본의 조형물이 색상을 중시여기는 것과 대비해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의식주’를 논하면서 입고, 먹고, 사는 것을 중시해 왔다. 우리가 먹거리 문제에서 화두를 던지는 ‘다랭이논’의 의미와 가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해 보겠다’는 의지의 상징인 ‘다랑이논’은 산골과 좁은 땅 구석구석에 아름다운 한국적 미를 담은 곡선이 계단식 층을 이루며 프랙탈 구조로 전개돼 있다. 

‘다랑이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선의 특징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자연미다. 자연적 지형에 의지해 조성된 논배미, 그 경계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논둑길, 어느 것 하나 주변 경관과 거스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다랑이논’의 형상들이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 노자의 미의식을 형상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렇듯 ‘다랑이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고 깎아서 만든 인간의 삶의 의지와 자연의 형상이 조화를 이뤄 형성된 것이다.
 

다락논 녹색실 안내판.

■ 상주 용포 다락논에는 풍요의 결실 예고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洛東面)의 경우 갑장산 자락에 펼쳐진 ‘다락논(다랑이논)’은 낙동면 용포리, 비룡리, 수정리, 신오리 등의 마을에 펼쳐져 있다. 낙동면은 상주시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의성군, 남쪽으로는 구미시 동성동(東城洞)과 접한다. 동쪽과 서쪽은 갑장산(甲帳山; 806m)·삼봉산(三峰山; 448m)·복우산(伏牛山; 509m) 등의 산지가 있고, 양쪽 산지 중간을 장천(長川)이 북류해 낙동강에 합류한다. 

경지율 26%에 경지면적 2369ha이고, 농산물은 쌀·보리가 주종을 이룬다. 이 밖에 특용작물로 깨가 주로 재배되고, 사과와 배가 산출되며, 누에고치와 무우 등도 많이 나는 곳이다. 경북 상주시 지천동과 낙동면, 천리면 일원에 걸쳐있는 산이 바로 ‘갑장산(甲帳山)’이다. 갑장산은 아름다움이 으뜸이라 갑(甲)을 쓰고 사장(四長)을 이룬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비롯된 산이라고 한다.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에 잠시 쉬었다 가며 영남의 으뜸 산이라 해 ‘갑장’이라 명명했다는 설도 전하는 상주의 안산이다.

상주지역에서는 ‘다랑이논’을 ‘다락논’이라 부른다. 갑장산 자락을 타고내리는 ‘용포 다락논(다랑이논)’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다랑이논은 경사진 산비탈을 힘들게 개간해 만든 계단식 논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만 의존해 천수답(天水畓)이라 불린다. 이 다랑이논에는 깊은 골짜기로 파고들었던 옛사람들의 인생 곡절이 담겨있다. 논과 논의 경계가 비뚤비뚤 자연스럽고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진 ‘다랑이논’은 논에 물을 대는 봄철부터 추수가 끝나는 가을철, 겨울철까지 태양의 각도와 보는 위치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용포 다락논’(다랑이논)은 밭과 논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조성돼 절경을 이룬다. ‘다락논 녹색길’을 따라 논 사이를 걸어 갑장산(806m) 기슭에 세워진 ‘갑장루 전망대’에 오르면 상주의 용포지역 다랑이논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스치는 풍년 들판의 모습이 풍요와 땀의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 주변 수정리, 비룡리, 승곡리, 유곡리, 신오리, 상촌리 등의 다랑이논에는 곡선 따라 패기 시작한 벼 이삭이 알차게 여물어 가고 있다.

‘용포리 다락논(다랑이논)’은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험한 지형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척박한 삶이 빚어놓은 풍광이다. 상주지역에서 말하는 다락논이란 비탈진 산골짜기에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다랑이논을 의미한다. 경사가 심한 비탈에 석축을 쌓아 폭이 좁고 길게 만든 논배미로 이뤄진다. 어느 것은 벼를 심은 논의 폭보다 석축의 높이가 더 큰 경우도 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상주 갑장산 자락의 마을에 펼쳐진 용포 다랑이논을 우수한 생태문화자원으로 보호하고, 지역의 특성이 담긴 스토리와 테마가 있는 생태관광지를 조성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 등의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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