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잘 먹는 마을이라 ‘주촌마을’ 수렁이 많다고 ‘수랑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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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잘 먹는 마을이라 ‘주촌마을’ 수렁이 많다고 ‘수랑뜰’
  • 취재|글·사진=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22.10.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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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마을공동체 스토리 〈10〉 - 홍북읍 신경리 주촌마을
옛 주촌마을에 조성된 충남도청신도시 전경.

홍북 신경리 신경3리 마을을 ‘주촌(酒村)마을’ 또는 ‘수랑뜰(수렁들의 충청도 사투리)’이라 부른다. 한자로는 주촌(酒村)마을, 우리말로는 수랑뜰(수렁들)이라 한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술을 잘먹어서 술주(酒)자를 썼다’고 한다. 따라서 ‘주촌마을’은 ‘술을 잘 먹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수랑뜰’이란 말의 의미는 이 마을의 논에는 ‘수렁’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에 수렁이 많이 있어 ‘수렁골’이라 했으며, 수렁들, 수랑들이라 불렀는데, 옛날에는 ‘수장골’이라고 부르다가 점차 많은 사람들이 쉬운 발음을 따라 ‘수랑뜰’이라 부르면서 고착화돼 ‘수랑뜰’이라 불렸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주촌(酒村)이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부터 마을 앞 논에 사람의 키로 따질 때 한 길이 넘는 수렁이 많이 있어 논을 갈 때는 그곳(수렁)을 피해서 갈았고, 모내기를 할 때는 나무 기둥을 교차해서 수렁이 있는 논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 모내기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 경지정리가 되면서 논에 있던 수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이름은 옛날부터 불러오던 ‘수랑뜰’을 익숙하게 부르곤 했다고 한다.

주촌마을(수랑뜰)은 홍북읍행정복지센터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의 북서쪽에는 용봉산(龍鳳山)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남동쪽으로는 신경리 신리마을과 신경리 자경동마을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석택리 택리마을과 접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예산 삽교읍 목리, 수촌리와 접하고 있다. 주촌마을(수랑뜰) 전체가 충남도청이전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마을 전체가 신도시로 편입되면서 70세대 156명의 주민들이 고향을 떠났다.
 

도청신도시 편입 이전인 2007년 홍북면 신경리 주촌마을 전경.

■ 충남도청신도시 편입, 마을 원형 사라져
홍북 신경리 주촌마을(수랑뜰)은 지금은 충남도청신도시로 편입돼 옛 마을의 원형이 모두 사라졌지만 편입되기 이전의 옛 주촌마을에는 서낭, 쇠때배기, 생아지, 장승배기, 웃말, 아랫말 등의 이름이 존재하며 마을을 형성했다.

‘서낭’은 수랑뜰에서 생아지로 가는 중간 지점에 서낭이 있었고, 서낭에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정월에 떡시루를 놓고 ‘우리 애들 건강하게 해달라’거나 ‘우리 며늘애 애기좀 낳게 해달라’고 하며 기원했다고 한다. 충남도청신도시로 편입되기 이전에는 참나무는 없었고 여러 그루의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쇠때배기’는 수랑뜰 동쪽에 있던 마을인데, 옛날에는 그 마을에 솟대가 박혀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솟대배기’로 부르다가 ‘쇠때배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금이 많이 났던 마을로 그만큼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힘이 센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쇠때배기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을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아래뜸’ 또는 ‘아랫말’이라 불렀다고 한다.

‘생아지’는 수랑뜰 서쪽에 있는 마을, 즉 수랑뜰에서 용봉산 쪽에 있던 마을로 용봉산 자락에 있어서 경치가 좋았던 마을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산밑의 마을이라 농경지가 부족해 가남하게 살았던 마을로 기억하고 있다. 옛날부터 언젠가는 생아지가 읍내가 된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충남도청신도시’가 건설돼 신도시로 탈바꿈한 마을이 됐다. 생아지는 옛날에 노인 한 사람이 마을 한쪽에 있는 우물에서 삿갓을 쓰고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 물고기가 산다고 해서 한자로 ‘생어(生魚)’라고 했으며, 이후에 ‘생어지’라는 말이 변해서 ‘상아지’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노인이 낚시를 했던 우물을 깊이 2미터, 들레 50여 미터의 저수지로 만들어 당시에는 이 물을 이용해 ‘마래뜰(마른뜰)’의 농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장승배기’는 수랑뜰 마을에서 홍성~덕산간 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왼편에 돌로 만든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마차를 이용해 다리를 놓았는데 그때 사용했다고 한다. 장승배기 옆에 있는 산에는 꿩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복치(伏雉)’ 형국이다. 이 자리에 묘를 쓰면 부자가 된다는 얘기가 전해졌는데, 이는 용봉산과 수암산의 경계지점에 있는 ‘매내미고개’의 모습이 매가 앉아서 먹잇감을 찾는 자리이기 때문에 매를 피해서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홍북 신경리 주촌마을은 2006년 2월 마을 전체가 충남도청이전 신도시 예정지로 확정돼 2009년 6월부터 신도시조성 공사가 시작되면서 주민들 모두가 고향을 떠났고, 기존 마을의 원형(형태)은 완전히 사라졌다. 
 

옛 홍북면 신경리 주촌마을 전경.
옛 홍북면 신경리 주촌마을 전경.

■ 현대식 건물과 아파트 숲으로 상전벽해
충남도청신도시로 편입되기 이전 주촌마을에는 전주이씨와 경주김씨 등이 각각 10가구 정도 거주했다. 경주김씨가 좀 일찍 마을에 들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촌마을은 3개반으로 이뤄졌는데, 1반은 자연부락 이름이 아랫말, 2반은 웃말, 3반은 상아지마을이라 불렸으며, 마을 전체에 70여 가구가 살았다. 

주촌마을에는 홍성읍~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변 솔밭에는 서낭당이 있어 정월보름이 되면 성황제를 지냈다. 성황제는 마을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고, 지내는 사람들만 지냈다고 한다. 주촌마을 성황제는 5·16 이전인 1960년대까지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촌마을의 중심에는 ‘신경리 주촌마을방앗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경리 주촌마을방앗간에서 용봉산 매내미고개를 가는 지방도변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인 군계삼거리에는 주촌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그곳에 충남도청이전 신도시 편입과정에서 이주민들과 관련된 업무를 진행하던 ‘충남도청이전지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도 있었다.

옛 주촌마을 지역에는 충남도청내포신도시가 조성됐으며, 현재는 ‘그린에너지(발전소)’가 우뚝서 있으며 애향공원과 이주자주택마을, 신도시의 중심상가 등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일부의 옛 흔적과 마을의 경계 부분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며, 신도시 건설로 마을의 원형은 완전히 변모해 현대식 건물과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일어났다. 

여기서 ‘주촌마을’을 ‘수랑뜰’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인 ‘수렁’에 대해 알아본다. ‘수렁’의 사전적 의미로는 ‘헤어나기 힘든 불행이나 곤욕 따위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나 또는 ‘곤죽이 된 진흙이나 개흙이 많이 괸 곳’을 뜻하는데, 본래 ‘수렁’은 물이끼 등의 식물이 죽어 침전된 토탄이 축적돼 만들어진 습지이며, 습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형태 중 하나라고 한다. 수렁은 지면에 고인 물이 산성이고 영양분이 적을 때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강수에 의해서만 물이 공급되는 수렁이 있는데 이런 것을 강수영양성이라고 한다.

수렁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토탄의 타닌이 용해돼 특징적인 갈색을 띤다고 한다. 보통 수렁의 낮은 생식력과 서늘한 기후는 식물이 빨리 자라지 못하게 하는데, 흙이 푹 젖어 있기 때문에 죽은 식물의 부패는 그보다도 느리게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토탄은 계속 축적돼 깊은 것은 수 미터까지 토탄으로 덮여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렁에는 독특한 동식물들이 살고 있고, 생물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채 홍북 신경리 주촌마을(수랑뜰)의 삶터와 들판, 골짜기 등의 원형은 사라지고, 지금은 현대식 건축물과 아파트 숲으로 덮이면서 또 다른 형태의 숲을 이루고 있다. <끝>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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