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위치한 신평양조장은 역사가 92년에 이른다. 1933년 김순식(1910~1988) 대표가 외삼촌이 운영하던 화신양조장을 인수해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외삼촌이 운영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100년에 이르는 양조장이다.
해방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김용식 대표에 이어 아들인 김용세 명인이 뒤를 잇다가 지금은 손자인 김동교 대표가 양조장을 맡아 3대째 가업으로 이어 오고 있다.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는 지난 2010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잇고 있다. 막걸리를 세련된 유리병에 담은 것도, 서울 강남역 인근에 막걸리바 ‘셰막’을 열어 백련막걸리 홍보와 함께 전통주 시장을 키워가는 것도 모두 그의 아이디어라고 전한다.
특히 신평양조장 바로 옆에 들어선 ‘백련양조문화원’에는 3대에 걸친 술도가의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했던 미곡 창고를 개조한 건물 안에는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커다란 목제 발효 통이 눈길을 끈다.
또 양조장 역사를 보여주는 손때 묻은 자료들은 보기 드문 희귀본이다. 60~70년 전 사용하던 세무공문철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발급된 주류제조 면허증, 직원들 보건증, 막걸리를 배달하던 자전거 수리비 영수증, 막걸리 첨가물 회사의 영업용 전단까지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된 자료들이다.
1930년대에 간행된 ‘주조독본’과 ‘조선주조사’ 등의 책은 지도 위에 막걸리와 소주 등 주종별 생산량과 시장 비중 등을 그래프로 나타낸 정교한 자료가 있을 정도로 사료의 가치가 뛰어난 자료들이 남아 있다.

■ 찾아가는 양조장, 체험프로그램 운영
신평양조장의 막걸리 종류는 4가지다. 플라스틱병에 담긴 대중적인 생막걸리(알코올 6도)와 유리병에 담긴 프리미엄막걸리(7도)·살균막걸리(7도)·맑은술(청주·12도) 등이다. 양조장 상당수가 막걸리를 만들 때 값싼 수입 쌀이나 정부미, 묵은쌀 등을 쓰지만 신평양조장은 수확한 지 1년 미만의 당진지역 쌀만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가업이 이어질수록 신평양조장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2대 대표였던 김 회장은 아버지의 비법을 전수받아 쌀로 만든 막걸리를 제조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평소 차(茶)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김용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79호) 회장은 2008년 막걸리에 백련(흰 연꽃)의 잎을 첨가한 신평양조장의 대표상품 ‘백련막걸리’를 개발했다. 김 회장은 “젊은이와 여성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막걸리를 고민하다 평소 차로 달여 마시던 연꽃잎을 넣은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며 “이때부터 막걸리의 고급화를 위해 품질관리에 더 신경을 썼고 플라스틱병 대신 유리병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신평양조장의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된 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2014년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생일을 맞아 열린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장에 ‘백련 맑은술(청주)’이 오르면서 ‘회장님의 술’로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대축제’에서는 2012년, 2014년, 2015년 3차례에 걸쳐 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김용세 명인이 신평양조장의 대표 막걸리를 개발했다면, 김 회장의 아들인 김동교 대표는 마케팅과 새로운 판로 개척 등을 통해 가업의 규모를 더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2010년 고향인 신평으로 내려온 김 대표는 “전통주의 맥을 잇고 싶었다”며 “2009년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전통주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양조장 옆에 소비자들이 직접 백련막걸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백련양조문화원을 조성했고, 또 서울에는 백련막걸리와 안주를 판매하는 카페도 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현재 연간 소비자 1만 3000여 명이 신평양조장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0년 3억 원이었던 연매출은 지난 2017년에는 24억 원으로 껑충 뛰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1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돼 2015년 5월에는 전통주 문화체험장인 ‘백련원’을 준공하기도 했다.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의 하나로 2억 4000만 원을 들여 조성한 백련원은 346㎡ 규모의 전통주 체험시설로, 막걸리 빚기와 막걸리 원주 거르기, 누룩전·쿠키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체험시설을 넘어 전통주의 명맥을 잇고 계승하기 위한 ‘명예 막걸리 소믈리에’과정도 운영되며, 이 과정을 이수하면 한국 막걸리협회장이 인증하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 백련양조문화원, 양조문화·희귀사료 전시
3대째 가업을 이으며 술을 빚고 있는 신평양조장의 역사는 9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대 주인인 김순식 대표는 외삼촌이 운영하던 양조장에서 일하다 이를 물려받아 1933년 지금의 신평양조장 자리에 신평양조장의 전신인 화신양조장을 차렸다. 일제의 주세령 공포로 가양주 문화가 말살되고 근대 양조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김용세 명인은 백련잎을 이용한 술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신평양조장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련의 잎을 넣어 발효시킨 연잎주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술이라고 한다.
연꽃이 피는 여름철 딴 연잎으로 고두밥을 싸서 발효시켜 술을 만든 뒤 추석 즈음에 마셨다고 한다. 신평양조장에서는 전통 방식과 달리 생 연잎이 아닌 말린 연잎을 사용한다. 쌀누룩에 물을 넣어 밑술을 만든 뒤, 연잎을 고두밥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 이는 연잎차 제조법을 응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손자인 김동교 대표는 “당시 백련막걸리가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면서 주목받고 막걸리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며 “새로운 스타일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신평양조장에서는 연잎을 넣은 백련막걸리는 세 종류로 출시되고 있는데 백련막걸리, 백련맑은술, 백련증류주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제조하는 대표 막걸리는 백련막걸리로 발효 과정에 연잎을 잘게 부숴 첨가하는 게 특징이다. 당진에서 나는 해나루 쌀로 고두밥을 짓고, 연잎을 말려 덖고, 막걸리가 발효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을 거친다.
‘백련 생막걸리 미스티’는 유리병에 담긴 프리미엄 제품으로 간척지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당진 쌀 중에서도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친 ‘해나루 쌀’을 재료로 쓰고, 재래식 항아리에서 발효해 더욱 깊은 맛을 낸다. 페트병에 담긴 ‘백련 생막걸리 스노우’는 재래식 항아리 대신 대형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사용해 가격을 낮춘 제품이다. 현재 대형마트 등에서 팔리고 있다.


살균 과정을 거쳐 보존 기간을 늘린 ‘백련 살균 막걸리’도 있다. 유통기간이 6개월이어서 면세점에서도 판매된다고 한다. 저온 살균 처리해 탄산은 없지만, 더욱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약주인 ‘백련 맑은 술’은 백련막걸리의 맑은 부분만을 떠내 2~3달 더 숙성시킨 술이다. 막걸리에 비해 더욱 깊어진 백련잎의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지난 2015년 개원한 ‘백련양조문화원’은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셨던 우리의 전통문화가 일제강점기에 말살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양조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고, 양조장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성장해왔는지 보여준다.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며 지켜온 꼿꼿한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발급된 임시 주류제조 면허증부터 연도별 세무 서류와 직원들의 보건증, 막걸리를 배달하던 자전거 수리 영수증까지, 사소한 자료들도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정리해 놓은 것에서 양조장 주인의 꼼꼼한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자물쇠가 달린 나무 상자는 일제강점기 양조장에 비치하도록 한 세무 서류 상자라고 한다.
공무원들이 불시에 양조장에 들이닥쳐 점검한 내용을 서류에 기록한 뒤 자물쇠를 잠그고 갔다고 한다. 1935년 조선의 양조 현황을 집대성한 조선주조사, 1937년 전국에 있던 양조장 4000여 개를 전수 조사해 발간한 조선주조협회 회원명부, 1938년 양조의 기본원리를 집대성해 발간한 주조독본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희귀한 자료들도 전시돼 있다.
“앞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 신평양조장에는 100년 세월을 머금은 어른 키 높이의 항아리들이 양조장 안팎으로 즐비하게 놓여있다. 금이 가고 깨진 항아리를 철심으로 꿰매고 붙인 모습이 3대가 지켜온 세월만큼 술에 대한 역사와 전통, 술을 빚는 정성과 마음 자세를 느낄 수 있는 상징이다. 지금까지 신평양조장은 막걸리를 빚어온 세월만 92년째, 앞으로 100년 세월을 향한 신평양조장의 술맛을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