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 3대 가업 잇는 양촌양조장 ‘우렁이쌀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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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 3대 가업 잇는 양촌양조장 ‘우렁이쌀 막걸리’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4.10.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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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9〉

‘일년 내내 햇빛 잘 드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 양촌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1931년 목조로 건립된 양촌양조장, 지을 때 최상의 막걸리 양조를 위해 설계
양촌양조장 상량문 ‘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 적혀
양촌생막걸리, 양촌생동동주, 우렁이쌀손막걸리, 우렁이쌀드라이 동네·전국 술

 

충남 논산은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는 한반도의 단전부(丹田部; 배꼽 아래)에 위치해 있는 중요한 힘의 원천지로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이 정착해 온 곳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이 위치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이 땅을 지배해 계백장군이 이끄는 5000 결사대와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대가 황산벌을 중심으로 백제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연산, 은진, 노성, 석성 등 4현이 위치했고, 1912년 4현을 4군으로 변경했다가 1914년 4군을 병합 논산군을 설치했고, 1996년 3월 1일 ‘시(市)’로 승격됐으며, 2003년 9월 19일 두마면이 계룡시로 분리됐다.

이런 논산에는 ‘일년 내내 햇빛이 잘 드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는 양촌(陽村; 햇빛촌)’이라는 곳이 있다. 논산시 양촌면의 지난해 말 기준 인구는 6000여 명에 이르는 곳으로, 논산의 면 단위 지역에서는 인구가 연산면과 함께 양촌면이 6000명을 넘기고 있다. 이곳 양촌면에는 국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양조장’이 있는 곳으로도 꼽히는데, ‘양촌양조장’이 그곳이다. 
 

■ 100년 역사와 전통의 양촌양조장
양촌양조장은 논산 양촌면에 있어 금강의 지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계룡산이 펼쳐지며 이어지는 풍광은 오히려 물 흐르듯 편안하며 운치 있는 따뜻한 시골의 모습 그대로다.

양촌양조의 역사는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2월 창업자인 고(故) 이종진 대표가 가내 주조로 시작해 아들인 고(故) 이명제 대표가 제2대를 잇고 다시 그의 아들인 이동중 현 대표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에 100년 세월의 양조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대를 이어 3대째 같은 장소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이곳 양촌양조장 말고는 찾기 어렵다. 2016년에는 정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선정됐다. 이동중 대표는 9남매 중 넷째인데, 학사장교로 제대한 직후인 1978년부터 술 빚기를 시작해 46년 동안 한 장소에서 술을 만들고 있는 ‘술 빚기의 진정한 달인’으로 꼽힌다.

양촌양조장 한복판에는 양조장과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함께 한 우물이 우뚝 버티고 있다. 이동중 대표의 설명으로는 “1920년대 할아버지께서 가내 주조로 막걸리 사업을 하실 때부터 사용해온 우물입니다. 6개월마다 실시하는 46개 항목의 수질검사를 다 통과해, 막걸리의 재료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청정지역이어서 지금도 근처에 공장이 들어설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양조장 안에 있는 우물을 100년 가까이 막걸리 원료로 쓰고 있다는 얘기다.

양촌양조장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건물을 지탱하는 대들보에 적혀진 상량문이다. 상량문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까닭과 공사한 날짜, 시간 등을 적은 글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 양촌양조장 상량문에는 ‘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이라고 쓰여있는데, 쇼와 6년은 우리나라의 1931년으로 양조장 건립 연도가 적혀 있다는 설명이다. 

이동중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1923년에 가내 양조장 형태로 술 양조를 시작하셨다가, 그 이후인 1931년에 양조장을 지어, 지금까지 한 장소에서 술을 빚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해방을 맞이했고, 6·25 한국전쟁을 겪는 등 나라 전체는 큰 부침을 겪었지만, 양촌양조장의 주인은 바뀌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같은 시대에 지어진 양조장 대부분이 일본식 건물 양식이지만, 양촌양조장은 한옥식으로만 지어졌다는 점이 독특하다. 1931년 목조건물로 건립된 양촌양조장은 지을 때부터 최상의 막걸리 양조를 위해 설계됐다는 설명이다. 천정과 벽 사이에 왕겨를 넣었으며, 재래식 통풍구조를 갖췄고 막걸리 발효 시 나오는 높은 열과 습도 등을 자연적으로 밖으로 빼내 내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세월, 술을 빚어온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현재 양조장 내부는 크게 반지하와 1층, 반2층의 복층 구조로 돼 있다. 반지하 공간은 막걸리의 발효와 숙성실, 1층은 제성(막걸리 거르는 공정) 탱크와 우물이 있는 작업공간, 반2층은 발효체험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발효체험실은 원래 고두밥을 냉각시키는 공간으로 쓰였는데, 반지하 공간과 연결된 통로를 통해 냉각시킨 고두밥을 밑으로 내려보냈다. 

현재 이 발효체험실 바닥에는 투명유리를 덧댄 구멍을 만들어 반지하의 발효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통풍구를 통해 발효 향을 직접 맡을 수 있다. 발효체험실 벽 곳곳에는 효모란 무엇인가? 누룩이란 무엇인가? 술이 익으면서 왜 기포가 생길까? 술 향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양촌양조장이 걸어온 길 등의 안내문 등이 적혀 있어, 양촌양조장의 내력과 막걸리에 대한 상식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양촌양조장의 대들보에 적혀있는‘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 상량문.
양촌양조장의 대들보에 적혀있는‘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 상량문.

■ 우렁이 농법 무농약 논산 쌀로 빚는 술
100년 역사의 양촌양조장의 마당에는 1930년대부터 사용하던 술 항아리와 술춘(작은 항아리)이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있다. 술춘은 소주를 숙성시키거나 술을 운반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옹기로 만들었고 알코올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구를 좁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어떤 술 항아리는 여러 차례 기워가며 고쳐 쓴 흔적이 가득한 항아리에는 용량과 1969년, 1974년 등의 연도가 표시된 오랜 항아리들이 날짜 등을 새긴 글자가 빼곡하다. 술 한 방울까지 꼼꼼히 주세를 거둬가던 일제의 흔적이란다. 헛간에 쌓여 있는 다양한 형태의 누룩 틀은 소나무에서 오동나무, 플라스틱까지 양조장 도구의 소재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양촌양조장에서는 막걸리, 청주, 소주를 생산하고 있다. 우선 막걸리 종류로는 양촌생막걸리, 양촌생동동주, 우렁이쌀손막걸리, 우렁이쌀드라이를 생산한다. 이중 양촌생막걸리와 양촌생동동주는 ‘동네 술’이다. 

반면에 친환경 무농약 우렁이 쌀로 만든 2종의 막걸리는 ‘전국 술’이다. 이렇듯 대표 제품은 이 대표의 농과대학 동기가 논산에서 재배한 무농약 우렁이 쌀로 만든 막걸리(7.5도)다. 

멥쌀로만 만든 ‘우렁이쌀 손막걸리’와 찹쌀을 주로 쓴 ‘우렁이쌀 드라이’ 두 종류가 있는데, 3주가량 저온 발효해서 만든다. 손 막걸리는 천연 감미료를 넣어 단맛이 도드라지고, 드라이는 담백한 맛에 술술 넘어가는 매력이 있다. 찹쌀 100%로 60일 저온 숙성해 만드는 ‘우렁이쌀 청주’(14도)는 옛 청주에 가장 가까운 맛을 내도록 국립농업과학원이 개발한 효모균을 사용해 빚는다. 직사광선을 피하고 술맛을 유지하기 위해 갈색 병에 담긴 청주는 양념이 강한 한식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양촌양조장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대표 제품인 ‘양촌 생막걸리’로 지역에서 나름 탄탄한 기반을 다지며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왔지만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한다. 제품의 고급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이 대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우렁이’였다고 한다. 
 

항아리에는 용량과 1969년, 1974년 등의 연도가 표시된 오랜 항아리들이 날짜 등을 새긴 글자가 빼곡하다.
항아리에는 용량과 1969년, 1974년 등의 연도가 표시된 오랜 항아리들이 날짜 등을 새긴 글자가 빼곡하다.

양조장 인근인 은진면에서 이 대표의 농과대학 동기가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 쌀을 사용해 막걸리를 빚으면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술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손을 잡고 우렁이 농법으로 무농약 재배한 논산 햅쌀로만 빚은 수제 막걸리가 2015년 첫선을 보인 ‘양촌우렁이쌀 손막걸리’와 ‘우렁이쌀 손막걸리 드라이’다. 

우렁이쌀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양촌양조의 새바람에는 속도가 붙었다. 고급화와 더불어 다음 과제는 다양화였다. 막걸리와 보조를 맞출 파트너가 필요했고, 청주를 낙점했다. 이 대표는 국립농업과학원에 기술협력을 의뢰했고, 그렇게 2년여의 연구·개발과정을 거쳐 최적의 누룩과 레시피를 완성했는데, 그게 바로 ‘양촌우렁이쌀 청주’였다고 한다. 

양촌우렁이쌀 청주는 역시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로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60일간의 저온 숙성방식을 거친 청주다. 백국균을 주로 사용하지만, 일부 황국균 누룩을 더해 술이 부드럽고 풍미가 독특해지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약주보다 깔끔한 맛이 나도록 만들었지만 동시에 찹쌀 특유의 단맛의 여운도 있는 토속 청주이기도 하다. ‘우렁이쌀 청주는 양촌양조장이 전국구 양조장으로 발돋움하는데 일등공신’이라는 설명이다. 

100년 세월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 술도가라면 켜켜이 쌓인 사연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되고도 남을 논산벌의 양촌양조장은 술꾼들에게 술과 얽힌 기막힌 사연이 많은 것처럼, 오래 묵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익어가고 있다. 
 

1960년대 직원들 모습.
1960년대 직원들 모습.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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