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지자체, 독립운동 사업 대부분 3·1절, 광복절 등 이벤트성 행사 치중해
관심에서 벗어난 독립운동 유적지 관리,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마련이 시급
충남도의회 2019년 8월, ‘충남독립운동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 통과
올해는 광복 80주년, 경술국치 115년, 치욕스러운 역사에 국민적 성찰 필요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그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운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담긴 역사적 자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인식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 많은 독립운동 유적지는 그 형태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며, 이러한 유적지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발굴하고 조명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유적지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보존·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기념사업이나 유적 발굴·보존, 현장탐방 지원 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한 곳은 광주광역시, 경기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서울특별시, 충청남도 등 단 6개 도시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2007년 8월부터 2008년 1월까지 국가보훈처 용역의뢰를 받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천 곳(추정)의 독립운동 유적지 가운데 우선 보존 가치가 높은 1585곳을 대상으로 벌인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현충시설에 대한 조사는 지난 2010년 광복 65년이 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하지 않아 유적지 훼손은 무관심과 방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2010년 현충시설 지정 1616곳 중 독립 관련 29곳뿐으로 당시 조사결과 조사 대상 유적지 가운데 멸실돼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무려 868곳(55%)으로 파악됐으며, 521곳(33%)의 유적지는 변형됐고, 9곳도 상당 부분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형 보존유적지는 125곳(8%)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1460곳(92%)이 이미 사라졌거나 심하게 훼손·변형돼 유적지의 기능을 잃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62곳은 그나마 복원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정부는 국내의 항일독립운동, 6·25 한국전쟁과 관련된 전국 1616곳의 시설물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했으며, 이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는 29곳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후 2017년 10월, 당시 문화재청(국가유산청)은 ‘망우 독립유공자 묘역’과 ‘당진 소난지도 의병총’ 등을 항일독립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섰던 선열들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방치는 소중한 역사·문화적 자산에 대한 국민적 무지를 드러내며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지가 세월이 흐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는 물론 국내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유적지 가운데 상당수가 후손이나 기념사업 주체가 없어 방치·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에 주목할 일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독립운동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 3·1절, 광복절 등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돼있어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크지가 않다. 이를 해결하려면 역사 인식을 개선하고 독립운동 유적은 물론 일제의 침략사와 우리의 독립운동사도 함께 조명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관심에서 벗어나 있던 독립운동 유적지 관리를 위해서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마련이 시급한 이유를 현장탐사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 자치단체,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지속적 발굴·보존해야
지난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가보훈처의 ‘2015년 국내외 독립유적통합운영체계구축’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5년 보훈처가 내놓은 대책의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보훈처는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 산재돼 있는 독립운동 유적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보존 관리 통합운영체계를 마련하겠다며 관련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보훈처는 2016년 국외 독립운동유적지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 실시를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 당시 보훈처에서 관리하는 1005곳에 달하는 국외 독립운동 유적지 중 774곳은 지정 이후 단 한 차례도 실태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정 이후 18년간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사적지가 163건에 달하기도 했다. 그중 375건은 중국에 소재한 사적지로 밝혀졌다. 이후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지난 2018년 대구시는 대구시에 존재하는 독립운동유적 90곳을 지역별, 내용별로 분류해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광주시의회가 광주지역 항일 독립운동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광주시 항일 독립운동유적 발굴 및 보존 조례안’ 제정을 추진, 의결하기도 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 내 독립의 밑거름인 항일유적지를 알리고 항일독립운동의 현장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18년 안내판 61개와 표지판 20개를 설치했다. 2019년에는 안내판 59개와 표지판 24개를 경기도 내 곳곳의 항일유적지에 설치 완료한 바 있다.
충남의 경우 지난 2019년 8월 충남도의회가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충남에서 펼쳐진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업적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방한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충남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도지사는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시책을 수립·추진하도록 했다.
지원사업은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과 기념시설물 설치, 독립운동 역사적 자료 수집·조사·관리, 독립운동정신 계승을 위한 교육·학술·문화 사업 등으로 규정했다. 적용 범위는 충남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충남도 내에서 활동했거나 충남 출신 독립운동가 등으로 한정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2022년 11월 서울시의 25개의 항일독립 관련문화재의 안내시설을 정비하고 관리를 강화하기도 했다. 서울소재 항일독립 관련 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19개, 서울시 지정문화재 6개소 등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도 지정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도에 따르면 항일독립유산의 체계적 보호 및 활용을 위한 것으로 해당 유산을 발굴하고 기록화하며, 지역주민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정신적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기반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한다. 특히 광복 80주년을 맞아 민족의 얼이 담긴 항일유산을 지정·홍보함으로써 도민이 역사적 자긍심을 느끼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
올해는 광복 80주년, 경술국치 115년인 해다.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한 국민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유적지의 절반 가까운 곳이 정부와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돼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사라지거나 방치·훼손된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시급한 보호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관리가 미흡한 건 해방 이후 6·25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상당수 유적이 파괴됐고,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부족으로 방치됐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운동 유적지는 도시개발과 함께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불편한 유산’으로 인식되던 적산가옥은 이국적 명소로 재평가 받는 반면 독립운동 유적지는 본래 의미조차 잊혀진 채 방치되고 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라며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러한 논란의 이면에는 적산가옥이 젊은 층 사이에서 ‘관광명소’로 부각되는 현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점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찬란한 것만이, 독립운동 유적지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사라지거나 방치·훼손된 독립운동 유적지(사적지)의 제대로 된 보호·관리로 후세에 역사적, 정신사적, 교육적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