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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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을 찾아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3.06.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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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시의회 최홍이 교육위원장

"학교 교육의 근본 목표는 민주시민 양성하는 것" 

홍성·예산 지역으로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홍성군은 제2의 도약을 맞고 있다. 충남도청소재지로서의 위상을 높여 군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홍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역할과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가는 출향인들의 성공과 좌절, 재기 등 삶의 과정을 담아내 그들이 고향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전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 꿈·희망·재능 기르는 곳으로 학교 만들어 가야
교육 중립성 지키기 위해선 교육의원 일몰제 개정 필요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의원회관 최홍이(71) 교육위원장 사무실 중앙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두 분의 선량한 웃음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더니 최 위원장은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어느 날, 노 전 대통령이 내게 문교부장관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니, 검정고시 출신이 어떻게 문교부 장관을 합니까?' 했더니 노 전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 대통령도 하는데 검정고시 출신이 문교부장관은 왜 못합니까?' 합디다. 참 어질고 평등한 양반이셨죠. 박원순 서울시장도 굉장히 지혜롭고 현명한 분이며 어찌 보면 노 전 대통령보다 더 진지한 구석이 많은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최 위원장의 어린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아버지 고 최원복 씨는 홍성공업고등학교 1학년 때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했다. 퇴학당하고 일본 순사에게 쫓겨 다녔다. 아버지는 홍성이 고향이었지만 최 위원장은 함경남도 홍남에서 태어났을 정도였다. 6·25를 겪으며 보도연맹 때문에 아버지를 여의고 다수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그도 연좌제 등 고난을 겪으며 자랐다. 고교를 졸업하는데 6년이 걸렸다. "얼마 전 전국 보도연맹 유족 모임에서 어느 분이 우리 가운데 가장 출세한 분이 '최홍이 선생'이란 말씀을 하셨어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 가운데 가장 출세한 사람이 됐는가? 그네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고달팠을지 충분히 이해됐어요. 안타까워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에서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최 위원장은 서울시교육의원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그가 전교조 창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사립학교 재단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교육예산 집행을 감시하고 일제고사 실시에 반대했으며 국제중 설립저지에 앞장섰다. 그리고 요즘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육의원 유지는 교육의 중립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교육의원 일몰제를 규정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사회의 교육 통념을 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정관념을 깨려면 자녀 이기주의, 학벌 카스트라는 것. 다시 말씀드리면 교육이 기득권의 신분 고착을 위한 제도라든가 그야말로 서민층의 한풀이의 신분상승 수단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예를 들어서 북유럽 교육 선진국 같은 나라들은 교육의 근본 목표가 민주시민 양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공동생활,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사회, 앞서가는 학생 뒤늦은 학생이 협동하는 수업, 이렇게 해서 학교에 위기라는 것은 없고 학교가 그야말로 청소년이 즐겁고 꿈과 희망, 재능을 기르는 곳으로 돼야 합니다."

최 위원장은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 담임을 맡았던 때 신경숙 소설가를 길러낸 일로 유명하다. 당시 공장에 다니며 야간 수업을 받던 열여섯 신 씨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자 최 위원장은 신 씨를 제적시키지 않기 위해 반성문을 써오라고 시켰다. 신 씨가 대학 노트 반 권을 채워 온 반성문을 보고 젊은 최홍이 선생은 "너 소설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때 최홍이 선생님이 시를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신 씨가 회고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평교사였던 그는 잘된 제자들만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전 1977년에 졸업시킨 용산공고 학생들이 20년 만에 반창회를 연다고 해서 찾아갔다. 한 제자가 구석에서 술을 마셔 얼굴이 벌겋게 됐는데 '자네는 무얼 하고 사나?'하고 물었더니 세탁소를 한다고 말했다. 그 제자는 최 위원장에게 '선생님한테 대학을 간다고 그랬더니 꼴찌가 무슨 대학을 가냐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때 최 위원장은 충격을 받고 교사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내게 교육이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거예요. 직업에 귀천 없고 서로 멸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해 북유럽 여러 국가를 방문해 선진국의 교육현장을 살펴봤다. 대학 총장이 미화원에게 바닥을 더럽혔다고 사과하고 철도공무원이 교통부장관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회, 그가 선진국을 보면서 느낀 민주시민의 필요성이었다. 고향의 모교 홍성고등학교가 충남도청 이전 내포신도시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최 위원장은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신도시가 들어온다고 이전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와 유서 깊은 터전을 유지하고 학교의 전통을 묵묵히 이어나가 지금처럼 고색창연하게 빛을 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홍성고 출신이 한 해에 서울대를 열 명이 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교육제도의 잘못입니다. 홍성고 1등급이나 홍성공고 1등급, 경기고 1등급이 저마다 자신의 자질과 환경에서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대학의 서열화는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교육대통령이 나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 위원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후배 교사들과 교육계 원로, 각종 교육 관련 사회단체들로부터 내년 지방선거 출마 종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라성 같은 서울시 교육감 후보자들이 출마할 텐데 평교사였으며 검정고시 출신이 서울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입니다. 성패를 떠나 외부에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고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해야 할지 고심 중입니다." 끝으로 최 위원장은 앞으로 정부의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지방교육자치를 확립하는데 온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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