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한 내 마음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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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득한 내 마음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
  • 홍주일보
  • 승인 2014.01.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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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질게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가까운 친지가 있으면 더욱 좋다. 친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남은 생도 부탁한다. 사후의 시신처리에 대한 부탁도 서슴없이 한다. 장지는 어느 곳을 선택하여 하라든지 남은 재산은 어떻게 처리하라는 등 이른바 유언이다. 시인은 위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기왓장 같은 내 삶이 이리도 부끄럽기만 한데,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은 아름답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寄學生(기학생)
기왓장 나의 삶이 이리도 부끄러워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 되려 아름답네
읊어본 마음의 노래 가시 되어 찌른다네.

瓦全生爲恥 玉碎死亦佳
와전생위치 옥쇄사역가
滿天斬荊棘 長嘯月明多
만천참형극 장소월명다

하늘 가득한 내 마음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寄學生)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기왓장 같은 내 삶이 이리도 부끄러운데 / 옥같이 부서지는 죽음은 아름답구나 // 하늘 가득한 마음을 찌르는 가시들이 있는데 / 소리 내어 읊어보니 달빛만 밝아지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기왓장 삶 부끄럽고 죽음 되래 아름답네, 마음 찌른 가시인데 달빛만이 밝아지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어느 학생에게 부탁하며]로 번역된다. 기상이 충만하고 이상이 높아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젊은 학생이 시인을 찾아왔던 모양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고, 대승불교 사상과 반야사상의 한 획을 그어보려고 하면서 한국불교 개혁과 중흥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한 줌으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임을 자처하면서 쏟아내려는 시심 덩어리를 주머니에 담아내려고 했다.
큰 사상 큰 뜻을 간작했던 시인이었지만 이상으로만 끝나는 자신을 기왓장 같은 인생이라고 비유했다. 그런 삶이 하도 부끄럽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지나온 세월은 가시밭길이었고, 다가 올 세월은 죽음을 앞에 두고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같이 서서히 부서져 가는 시인의 죽음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화자는 심회는 이제 후정(後情)이라는 한 사발에 가득 담아 부어 보려는 시심을 보인다. 하늘 가득한 마음을 찌르는 가시들의 하소연이 남아있는데, 소리 내어 읊어보니 달빛만이 밝아져 온다고 읊었다. 지나온 세월과 일들을 재조명해 보인다는 뜻을 담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금언과도 같은 말을 생각하게 하는 시심이리니.

<한자와 어구> 
瓦: 기왓장(같은). 全生: 전생. 인생. 爲恥: 부끄럽다고 여기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다. 玉: 옥(같이). 碎: 부서지다. 死: 죽음. 亦: 또한. 佳: 아름답다. // 滿天: 하늘 가득하다. 斬荊: 베고 찌르다. 棘: 가시. 長嘯: 길게 (피리 같은 악기를)불다. 月: 달빛. 明多: 아주 밝다. 환하고 밝다.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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