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 누가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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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 누가 알리오
  • 홍주일보
  • 승인 2014.01.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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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4> 砧聲(침성)


다듬이 소리에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아낙네들이 남편과 집안 식구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풀 먹인 무명 저고리와 바지를 다듬이 위에 놓고 펴고 마르는 일이 다듬이 소리다. 소리만 듣고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아낙들이 빨래를 펴는 공정을 잘 알고 있다. 멀리서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차디찬 감옥 속까지 들리는 작업과정은 곁에서 보지 않아도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으리니. 시인은 천자의 옷이 따뜻하다고 말하지는 말게나, 뼛속까지 스며든 이 차가움을 누가 알리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砧聲(침성)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감옥 속은 차가운데
천자의 옷 따뜻하다 말하지들 말게나
차가움 뼛속까지 스며드니 그 누가 알아주나.

何處砧聲至 滿獄自生寒
하처침성지 만옥자생한
莫道天衣煖 孰如徹骨寒
막도천의난 숙여철골한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 누가 알리오(砧聲)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디서 다듬이 소리 이렇게 들려 오는지 / 감옥 속에 가득히 찬 기운을 몰고 오네 // 천자의 옷이 따뜻하다고 말하지는 말게나 /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을 그 누가 알리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다듬이 소리 들려오고 감옥 속 찬 기운인데, 천자 옷 따뜻함이라! 이 차가움을 누가 알리’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로 번역된다. 먼 이국땅에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향수를 달랬던 시가 더러 있었고, 타향에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읊었던 시도 가끔 만난다. 그러나 감옥에 있으면서 다듬이 소리를 들으면서 추위를 참지 못해 시를 읊었던 경우는 썩 드물다. 얼마나 옷이 얇고 추웠으면 음식을 먹고 싶은 것 이상으로 다듬이 소리에 취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인은 그 소리가 두터운 옷이 되지못했음을 시에서 절절하게 읊고 있다. 캄캄한 밤에 적막을 뚫고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 들려온다는 시상에 따라 감옥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차가운 기운을 더욱 몰고 왔다고 했다. 시상에는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선뜻 느낄 수없는 정경이리라.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한 배고픔과도 비교된다.
화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몸을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옷이고 이불이다. 예쁜 용포(龍袍) 무늬 놓은 옷을 입은 사람을 천자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런 옷이 필요 없고 지금 천자 정도의 옷을 거론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겠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 차가움을 누가 알리오]라고 결구를 맺고 있다. 심한 추위에 벌벌 떠는 시심을 만나게 된다.

<한자와 어구> 
何處: 어는 곳에서. 砧聲: 다듬이질 하는 소리. 至: 이르다. 들리다. 滿獄: 감옥을 가득 채우다. 自生: 자연히 생겨나다. 寒: 한기. 차가운 기운. // 莫道: 말하지 말라. 天衣: 용포가 그려진 천자의 옷. 煖: 따뜻하다. 孰如: 누가 알리요. 徹: 뚫다. 통철하다. 骨寒: 뼛속까지 스며든 차가운 기운.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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