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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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라
  • 홍주일보
  • 승인 2014.0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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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6>

 

민족적 큰 스승을 만난다. 말로 하는 조국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인 조국이다. 조국을 잃었을 때 학문적, 종교적, 문학적이 아니라 몸으로 승화했던 시인이다. 그가 애타게 부르짖은 임은 바로 조국이자 부처였다. 자유시 ‘님의 침묵’에서나 정형시 ‘추회(秋懷)’등에서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민족 시인이자 언론인이며 스님이었다고 추앙하며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시인은 이겼다는 기별은 아직도 오지 않았건만, 벌레만이 울어대고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라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懷(추회) 
보국하다 빈 칼집 옥중 신세 지겨운데
이겼다는 기별 없고 풀벌레만 우는구나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백발신세 늘어가고.

十年報國劒全空 只許一身在獄中
십년보국검전공 지허일신재옥중
捷使不來蟲語急 數莖白髮又秋風
첩사불래충어급 수경백발우추풍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라(秋懷)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십년 세월 보국하다 칼집은 완전히 비고 / 한 몸 다만 옥중에 있음이 허용 되었네 / 이겼다는 기별 아직도 오지 않았건만 벌레는 울어대고 / 또 다시 부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이여라]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십년 보국 칼집 비고 이 한 몸은 옥중신세, 승리 기별 오지는 않고 백발만 늘어나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어느 가을날의 심회]로 번역된다. 시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이별을 통해 만남을 이루는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원리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세속적 사랑의 종교적 승화에 대한 이념적 동경을 노래했다. 이별이란 소멸의 변증법 설정은 존재의 무화적(無化的) 충격을 통해 재생과 생성을 이룩하려는 ‘무의 통과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리를 지니게 되어, 자율적인 소멸은 자율적인 생성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이별의 변증법적 원리가 내포된다고 그의 시문에서 강조한다. 그래서 십년을 보국하다 칼집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다고 하면서 한 몸 다만 옥중에 있는 것으로 허용 되었다고 했다. 국가를 위해 노력했지만 남는 건 옥중 신세뿐이었다는 시상이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 철학적 사상을 담고 있기에 가을의 감회를 담는 시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옥중의 다른 소회다. 나라에서나 독립군이 이겼다는 기별 아직 오지 않았건만 그래도 여전히 벌레는 울어대고, 억세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늘어나는 백발만 가득하다는 시심을 담아냈다.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친 큰 스승의 가르침 앞에 그저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다른 옥중시에서도 보인 것처럼 모진 추위에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자와 어구> 
十年: 십년. 報國: 보국하다. 劒全空: 칼집이 완전히 비다. 只: 다만. 許: 허용하다. 一身: 한 몸. 在獄中: 옥중에 있다. // 捷使: 싸움에 이겼다는 기별. 不來: 오지 않는다. 蟲語急: 벌레만이 울어댄다. 승전의 아무런 기별이 없다. 數莖: 몇 줄기. 白髮: 백발. 又: 또 다시. 秋風: 가을바람.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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