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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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
  • 홍주일보
  • 승인 2014.02.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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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8>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는 어느 시인의 호소가 들리는 듯하다.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언변의 진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제 침략시대는 한다한 지식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사석에서 시대를 비판하는 말도 그들의 감시망을 막지 못했고, 언론을 통한 필설도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전후한 기간에는 더욱 그랬다. 시인이 웅변은 은이라지만 침묵은 금이라고 했으니,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獄中吟(옥중음)

앵무새 언변 좋고 내 언변 미치지 않네
웅변은 은이라 하고, 침묵은 금이라 하니
금으로 자유의 꽃을 몽땅 다 사버렸으면.


壟山鸚鵡能言語 愧我不及彼鳥多
농산앵무능언어 괴아불급피조다
雄辯銀兮沈默金 此金買盡自由花
웅변은혜침묵금 차금매진자유화


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獄中吟)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농산의 앵무새는 언변이 좋기로 유명한데 / 내 언변 그 새에 미치지 못함이 부끄럽네 // 웅변은 은이라지만 침묵은 금이라 했으니 /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앵무새는 언변 좋고 내 언번은 못 미친데, 나는 침묵인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사리’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옥중에서 자유를 원하며]로 번역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중의 함성을 듣곤 한다. 그 만큼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는 방만과는 다르다. 내 자유라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자유는 안 된다. 방만한 생활을 해서도 안 된다. 민주 시민으로서 나와 네가 공유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입장에서 취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암흑의 일제 강점기에는 인간이 원하는 그런 자유가 없었다.
그래서 시인은 자유를 그리워하며 목말라 했을 것이다. 아니다. 영어(囹圄)의 신세로 감옥에 있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언덕과 산에 사는 앵무새는 언변이 좋아 언제나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데, 시인의 언변은 그 새에 미치지 못함 늘 부끄러워했다는 선경의 심회를 담아냈다. 시인의 언변과 앵무새의 언변을 비유한 착상은 시적인 농도와 분위기를 긴장으로 끌어내는 기법이다.
후정(後情)으로 이어지는 화자의 시상은 멋진 그림 한 폭을 잘 그려놓았다. [그러나 웅변은 은이라지만 침묵은 금이라 하니 / 나는 이 금으로 자유의 꽃 몽땅 다 사버리겠네]라고 했다. 앵무새 같은 멋진 웅변보다는 화자 같은 침묵이 금이라고 하면서, 이제 이 금을 몽땅 팔아 소중한 자유를 사버리겠다는 시상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 진다.

<한자와 어구> 
壟山: 언덕과 산. 鸚鵡: 앵무새. 能: ~할 수 있다. 言語: 말. 말을 잘 하다. 愧: 부끄럽다. 我: 나. 不及: 미치지 못하다. 彼鳥: 저 새. 多: (말을) 잘하다. // 雄辯: 웅변. 銀兮: 은이다. 은일진데. 沈默: 침묵. 金: 금이다. 금일진데. 此金: 이 금. 곧 여기선 ‘침묵’. 買盡: 다 팔다. 自由花: 자유의 꽃.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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