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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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아오네
  • 장희구<시조시인>
  • 승인 2014.03.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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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1> 獨窓風雨(독창풍우)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어느 봄날 창가에 스친 강한 비바람을 물끄러미 보았던 것 같다. 홀로 있는 시인 자신을 한국으로, 가만히 있는 창가를 심하게 두드리는 바람과 비를 일본으로 비유하며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으로 착잡했음을 상상을 해본다. ‘창문을 왜 가만히 두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도 시상이 서슴거린데 왜 비바람은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시인은 낮잠에서 놀라 깨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아오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獨窓風雨(독창풍우) 

홀로 상심 더했더니 흰머리 생겨나고
낮잠에서 놀라 깨니 사람은 보이잖네
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고오네.

四千里外獨傷情 日日秋風白髮生
사천리외독상정 일일추풍백발생
驚罷晝眠人不見 滿庭風雨作秋聲
경파주면인부견 만정풍우작추성

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아오네(獨窓風雨)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4천리 밖에서 홀로 상심만이 더하더니 / 날마다 가을바람 불적마다 흰머리가 생기었네 // 낮잠에서 놀라 깨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 뜰 가득 비바람 소리에 가을을 몰고오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흰 머리 생겨나니 상심만이 더해가고, 뜰 가득 비바람 소리 가을을 몰고 오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창가에 스치는 비바람]으로 번역된다. 4000리 밖이라면 아마 지금의 중국 연변지역이 아니었나 싶다. 일송정(一松亭)이 있고, 만주 벌판을 달리면서 독립운동을 폈던 요람의 지역이었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싸움은 우리들의 기억에서 떠날 수는 없다. 만해도 독립선언문 서명 33인의 한 사람이었기에 가는 마다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들을 격려하면서 등을 두드려주었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시인은 비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즈음이었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4천리 밖에서 홀로 국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깊은 상심에 빠졌더니 또 다시 소소한 가을이 돌아와 차가운 바람이 불적마다 흰머리가 한 줌씩 더 생긴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자연적으로 나이가 드는 것과 상심 때문에 고민하면서 흰머리가 생기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화자는 창밖을 보는 순간 낮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공상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나니 눈두덩의 매서운 채찍을 그대로 두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깜짝하는 낮잠에서 놀라 깨고 보니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뜰 가득 비바람 소리가 한 움큼 가을을 몰아온다는 시상을 일으켰다. 계절이 바뀌면서 또 다시 무언가 해야겠다는 정중동(靜中動)의 시상을 만난다.


<한자와 어구> 
四千里: 사천리. 外: 밖. 獨: 홀로. 傷情: 상심하다. 日日: 날마다. 秋風: 가을바람(분다). 白髮: 백발. 흰 머리. 生: 생기다. // 驚: 놀라다. 罷: 파하다. 깨다. 晝眠: 낮잠. 人不見: 사람이 보이지 않다. 사람들이 없다. 滿庭: 뜰에 가득하다. 風雨: 바람과 비. 作: 짓다. 秋聲: 가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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