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만이 끝없이 옷에 감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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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향기만이 끝없이 옷에 감기는구나
  • 장희구 박사<시조시인>
  • 승인 2014.04.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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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3>

 

스님은 선방에 앉아 참선에 정진할 수만은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동료 스님에게 불전을 강론하기도 하고, 불전의 어느 구절을 두고 토론도 하며 불심을 키워나간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계절이 바뀌면서 찾아오는 반가운 꽃 손님도 만나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친구와도 서슴없이 대화한다. 선방의 후원을 별다른 잡념 없이 무심코 걷노라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도 한다. 시인은 양쪽 기슭 쓸쓸하여 모든 일 번거로움은 없고, 유인이 스스로 가볍지 아니함을 감상하고 돌아오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登禪房後園(등선방후원) 
양쪽 기슭 쓸쓸하여 모든 일이 번거롭고
가볍지 아니함을 감상하고 돌아오네
절 안은 햇볕 찌는데 가을 향기 옷을 감네.

兩岸寥寥萬事稀 幽人自賞未輕歸
양안요요만사희 유인자상미경귀
院裡微風日欲煮 秋香無數撲禪衣
원리미풍일욕자 추향무수박선의


가을 향기만이 끝없이 옷에 감기는구나(登禪房後園)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양쪽 기슭 쓸쓸하여 모든 일 번거로움은 없고 / 유인이 스스로 가볍지 아니함 감상하고 돌아오네 // 절 안에는 미풍 일고 햇볕은 찌는 듯한데 / 가을 향기만 끝없이 옷에 감기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모든 일 번거로움 없어 가벼움 감상하네, 미풍이는 절 안으로 가을 향기 감기누나’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선방 뒤뜰에 오르면서]로 번역된다. 시인은 틈틈이 선방 뒤뜰을 걸으며 잡념에 휩싸였던 모양이다. 어디 선방 뒤뜰 뿐이겠는가. 암자며 계곡이며 두루 산책도 했으리. 그러다보면 시심도 키우고, 건강도 챙기는 한가한 시간이 이었을 것이다. 지인이 찾아오면 선방에서 하지 못했던 대화를 암자나 냇가에 앉아 때로 그윽한 다향에 취하기도 했고, 기분이 좋으면 곡차도 한 잔씩 했으리.
시인은 이렇듯 사색은 선방 후원을 걸으면서 상당한 시상을 일으켰다. 선방의 양쪽 기슭 쓸쓸(요요)하여 인간세상 번거로움은 없고, 유인(시인 자신을 가리킴)은 풍광(風光)에 취하다 보니 돌아 갈 때도 잊는다 했다. 선방 후원을 걷다보면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고 사물의 가볍지 아니한 것들을 모두 감상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시상을 일으키거나 번민을 잊어보려는 데는 더 없이 좋았던 모양이다.
화자는 선경의 심회를 다소곳이 담아낸다. 절 안에는 가볍게 미풍 일면서 햇볕이 찌는 듯하더니만, 은은한 가을 향기가 끝없이 퍼지면서 옷깃에 감겨 온다는 시상을 일으키면서 화자 자신도 그만 취하고 만다. 진한 가을 향기였다면 벼가 익어가는 화향(禾香)이나, 그윽한 국향(菊香)이 아니면 어느 향기 더함이 있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리.

<한자와 어구> 
兩岸: 양쪽 기슭. 寥寥: 괴괴하다. 쓸쓸하다. 萬事: 모든 일. 번거로운 일. 稀: 적다. 幽人: 숨어 사 사람. 自賞: 스스로 취하다. 未輕歸: 돌아갈 것을 가볍게 여기지 못함. // 院裡: 절 안에. 微風: 가벼운 바람. 日: 해. 欲煮: 삶고자 하다. 秋香: 가을 향기. 無數: 끝없어. 撲: 붙잡다. 禪衣: 선의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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