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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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로세
  • 장희구<시조시인>
  • 승인 2014.04.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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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4>

 

깊은 산중의 한 낮은 고요함 그대로였을 것이다. 시인의 상상은 산의 한 낮을 그대로 둘리 없다. 뾰족한 봉우리도 그려보았을 것이고, 새소리 바람소리까지도 시상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아 넣었을 것이다. 아뿔싸! 그것만이 아니었네. 산 봉오리란 창에 고슴도치 한 마리가 앉아 있음까지 상상하더니만 눈바람을 대비시키면서 지난해의 추웠던 계절을 상상해 낸다. 시인의 상상력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인경(人境)이 고요하고 낮 기운도 차가운데,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라고 읊었
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山晝(산주) 
창에 모인 봉우리 눈바람에 처연한데
인경은 고요하고 낮 기운도 차갑다네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의 공이라네.

群峰蝟集到窓中 風雪凄然去歲同
군봉위집도창중 풍설처연거세동
人境寥寥晝氣冷 梅花落處三生空
인경요요주기랭 매화낙처삼생공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로세(山晝)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봉우리 창에 모여 고슴도치인 듯하더니 / 눈바람 몰아치니 처연히 지난해인 듯 하네 // 인경(人境)이 고요하고 낮 기운도 차가운데 /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로세]라는 시심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창에 모인 고슴도치 처연히 지난해인 듯, 인경이 고요한데 삼생의 공 매화꽃 진 자리’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대 낮에 산속에 들어가서]로 번역된다. 삼생은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고 있는 바, [전생=현생=후생]을 아울러 일러 쓰이고 있는 말이다. 그렇다. 불가에서는 전생도, 현생도 그리고 다가오는 후생도 모두가 텅 비어 있는 공이라고 했다. 꽉 차 있는 것보다는 비어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글씨나 그림도 여백 없이 꽉 차있어 답답한 것보다는 어딘가, 무엇인가 비어있어 어느 것인가 채워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긴다 하여 여백의 미를 생각하게 한다.
시인도 이런 점을 생각했다. 멀리 보이는 산 봉오리가 창에 옹기종기 모여서 고슴도치의 그림인 양 하지만, 눈바람은 몰아쳐도 지난해인 듯하다는 시상이다. 처음부터 대구의 묘미를 적절하게 살려 내고 있다. 산봉우리가 창에 옹기종기 모여서 그림인 양 자랑하지만, 바람과 눈은 지난 해 불던 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화자는 이런 자연의 대비에 감복하더니 후정(後情)이란 두툼한 시상을 얽혀놓았다. [인경(人境)이 고요하고 낮 기운도 차가운데 /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의 공(空)이어라]라는 불자의 시심을 이끌어냈다. 사람들 사는 곳은 조용한데 초봄을 알리는 양 매화꽃이 지는 곳마다 삼생의 공으로 남았다는 다소 역설적인 표현에 큰 시심을 만나는 듯하다.

<한자와 어구> 
群峰: 여러 봉우리. 蝟: 고슴도치. 集到: 모여 이르다. 窓中: 창 가운데. 風雪: 바람과 눈. 凄然: 처연하게 去歲: 지난 해. 거년. 同: 같다. // 人境: 인경. 사람이 사는 곳. 寥寥: 고요하다. 晝氣冷: 낮기운이 차다. 梅花: 매화꽃. 落處: 지는 곳. 떨어진 곳. 三生空: 삼생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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