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쿠려, 청춘을 삼켜버린 내 병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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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쿠려, 청춘을 삼켜버린 내 병일지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04.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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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5>

 

시는 상상이다. 못생긴 얼굴도 잘 생기게 화장을 시키고, 가까이 있는 사물도 멀리 있음으로 상상해 냈다. 시인은 시를 짓고자 하는 상상을 시벽이라 했다. 시는 누가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든 시인의 생산품이다. 그런데 그 도가 지나쳐 얼굴에 살이 빠지고, 입맛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얼굴이 야위었으며, 몸을 지탱하게 해 주는 수분이 부족하여 탈진했던 병이었다. 시인은 시를 너무 즐겨 야위었으니 사람을 탈진하게 했고, 얼굴에 살이 빠지고 입맛도 잃고 말았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笑詩癖(자소시벽)
너무 즐긴 시 때문에 야위고 탈진하여
얼굴엔 살 빠지고 입맛도 잃었구나
청춘을 삼켜버린 병 가련함만 한탄하며.

詩瘦太酣反奪人 紅顔減肉口無珍
시수태감반탈인 홍안감육구무진
白說吾輩出世俗 可憐聲病失靑春
백설오배출세속 가련성병실청춘

가련쿠려, 청춘을 삼켜버린 내 병일지니(自笑詩癖)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를 너무 즐겨 야위었으니 사람을 탈진하게 했고 / 얼굴에 살 빠지고 입맛도 잃고 말았네 // 친구들은 세속을 떠난 양 말을 하지만 / 가련쿠려, 청춘을 삼켜버린 병이라고 소리하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너무 야위어 탈진했고 입맛도 잃었다네, 세속 떠난 말들 하나 청춘을 삼켜버린 병환’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시 쓰는 버릇을 비웃다]로 번역된다. 고려말 시성 백운거사도 이와 비슷한 시를 썼다. 늦게까지 시를 쓰고 잠자리에 들어도 집안 천장이 온통 시로만 보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시에서 자신의 병이라 했다. 만해도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시가 곧 말이요, 생각이며 사상이요, 그 자체가 생활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두 시인은 시벽(詩癖)에 걸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시인은 시를 너무 즐겨 몸이 야윌 대로 야위었으니 생활에 지장이 줄 정도로 사람을 탈진하게 만들었고, 얼굴에 살이 빠지고 입맛도 잃고 말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시인의 서정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개인적 서사적인 시투의 한 전형이다. 자유시, 시조 등 문학적인 시상을 떠올릴 때나, 언론인으로서 신문기사를 쓸 때, 불제자로서 불교에 관한 글을 쓸 때도 이런 문벽(文癖)을 쓴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이렇듯 화자의 친구들은 세속을 떠난 양 말도 더러들 말했지만, [가련하구려, 청춘을 삼켜버린 내 병이라고 소리하네]라고 통회하는 한 마디를 쏟아냈다. 한시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고 이런 글이 나올 리 없다. 한시에 일생을 걸었던 자취도 이 한 편의 시 속에서나마 읽어 낼 수 있지 않는가. 한시를 쓰면서 한 경지에 도달한 대시인임을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詩瘦: 시벽. 太酣: 너무 여위다. 反: 도리어. 奪人: 사람을 빼앗다. 사람이 탈진하다. 紅顔: 홍안. 減肉: 살이 빠지다. 口無珍: 입에는 밥맛이 없다. // 白說: 말하다. 吾輩: 내 친구. 혹인 친지들. 出世俗: 세속을 떠나다. 可憐: 가련하구나. 聲病: 병이라고 소리치다. 失靑春: 청춘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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