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저절로 돌고 돌아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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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저절로 돌고 돌아가지 않는가
  • 장희구 박사 <시조시인>
  • 승인 2014.04.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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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6>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한다. 스스로 즐거워함 없이 진정한 즐거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픔도 스스로 달래는 것이요, 외로움이 스스로 달랜다. 남이 건네는 한 마디는 위로되어 자락(自樂)의 한 길을 인도하는 것일 뿐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에서부터 자신이 만들어 간다는 가르침을 접한다. 선현들의 시문 속을 들여다보면 술과 외로움과 괴로움의 해소는 상관관계가 많이 높아 보인다. 철이 마침 좋은지라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즐겁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自樂(자락) 
철 좋아 막걸리 한 잔 어찌 시가 없으리
나와 세상 둘이서 세사(世事)를 잊고 사니
저절로 돌아간 사계절을 사람들이 맞이하네.

佳辰傾白酒 良夜賦新詩
가진경백주 양야부신시
身世兩忘去 人間自四時
신세량망거 인간자사시



계절은 저절로 돌고 돌아가지 않는가(自樂)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철이 마침 좋은지라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 이 좋은 밤 어찌 시 한 수가 없을 수 있겠는가 // 나와 세상 둘이 같이 아울러 세사를 잊었으니 / 사람은 저절로 네 계절이 돌아가는 것 맞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막걸리 한 잔 기울고 시한 수 가 없으리오, 세상과 함께 세사 잊고 네 계절은 돌아가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스스로 즐거워하며]로 번역된다. 즐거움은 누가 한 아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일진대 그것을 모르고 아옹다옹하며 산다. 만족하면 즐겁고 만족하지 못하면 즐겁지 못하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즐거운 것이요, 나이가 한 살 더 먹어도 순응한 세월 앞에 한 바탕 웃고 나면 또한 즐겁다. 그럼에도 세월만 한탄하고 늙어감을 서운해 한다면 비통에 젖고 만다.
시인은 이런 즐거움을 잘 알고 있어 보인다. 스스로 즐거워하는 방법을 익숙해 있는 듯도 하다. 그래서 시절이 마침 하 좋은지라 막걸리 한잔을 곁에 두고 혼자서 기울면서 [이 좋은 밤 어찌 시 한 수 없을 수 있는가]하면서 시 한 수에 취해버린다. 시심의 세계에 푹 빠지고 나면 그저 그렇게 즐거운 것은 왜 그리 번민과 고민 속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던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화자의 큰 시심 주머니를 만나게 된다. 주위에 누가 있든 없든 간에 관계치 않는다. 세상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어울리는 세상 둘이 있으면서 온갖 시름 잊게 되면 봄이 가면 여름이 도래하는 진리를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그냥 오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계절은 저절로 돌고 돌아간다고 하면서 세월을 낚고 있다는 시심이다.

<한자와 어구> 
佳辰: 좋은 계절이다. 傾: 술잔 등을 기울다. (술을) 마시다. 白酒: 백주. 막걸리. 良夜: 좋은 밤. 賦: 시를 짓다. 新詩: 새로운 시. // 身世: 나와 세상. 세상과 자신. 兩: 둘. 두 개체. 忘去: (세월이) 가는 것을 잊다. 人間: 인간. 自: 저절로. 四時: 사시를 맞다. 세월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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