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바라보며 푸른 시 마음껏 읊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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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바라보며 푸른 시 마음껏 읊조리네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05.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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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8>

 

스님이 암자를 찾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조용한 곳을 절간이라고 했다. 사찰보다 더 조용하여 수도정진하기에 좋은 곳이 암자다. 그래서 고승들의 수도는 주로 암자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백화암(白華庵)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과 함께 색깔이 희고 아름다운 절경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눈이 많이 왔던가. 깨끗하여 수도정진하기에 좋은 곳이란 뜻을 한껏 담고 있으렸다. 시인은 비록 길은 끊어졌으나 외로운 흥(興)만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 한 번 바라보면서 마음껏 시를 읊조렸다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訪白華庵(방백화암) 

오솔길 찾았더니 사방 풍광 새로워라
길은 비록 끊어졌으나 외로운 흥 일어나
푸른 시 읊조린다네, 한 번 더 바라보며.

春日尋幽逕 風光散四林
춘일심유경 풍광산사림
窮途孤興發 一望極淸唫
궁도고흥발 일망극청금

한 번 바라보며 푸른 시 마음껏 읊조리네(訪白華庵)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날 그윽한 오솔길을 찾았더니 / 사방의 숲을 따라 가니 풍광(風光)이 새로워라 // 길은 비록 끊어졌으나 외로운 흥(興)만은 일어나서 / 한 번 바라보며 마음껏 푸른 시를 읊조리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오솔길을 찾았더니 풍광 더욱 새로워라, 외로운 흥 일어나니 푸른 시를 읊조리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백화암을 찾아서]로 번역된다. 백화암은 경기도 양주군에 불곡사에 소속되어 있은 작은 암자다. 시인은 백화암을 찾았던 모양이다. 수도의 길은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장소를 옮김에 따라 정진의 분위기를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백화암에서도 시심 덩이는 발동하여 시문 속에 깊이 잠들어 있다.
백화암을 찾았던 시인은 어느 봄날 산수와 자연을 벗하면서 오솔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풍광에 빠졌다. 그래서 그윽한 어느 봄날 오솔길을 걷기 위해 찾았더니 굽이굽이 길을 따라 우거진 숲을 가노라니 풍광(風光)이 새롭고 좋았다는 시심을 발휘한다. 선경(先景)이라는 자연을 그대로 음영하고 있다. 이런 자연 속에서 시를 짓기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길이 계속 이어졌더라면 시적인 흥취가 머리를 맴돌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이 끊어지고 나니 저절로 흥이 일어나면서, 자연을 보는 마음의 시심이 발동하여 시를 읊조리면서 시상을 얼게를 짜 맞추기에 바빴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의 비유법에 따른 대구법은 전구나 후구를 막론하고 하늘을 찌를 듯하다. 매구마다 대구요, 글자마다 비유적 상징이다. 가운데 [尋과 散, 孤와 極]의 낱자도 동사와 형용사란 대구의 조화를 이룩해 놓아 시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한자와 어구>
春日: 봄날. 尋: 찾다. 幽逕: 오솔길. 風光: 풍광. 散: 흩어지다.. 四林: 사방의 숲. // 窮途: 길이 다하다. 끊어지다. 孤興: 외로운 흥. 發: 발하다. 一望: 한번 바라보다. 極: 다하다. 마음껏. 淸唫: 맑은 시를 읊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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