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이 안중근 의사의 정신 알고 기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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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이 안중근 의사의 정신 알고 기렸으면”
  • 김현선 기자
  • 승인 2014.08.0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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⑰안중근 평화재단 이진학 이사장

 


“안중근 장군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 선양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안중근평화재단 이진학(56) 이사장은 힘주어 말한다. 결성초등학교 출신의 재중사업가인 이 이사장은 중국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기습적으로 세운 인물이다. 그가 안중근 의사 선양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5년부터다. 당시 그는 하얼빈을 방문한 고건 총리를 만났다. 연설에서 고건총리는 하얼빈 시 정부 인사들에게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현장인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세워 한국과 하얼빈의 각별한 인연과 안 의사의 정신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0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업을 해온 이 이사장은 그 역할이 자신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안중근 의사는 죽기 전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후손으로서 그 뜻을 못 이뤄드려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죽어서도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안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동상 제막에 나섰습니다” 이 이사장은 이후 여러 단체에서 자문을 얻고 1억 7000만원의 사비를 들여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만들었다. 동상은 육군 이인희 대령(육사 39기)이 설계디자인을 맡고 조각은 안중근 의사의 숭모자인 하얼빈 공대의 양세창 교수가 맡았다. 동상은 5개월의 제작과정을 거쳐 높이 3m, 무게 1.5t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동상은 하얼빈의 중심지 중앙대가의 유로백화점 앞 광장에 2006년 1월 6일 세워졌다. 역사적 현장에 안 의사의 동상을 세운 감격도 잠시, 중국정부의 철거명령이 내려졌다.

‘공공장소에 외국인 동상을 세울 수 없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이 이사장은 결국 동상이 세워진 지 11일 만에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동상은 이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로백화점으로 옮겨졌다.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나 안 의사의 동상은 의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로 옮겨지게 됐다. 2009년 8월 15일 광복의 아침,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국내로 들어왔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을 출발한 동상은 안 의사가 재판을 받은 뤼순에 머문 후 다롄항을 거쳐 9월 1일이 돼서야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동상은 또 한 번의 시련을 겪는다. 보훈처와 일부 단체가 동상과 안 의사의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효창공원 반입을 불허한 것이다. 안 의사의 동상은 원래대로라면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09년 10월 26일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제막될 계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안 의사의 동상은 10월 26일 의거일에 맞춰 부천 중동공원으로 옮겨졌고, 공원의 이름도 ‘안중근 공원’으로 바뀌었다. 안중근 공원에는 안 의사의 시와 글이 새겨진 청동 부조 조형물도 함께 설치돼있다. 이 이사장은 이후 2010년 3월 함평 상해임시정부청사 복원터에 2억 1000만원을 들여 두 번째 동상을 세웠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단순한 동상 건립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안 의사의 정신을 이어받는 일입니다” 안중근평화재단은 매년 안 의사를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안중근평화마라톤을 비롯해 안중근정신실천 전국웅변대회, 안중근유묵 보급운동, 안중근 출판사업 등이 그 예다. 또한 재단차원에서 ‘안중근평화대상’을 만들어 안 의사의 평화정신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안중근 운동에 기여한 정치인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안중근평화대상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고 안중근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2009년 제정됐다. 올해도 안 의사 하얼빈 의거 105주년을 기념해 제7회 안중근 평화마라톤대회를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연다.

 

 

 

 


그는 “의거 105주년을 맞아 역사의 현장에 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한 적이 없어 올해 열리는 기념식이 현장에서 열리는 기념식으로는 최초다. 현재 하얼빈 시 정부에 계획서까지 낸 상태다. 의거 105주년과 함께 내년에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지 105년만에 다시 재판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발렌타인데이로만 알고 있는 2월 14일이 안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사람들이 그 날을 그저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로만 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당시의 재판은 불평등하고 부당한 재판이었습니다. 105년 만에 재판을 다시 열어 후손들에게 재판이 잘못됐음을 알리고 안 의사의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고 싶습니다” 내년 2월 14일에 있을 재판을 위해 이 이사장은 벌써부터 재판장에 설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이미 재판장 역에는 이 모 법학교수를 추천한 상태다. 그는 국내에서 30~40명의 인원을, 다롄국제학교에서 50~100명의 학생을 선발해 재판이 이루어지는 참관인석에 초청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애국선열의 뜻을 살려나가자고 강조했다. “홍성은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이라 불렸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등 근대사에 오래도록 남을 분들을 배출해냈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근대사를 기억하고 애국선열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이진학은 누구?
△결성초등학교 △한양대학교 졸 △한중문화경제교류협회 △유로백화점 대표이사 △화진국제무역(주) 대표이사 △안중근평화재단 이사장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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