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가득한 쓸쓸함 스러질 줄 몰라라 : 漁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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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가득한 쓸쓸함 스러질 줄 몰라라 : 漁笛[2]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8.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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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0>

漁笛(어적)[2] / 만해 한용운

둔세 꿈 못 견디어 애끊음 달래지 못해
그 소리 바람인 듯 내 가슴을 치는데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몰라라.

韻絶何堪遯世夢 曲終虛負斷腸愁
운절하감둔세몽 곡종허부단장수
飄掩律呂撲人冷 滿地蕭蕭散不收
표엄율여박인랭 만지소소산부수 


漁笛(어적)[2] / 만해 한용운어옹이 낚시 하러 나가려면 내자가 낚시 도구며 먹을거리를 챙겨주어야 한다. 거기에 막걸리 몇 사발 되는 술병까지 챙겨주면 제격이다. 아내가 있는 어옹은 그나마 다행이다. 홀로 사는 어옹에게 그럴 수가 없다. 혼자 낚시 도구를 하지만, 술병인들 어쩌랴. 그럴 수가 없다. 동료 낚시 친구를 만나기가 바쁘게 한 잔 술을 청해보지만 그저 뒷머리만 보이는 동료를 가끔 만나면 낚시할 기분이 ‘싸악’ 가신다. 어옹이 피리를 부는 소리가 온 천지에 가득하여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모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천지 가득한 쓸쓸함은 스러질 줄 몰라라(漁笛[2])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락이 기막히니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 / 곡조 끝나도 애끊는 시름 달래지 못하네 // 그 소리 바람이 인 듯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 스러질 줄 몰라라]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둔세 꿈 어찌 견디랴 곡조 끝나 시름남아, 내 가슴을 치는데 스러질 줄을 몰라라’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기잡이 어부의 피리소리(2)]로 번역된다.

 

 

 

 

 


앞 연에서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떠있는데 / 갈대꽃을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르는구나 // 단풍 든 저 너머엔 낙조(落照)만이 지는데 /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라는 선경후정을 잘 담아낸 시인은 이제 경련과 미련에서 어부의 마음속을 꿰뚫듯이 기막힌 심회를 쏟아 붓고 있다. 시인의 시상은 천길 물속에 헤엄쳐 들어가 모두 담아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부가 뽑아낸 그 가락이 기가 막히니 어둡고 고통스러운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라고 쏟아내는 한(恨)스러움에 전생과 내생까지도 모두 착각하는 양 은은하게 들린다. 어부가 타는 한 곡조가 끝난다 하더라도 애끊는 시름을 달래지 못한다고 했다. 어옹의 마음속을 거울을 드려다 보듯이 훤히 보는 시상이다. 화자에겐 더 이상 가슴에 남아 있는 심회의 한 마디를 쏟아 붓을 양으로 가슴을 치는 한을 담는다. [그 소리 바람이 인 듯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몰라라]라는 미련(尾聯)의 호소 한마디다. 온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더 이상은 수습할 수가 없다는 시상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을 어부의 피리 소리에 담으려는 시심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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