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 버들이라 혹시 상할까 염려되어서 : 古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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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 버들이라 혹시 상할까 염려되어서 : 古意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8.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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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1>

 

시적인 상상력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는 흑백논리는 안 된다. 이것이기에 저것은 당연하다는 순기능적인 논리도 안 된다. 이것이었다면 달리는 저것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필요하고, 이것이었다면 전혀 다른 저것이 생성되었다는 착상이 시적인 상상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가 시이기 위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생각을 시 얼게 구물에 읽히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古意(고의) / 만해 한용운

맑은 밤 칼을 짚고 우두커니 섰더니만
눈서리에 천추인들 안중에도 없었어라
꽃버들 혹시 상할까봐 봄바람만 불러오고.

淸宵依劒立 霜雪千秋空
청소의검립 상설천추공
恐傷花柳意 回看迎春風
공상화유의 회간영춘풍 

[고의]라는 시제를 놓고 시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시도로 멋진 반전을 시도하여 읽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꽃이라 버들이라 혹시 상할까 염려되어(古意)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맑은 밤에 칼을 짚고 서보았더니 / 서리와 눈에는 천추(千秋)엔들 안중에도 없었네 // 꽃이라 버들이라 혹시 상할까 염려가 되었는데 / 머리 돌려서 저 멀리 봄바람을 한껏 불러 오느니]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맑은 밤 칼을 짚고 서리 눈 안중도 없네, 꽃과 버들 혹시 상할까 봄바람 불러보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옛 뜻을 생각하며]로 번역된다. 시인은 선현들이 남긴 한 많은 문화유산을 비롯해서 시문과 지조 높았던 민족정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디마디가 굵고 굽이굽이가 힘들어 고통스러울 때마다 지혜를 발휘했던 모습도 상상해냈던 것 같다. 시상의 훌륭함도 생각했고, 불경의 진리와 오묘함도 고뇌에 찬 번민과 독경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면서 골똘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인은 이러저러한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라는 강한 의문점을 갖고 본 시제를 설정하며 시상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맑은 밤에 칼 짚고 우두커니 서보았더니 칼날 앞에는 천추(千秋)라는 오랜 세월도 내 안중에는 없다라고 했다. 이 전구의 시상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안중에도 없다는 것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가는 흔적이 너무 많아 혼자의 짐으로 생각하며 끌고 가기엔 벅찬 생각이 들었다는 시심으로 풀이하고자 한다. 화자는 그래서 다른 전이적인 생각으로 우회전해 버린다. 반전이란 시적 상상력으로 엉뚱한 집착으로 읽는이의 생각과 시선을 집중시켰다. 꽃이라 버들이라 상할까 염려되어 살며시 [머리 돌려 봄바람을 불러 오느니]라고 했다. 멋있는 전이행위이자 시적인 반전의 묘미로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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