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느니 : 榮山浦舟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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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느니 : 榮山浦舟中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08.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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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3>

 


문명의 발달로 하수언을 만들고 보(堡)를 만듦에 따라 지형이 많이 변했지만, 영산포에 고깃배가 들어오고 유람선까지 떠서 유람도 즐겼다. 포구를 뜻하는 포(浦)자가 들어간 지명이 다 그렇다. 영등포, 마포, 서귀포, 목포 등이 그랬다. 그 중에서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곳은 거의 모두가 제방을 높이 만든 결과다. 이런 포구를 따라서 배 타고 나갔더니 술집 기슭 등불이 장관을 이루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외로운 돛배에 하늘은 마치 물 같은데, 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느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榮山浦舟中(영산포주중) 

어적 소리 들리는 밤 강에는 달이 밝고
언덕 기슭 환한 등불 술집은 가을이여라
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며.

漁笛一江月 酒燈兩岸秋
어적일강월 주등양안추
孤帆天似水 人逐荻花流
고범천사수 인축적화류 


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느니(榮山浦舟中)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어적(漁笛) 소리 들리는 밤 강에는 달이 밝고 / 언덕 기슭 환한 등불 술집은 가을이여라 // 외로운 돛배에 하늘은 마치 물 같은데 / 사람은 갈대꽃 따라서 하염없이 흘러가느니]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밤 강에는 달이 밝고 언덕 기슭 등불 술집, 돛배 하늘 물같이 하염없이 흘러가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영산포의 배 안에서]로 번역된다. 전남 나주 영산포에 밀물과 썰물을 따라서 바닷물이 들고 났던 시절이다.

지금은 하구언(河口堰:물을 막는 둑)이 생겨 그마저도 들어오지 않지만 그 때는 그랬다. 시인은 영산포에서 배를 타고 선유했던지 아니면 뱃길로 남쪽 지방 어느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인은 일본도 다녀오고 북쪽 지방으로 가는 등 여러 차례 배를 탔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주중(舟中)에서 쓴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시인의 낭만적인 시상을 기구 승구에서도 이어진다. 어적(漁笛)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초저녁 밤 강에는 달빛이 밝고, 강가의 술집 기슭에는 환한 등불에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사상을 떠올렸다. 틀림없는 그림이다. 강의 돛단배, 두웅실 떠있는 달, 강기슭의 등불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의 풍경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선경(先景)에 취한 시인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화자의 후정(後情)은 이어지는 전구와 결구에서는 그 절정을 이룬다. 외로운 돛배에 하늘이 마치 물과 같은데도, [사람은 갈대꽃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느니]라는 사상이다. 하늘이 물과 같다는 직접 비유나 실은 사람이 배를 타고 떠내려가지만 강가의 갈대꽃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간다는 비유적인 표현도 했다.

<한자어 어구>
漁笛: 고갯배의 피리소리. 一江: 한 줄기 강물. 月: 달. 곧 달이 밝다. 酒燈: 술 집, 주막. 兩岸: 양쪽 언덕. 곧 강기슭. 秋: 가을이다. 여기에선 ‘동사’로 쓰였음. // 孤帆: 외로운 돛배. 天: 하늘. 似水: 물과 같다. 人逐: 사람이 쫓다. 따라가다. 荻花: 하얀 갈대꽃. 流: 흘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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