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을 겨자씨에 채웠더니 남음이 있었네 : 遣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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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을 겨자씨에 채웠더니 남음이 있었네 : 遣悶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10.0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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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37>

 


봄 시름 으스스하여 한기를 이기지 못해
봄 술로 만난(萬難)이기며 그 시름 달래려다
수미산 겨자씨에 채워 남음으로 만족했네.

春愁春雨不勝寒 春酒一壺排萬難
춘수춘우불승한 춘주일호배만난
一酣春酒作春夢 須彌納芥亦復寬
일감춘주작춘몽 수미납개역부관 


대리만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을 때, 저것을 통해서 만족을 취한 행위다. 짐짓 좋아 하면서도 ‘쳇! 너 아니면 사람 없을 줄 아니?’ 하면서 돌아섰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너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미 토라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고 마음을 주면서 만족해 버렸다. 대리만족이다. 능사는 아니지만 그렇게들 했다. 시인은 독실한 불제자이었기에 수미산을 동경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지 못한 가운데 하찮은 겨자씨 한 알에 비교하여 만족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수미산을 겨자씨에 채웠더니 남음이 있었네(遣悶)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시름과 봄비에 으스스 한기를 이기지 못하여 / 봄술 한 병으로 만난(萬難)을 물리쳐 보았네 // 한 잔의 봄 술에 취하여서 봄꿈 이루었더니 / 수미산을 겨자씨에 채웠더니 남음이 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봄비 한기 이기지 못해 한 병 봄술 차고, 봄꿈을 이루렀더니만 겨자씨 남음만이’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번민을 풀어보며]로 번역된다. 시인은 서슴거린 봄시름을 달래기 위해 술 한 잔했던 모양이다. 아주 작은 것에 아주 큰 것을 대비하는 엉뚱한 꿈을 꾸었다는 상상이란 착각을 시적인 주머니에 슬그머니 담았다. 작품에 나오는 수미산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거대한 산이란 뜻이지만 기실은 상상의 산이다.

시인은 춘곤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봄시름에 촉촉한 봄비가 내려 으스스한 한기를 이기지 못해 이를 달래볼 요량을 했다. 달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봄술 한 병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물리쳐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렇다고 봄시름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되지는 못했을 것은 뻔하다. 거나하게 취하여 잠시 잊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정한 이치이건만 짐짓 시적遣悶(견민) 인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화자는 한잔 봄술에 취해서 사르르 잠이 들어 봄꿈을 이루기는 했다. 만난(萬難)을 잊기는 고사하고 안주로 먹었던 겨자씨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던가 수미산이 그 속으로 들어오더니만 그래도 겨자씨는 다 채워지지 않고 남음이 있었다는 시상이다. 불교인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어 오르고 싶은 수미산을 작은 겨자씨로 치환(置換)해 보려는 대리만족을 나타낸 작품으로 보인다.
다시 넉넉하고 너그럽다.
<한자어 어구>
春愁: 봄수심. 春雨: 봄비. 不勝寒: 추위를 달래지 못하다. 春酒: 봄 술. 一壺: 한 병. 排: 물리치다.萬難: 여러 가지 어려운 일. // 一酣: 한 잔. 作: 짓다. (봄꿈을) 꾸다. 春夢: 봄꿈. 須彌: 수미산. 納: 들어오다. 芥: 겨자씨. 亦: 또한. 復寬: 다시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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