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산천 꿈속이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 : 唫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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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산천 꿈속이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 : 唫晴
  • 장희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4.10.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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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38>

사상唫晴(음청)

나무들 그림자 떨구고 장맛비가 개더니
발(簾)로 스민 가을 기운 선인 양 기운도네
대낮에 소리도 없이 희미해진 꽃들 잔치.

庭樹落陰梅雨晴    半簾秋氣和禪生
정수낙음매우청    반렴추기화선생
故國靑山夢一髮    落花深晝渾無聲
고국청산몽일발    낙화심주혼무성


외국에 나가 있으면 그리운 것이 고향이고 고국이다. 비만 내려도 고향 생각, 바람만 불어도 고향 생각을 한다. 계절이 바뀌면 고향의 친지 안부부터 먼저 여쭙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가을이 돌아오면 한 해를 보내는 섭섭함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만해 시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선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불자의 마음을 담은 선의 사상이 은연중에 묻어난다. 시인은 고국산천 꿈속이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 대낮에 꽃 지는 소리도 없어 희미해지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고국산천 꿈속이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唫晴)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나무들은 뜰에 그림자 떨구고 장맛비 개더니 / 발로 스미는 가을 기운 선(禪)인 양 화한 기운도네 // 고국산천 꿈속이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 / 대낮에 꽃지는 소리도 없어 희미해지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장맛비가 개더니만 선인 양 화한 기운, 고국산천 거기건만 대낮인데 희미하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맑게 갠 어느 날에]로 번역된다. 곡식을 거둘 때쯤 장마가 지는 수가 있다. 가을걷이를 시샘하는 양 제법 많은 양의 비를 뿌린다. 가을비 한 줄금도 그쳤다 하면 날씨는 싸늘한 겨울을 느끼는 스산한 날씨가 된다. 시인은 가을 장맛비가 가신 듯 그치고 난 후로 날씨의 맑음 속에서 참 선(禪)의 한 기운을 맛본다.

이 기운을 시인은 반절만 드리는 주렴(簾) 기운이라고 표현했다. 가을 햇빛이 들어오라는 듯이 주렴을 반절만 내렸던 모양이다. 시인은 나무들은 뜰에 그림자 살며시 떨구면서 장맛비가 서서히 개더니만 주렴을 통해 가만히 스민 가을 기운이 선(禪)인 양 환한 기운으로 화(和)하여 돈다고 했다. 작은 것을 보면서도 선(禪)사상이나 반야사상을 떠올리는 시인의 철저한 불자의 모습까지도 보게 된다.

장맛비에 멈칫했던 선(禪) 이 주렴의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실감했던 모양이다. 화자의 후정은 고국산천이 정갈스럽게 다가섬을 서슴없이 노정하고 있다. 꿈속이면 고국산천이 바로 거기가 거긴데 [대낮에 꽃이 지는 소리 한마디도 없이 희미해진다]라고 했다. 적은 것도 스치지 않고, 맑게 개인 날에도 사랑하는 조국과 연관 지으려는 시상은 삶에 급급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던진 큰 가르침으로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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