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상서’천주교를 변호하고 '척사윤음' 천주교 박해령의 기본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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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재상서’천주교를 변호하고 '척사윤음' 천주교 박해령의 기본법되다
  • 조현옥 전문기자
  • 승인 2014.11.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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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15>

홍주천주교회사 10

나라에 대박해가 있을 때면 먼저 설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뿔뿔이 헤어졌던 식구들이 이때 모이기 때문에 사학죄인 색출이 쉬웠다. 1939년 기해박해도 이렇게 시작됐다. 풍양 조씨의 세력이 구체화되면서 안동 김씨가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형조 판서 조병현은 궁녀 박희순 등 수십 명을 잡아들이고 6월에는

정하상과 유진길을, 7월에는 앵베르주교와 모방신부, 샤스땅신부를 잡아들였다. 특히 동네마다 ‘5가작통법’을 사용하여 교우들을 남김없이 색출했는데, 다섯 집이 한 통이 되어 천주교인이 있는지 감시하는 법이었다. 4월 12일에 1936년 말에 잡힌 권득인, 이광헌, 남명혁과 궁녀 박희순 등 9명이 서울 서소문 밖 네

거리에서 참수되고, 김대권, 이태권, 이일언, 신대보, 정태봉, 김사건, 박사의, 이재행 등이 죽임을 당했다. 6월 10일에 서소문 밖에서 이광열 등 8명, 7월 26일에 박후재 등 6명, 8월 14일에는 한강 새남터에서 앵베르주교와 모방, 샤스땅 신부를, 8월 15일에 서소문 밖에서 유진길, 정하상을, 8월 19일에는 같은 곳에서 조

신철, 남이관 등 9명, 11월 24일에는 서소문 밖에서 최창흡, 정정혜 등 7명, 12월 27일 박종원, 손소벽, 이인덕, 권진이, 이성례, 이경이, 홍병주를 당고개에서 다음날 28일에는 당고개에서 홍영주, 이문우 등 3명을 처형했다. 한편 세도가 조만영은 10월 18일에 동생 조인영을 시켜 ‘척사윤음’을 짓게 하고 대왕대비 김씨

의 이름으로 전국에 반포하게 했다. ‘윤음’이란 당시 임금이 새해에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8도에 내리는 왕의 공문서였으나 기해년에는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자. ‘아비 없이 누가 나고 어미 없이 누가 자랐겠느냐! 저들은 저를 낳은 자를 육신의 부모라 하고 천주를 영혼의 부모라 하여, 저것

을 친애숭봉하고 그 부모를 스스로 끊으니 이 과연 혈기의 윤리로 참을 수 있으랴!…효자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참지 못할 것인데 저들은 신주(神主)를 부수고 제사를 폐하여 죽은 자는 알 바 아니라고 하니’ 이것은 바로 국법이 되어 천주교인을 잡아들이는 계기가 되어 엄청난 교인들이 감옥에 들끓게 된다. 이런

와중에도 정하상은 3400자에 달하는 천주교 호교론인 ‘상재상서’를 써서 천주교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 윤리도덕의 기본인 십계명 등을 적어 비판하는 이들을 적극 반박한다. ‘천지의 위에는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 있으니, 그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나이다. 하나는 만물이고, 둘째는

양지(양심)이고, 셋째는 성경이외다. 무엇을 만물이라고 말하리오? 동물, 식물의 기기묘묘한 모양을 어찌 우연으로 돌릴 수 있으리오? 이것을 우연으로 생각한다면 한 유복자가 태어나서 자기의 아버지가 없음을 보고 세상에 아버지 없이 우연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리오? 이 세상에 만물

이 있다는 것은 이것을 연유케 한 주재가 있음을 알 수 있소이다. 무엇을 ‘양지’라 말하리오? 시골의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궁하고 슬플 때를 당하면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소이다. 이렇게 사람 마음 속에 숨어 있는 그 양지는 우주의 주재자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외다. 무엇을 성경이라고 말하리오? 옛날의 요(堯), 순

(舜)들의 이야기도 경사(經史)로 전해 내려옴이 있어 이를 금석같이 믿고 있사온데 우리 성교회에도 경전이 전해 내려오고 있사오이다. … 계명이라는 것은 무엇이리오? 천주가 잠잠히 가르쳐주신 십계(十誡)이오니 일은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흠숭함이요…넷은 부모를 공경함이오…이 십계는 크게 두 가지로

모을 수 있사오니 위의 세 계명은 천주를 공경하는 것이요, 나머지 일곱 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이외다. 안자(顔子)가 말한 하지 못하는 것 네 가지, 즉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 것과, 예기(禮記)에 말한 생각할 것 아홉 가지, 즉 보는 데는 밝음을, 듣는 데는 총명함을, 얼굴

빛에는 부드러움을, 몸가짐에는 공손함을, 말함에는 충실함을, 섬김에는 공경함을, 의심에는 물음을, 노함에는 어려움을, 얻음을 봄에는 의리를 생각할 것 등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도 이 십계에는 비길 것이 못 되나이다. …아비도 없다, 임금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교의 뜻을 알지 못한 소치외다. 십계명의 제

4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사오이다. …저희들이 일찍이 반역을 꾀하였사오이까? 도둑질을 하였사오이까? 간음을 하였사오이까? 살인을 하였사오이까?…엎드려 빌건데 촛불을 들어 굽어 보사, 도리의 참됨과 거짓됨을 자세히 밝히신 후에 위로는 조정을 다스리시고 아래로는 백성을 거느리시와 한 번 바른 길로

돌아가 옥에 갇힌 자를 석방하여…’ 정하상의 애절한 문서가 조정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기해년의 박해는 엄청난 참상을 남겼다. 서울과 경기에서 순교한 교우만도 130여명을 넘겼다. 이러한 참상을 현석문(가롤로)은 ‘기해일기’에 수록해 자료로 남겼는데, 이것을 기초로 79명이 뽑히어 1925년 복자품에 오르게

되고 103위 성인품 대열에 들게 된다. 이 중에서 예산 여사울 출신 홍낙민(루가)의 손자인 홍병주와 홍영주는 형제로서 기해박해 때 신부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가 밀고자 김여상에게 알려져 8월에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당시 형조판서의 친척이었던 이들을 회유하여 배교하게 하려고 갖은 고문이 행해졌으

나 끝내 사형을 언도 받는다. 42세의 홍병주는 12월 27일에 39세의 홍영주는 28일에 참하여졌는데, 국법상 형제나 부자지간은 함께 처형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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