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 8경의 하나인 궁리포구는 평화롭고 한적한 정취의 작은 어촌. 바다와 갯벌을 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궁리포구에 서면 어린 시절 자주 부르고 듣던 노래들이 귓전을 맴돈다. 마치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자연스럽게 든다. 작은 포구가 주는 큰 선물이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 아기> 한인현(1921~1980) 작사 이흥렬(1909~1980) 작곡, 1953년 발표.
고요하고 작은 어촌인 궁리포구에서 아침의 풍경과 저녁의 일몰을 보며 산책할 때마다 큰 위로를 받는다. 소중한 힐링(healing)의 순간이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온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람도 많지만 깊은 절망(絶望)이 간절하고 간절한 소망(所望)으로 바뀌기를 기도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해변이나 포구로 우리가 가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갯벌을 따라 싱그러운 바다 향기 속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마치 은빛 파도 위를 밟는 느낌이다. 물 빠진 갯벌에는 갈매기 떼가 먹이를 찾고, 짝을 지어 비상하며 여유롭게 데이트를 즐긴다.
이런 ‘올레길’이 따로 없다.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걷다보면 갈매기와 기러기들이 호위하듯 산책길 영공 주위를 활강하듯 떠다니며 합창을 한다.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사색의 길이 된다. 궁리포구 오른편 멀리 앞쪽의 태안반도가 병풍처럼 펼쳐진 이곳의 바다는 우리가 생각한 보통의 바다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지중해(地中海)다. 하늘과 땅, 새들이 사는 육지 속의 바다, 그 곁에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궁리포구는 있다.

궁리포구.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항상 가슴이 떨리고 감사한다. 귀촌·귀농, 낙향과 침잠, 은거(隱居)를 결심하고 수십 년 살아온 서울을 떠나 처가가 있는 홍성 궁리포구에 온 것이 2012년 1월초, 차가운 겨울이 너무나 깊어 모든 것이 동면(冬眠)하고 있을 때였다. 이미 만 3년이 금방 지나갔다. 대은(大隱)은 저자에 숨고 소은(小隱)은 산 속에 숨는다 하고, 피세둔장(避世遯藏)을 하는 소은도 되지 못하는 소인(小人)임을 점차 알아가고 있다.
젊은 날 읽던 책들을 찾아내 다시 읽고, 지난날의 잘못과 허물들을 돌이켜 보며, 뼈저린 후회를 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했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지비(知非)나 지천명(知天命)의 경지는 필자가 경험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시간들이 더 있었으면 할 뿐이다. 공부나 은둔도 세전지지(世傳之地)나 돈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특히 남들처럼 깊이 있는 독서(讀書)와 오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한 것도 아니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내면의 정서와 자세는 많이 변화했다는 생각도 감히 드는 것도 사실이다. 궁리포구에 온 보람이다.아주 늦은 오후, 서해의 바다, 일몰(日沒)은 성스럽고 황홀한 순간이다. 어두워지는 바다에 빠지는 태양은 장엄하다. 온 누리에 앉은 붉은 석양은 깊고 고요해서 감동적이다.

궁리항 풍어제.
자연은 인간에게 석양의 신비와 영원을 선물했다. 바다에서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궁리포구의 조용한 바다는 고향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처럼 조용하고 밀물은 선명하게 차오른다. 갯벌을 새로 채우는 바닷물의 빛깔은 더 푸르다. 어둡고 농도 짙은 한 폭의 유화(油畵)를 보는 느낌이다. 갈매기들은 더욱 선명해진 바다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듯 선회한다.
바다에서 평생을 보내는 갈매기는 행복한 새일 것이다. 갈매기가 은빛 화살처럼 활강을 하면, 우리도 덩달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된다. 갈매기가 먼 여로를 마치고 해안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상상한다. 신기하고 이름다운 바다의 이야기를. 갈매기들은 때로는 먼 바다의 소식도 전해 주었고, 푸르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는 고래의 자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리고 갈매기들은 많은 배들을 보았다.
벌크선, 원목선, 자동차 운반선, 유조선, 컨테이너선……. 항공모함까지도. 갈매기들은 갑판에서 선원들을 만나기도 하고, 해적들을 보기도 했다. 갈매기는 저 멀리 수평선을 언제나 응시하면서, 우리가 갈 수 없는 행복한 바다와 땅을 꿈꾼다. 갈매기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우리 곁에 존재한다. 바다는 언제나 우리를 사색하고 명상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현명해지기도 한다. 바다에서 보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바다에서는 태양까지도 친구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일출과 일몰 때, 푸른 바다가 황금빛 바다가 되거나, 붉은 루비 빛으로 빛날 때, 우리는 황홀했다. 바다는 언제나 아름답다.

찬란한 황금빛 바다, 비가 그치고 나서 바다 위에 거대한 무지개가 떠 있는 바다, 무지개 뜬 바다는 신비하고 장엄했다. 아마 천국이 그럴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에 크게 펼쳐진 무지개를 두고 그 사이의 바다를 한 마리 큰 새가 되어 날아다니는 것을 상상한다. 어느 여름날 오후……. 소낙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난 뒤, 두 개의 무지개가 뜬 바다 사이의 창공을 날아가는 꿈을 꾼다.
바다와 무지개 사이의 힘차고 화려한 비상(飛翔). 바다는 언제나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바닷가에서 나그네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은 바닷가에서 또 노래한다. “그대들이 찍은 사진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고, 세월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죽이지 말며, 발자국 빼고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말고, 오직 사랑만 남겨 놓고 갈지어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는 참으로 행운아(幸運兒)였고 만남의 귀항(歸港)과 헤어짐의 출항(出港)을 기다리는 선장(船長)이었다.
바다와 등대, 포구. 그리고 운명(運命).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 때도 우리의 보금자리가 된 바다는 돌아가야 할 그리운 고향이었다. 그 바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가 보이는 바다였고, 용감해진 콘래드의 바다다. ‘백경(白鯨)’의 이시메이얼은 말한다.
“내 입 언저리에 냉혹함이 점점 늘어나는 자신을 발견할 때나, 내 영혼에 11월의 싸늘한 가랑비가 내릴 때, 또는 장의사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장례 행렬 뒤를 따라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냉정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게 될 때-그런 때마다 나는 한시바삐 바다로 나가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궁리포구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해안 방파제에서 천수만 풍어제를 연다. 풍어제는 바닷가 사람들의 넉넉한 축제의 시간이다. 고수(鼓手)의 축원, 풍물패의 길놀이, 어민들의 즐거운 참여를 통해 서해의 용왕과 해신에게 만선의 풍요와 안전을 비는 전통을 2012년부터 새로 이어오고 있다. 궁리어촌계와 선박협회, 천수만권역추진위원회는 중단되었던 풍어제를 다시 복원함으로써 궁리포구의 새로운 비상을 꿈꾼다.
축제는 모든 참석자들에게는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푸짐한 경품도 안겨준다. 너그러운 미풍양속, 갯마을의 남다른 인심을 보여주는 풍요로운 행사다. 아직 전국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입소문을 들은 인근의 예산, 서산 등 외지의 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궁리포구에는 깔끔하면서도 수수한 횟집들이 20여 곳 넘게 모여 있지만 영업에 몰두하는 수산센터에서 볼 수 있는 얄팍한 상혼(商魂)이나, 각박해진 시장 바닥과 같은 소음이 없다.
작은 횟집에서 끓여내는 바다 향기 가득한 바지락 칼국수, 어리굴젓, 새조개 샤브샤브의 맛은 일품이다. 보는 것이 그대로 맛으로 마음에 전달된다. 궁리포구에서는 마치 인심 좋은 이모나 온화한 고모 집을 찾은 듯 언제나 편안한 심정이 된다. 조그마한 항구에서도 해산물 가득한 만선(滿船)을 만나듯, 느긋하고 풍요로운 갯마을의 여유와 추억이 생긴다. 조용한 바다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면, 궁리포구로 와야 한다.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포구의 낭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 갯벌, 새들……. 천혜의 자연이 함께 하는 궁리포구에서는 우리가 잊어가던 소중한 것들, 남아있는 그리움의 풍경을 본다. 아름다운 서해안을 배경으로 철새들의 비상(飛翔)과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는 홍성 천수만 일대와 궁리포구.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그래도 살아있다는 기쁨과 가장 좋은 것은 그래도 앞날에 남아 있다는 감동이 솟아나는 현장이다.
여기 해변에서 나는 나 자신, 내 삶의 이미지를 발견한 느낌이다. 해초의 기이한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그 여자를 떠올린다……. 짙푸른 바닷물에서는 그 여자의 눈빛을 본다. 삶은 대기의 투명한 빛을 반사하는 조용한 수면과 같다. 수면 아래 깊은 곳은 질척이는 진흙이 있고 기어 다니는 생명체가 있는 죽음과 닮았다. 바다와 나는 서로를 이해한다. 아마 바다만큼 나를 잘 이해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
이제 우리가 작별을 해야 할 시간
곧 당신은 바다를 건너가겠지요.
당신이 돌아올 때,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떠나있는 동안
오, 제발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나 무스꾸리(1934~), <이제 그 시간이 되었네(Now is the hour)>
새들, 바다, 갯벌... 거기에다 장엄한 일몰 햇볕까지!
필자는 내공이 대단하신 분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