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랴:重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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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랴:重陽[1]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11.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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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44>

강남 갔던 제비가 시절 좋은 삼월 삼짇날 박 씨를 물고 처마 밑에 날아와 둥지를 튼다. 흥부 부부는 정성껏 울밑에 심고 가꾼다. 주린 배를 채우려면 박이라도 타서 박속이라도 먹을 양이었다.

중양절 어느 가을날 제비는 강남으로 날아가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박을 탔더니만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착한 일을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는 고전 판소리가 전해진다. 제비가 날아간다는 중양절에 허기진 마음을 달래며 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 아니겠는가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重陽[중양](1)

백담사 구월 구일 내 병도 나았는데
구름 멀리 흐르거니 모두가 나그네라
국화는 피었다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

九月九日百潭寺 萬樹歸根病離身
구월구일백담사 만수귀근병리신
閒雲不定孰非客 黃花已發我何人
한운부정숙비객 황화이발아하인 


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랴(重陽[1])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설악산 백담사 오늘은 구월 구일인데 / 온 나무 잎이 지고 내 병도 이젠 나았다네 // 구름이 멀리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며 / 국화 이미 피었다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시심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백담사 구월구일에 내 병세도 나았다네, 누군들 나그네 아니리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9월 9일 중양절을 맞이하여(1)]로 번역된다. 중양이라는 말은 9가 양수이기 때문에 양수가 겹친 것을 뜻한다. 9가 2번 겹치므로 '중구'라고도 한다. 속설에는 제비가 3월 3일에 왔다가 중양절에 강남으로 간다고 했다.

 

 

 

 

 


중국 고대사회에서는 9를 양수의 극이라 하여, 이것이 겹쳤기 때문에 이날을 쌍십절(10. 10)과 같이 큰 명절로 삼아왔다. 시인은 수련에서 설악산 백담사에서 맞이하는 오늘이 구월 구일 중양절임을 상기시키면서, 모든 나무 잎이 떨어짐과 동시에 자기의 병도 이제는 점점 나았다고 했다.

몸이 심하게 아팠다가 가을이 되면서 조금은 나았던 모양이다. 화자의 심회는 떠가는 구름이 멀리 흐르거니 구름 같이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구름과 나그네를 비유하는가 싶더니만, 국화와 자신을 비유한다. 국화가 피어 있지만, 다시 겨울을 만나면 지는 것처럼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고 있다.

질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시심이다. 이어지는 후구에서는 [시냇물이 말라 돌덩이 구슬 같고 / 하늘 높이 기러기 나는 곳엔 먼지와는 멀어지누나 // 낮 되어 다시 방석 위에 일어서니 / 천봉만학(千峰萬壑) 문으로 하늘이 가파르게 들어오네]라는 엉뚱한 것 같으나 조화를 이루는 한 줌 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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