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라 : 玩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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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라 : 玩月
  •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4.12.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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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46>

만해의 시상은 불가의 십우도(十牛圖)에만 그치지 않았다. ‘심우(尋牛)’라는 불교 사상을 꼭 빼닮았으며 어쩌면 ‘윤회(輪廻)’와도 같은 달의 생성, 성장, 사멸의 한 과정을 그대로 시문 속에 차분하게 담아냈다.

달 시리즈와도 같은 견월(見月)에서부터 합삭(合朔)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섯 단계를 그것도 같은 체제인 오언으로 일구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시적인 상상력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시인은 누구 위해 멀고도 먼 정(情)이 과연 이러는가, 밤은 깊어 가고 마음만은 걷잡을 수가 없어라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玩月(완월) 
달빛이 넘쳐나서 마음껏 노니는 밤
멀고도 먼 이 정(情)은 누구를 위함인가
깊은 밤 걷잡지 못한 서성이는 이 마음.

空山多月色 孤住極淸遊
공산다월색 고주극청유
情緖爲誰遠 夜闌杳不牧
정서위수원 야란묘부목 



밤은 깊어 가고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라(玩月)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빈 산엔 달빛이 흘러 철철 넘쳐나고 / 홀로 거닐며 달을 즐기며 마음껏 노는 이 밤 // 누구 위해 멀고도 먼 이 정(情)이 이러는가 / 밤은 깊어 가고 마음만은 걷잡을 수가 없어라]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달빛이 넘쳐나고 달을 즐겨 노닌 이 밤, 누구 위한 정이련가 걷잡지 못한 마음’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달을 구경하며 즐기면서’로 번역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를 기억한다.

그만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현들의 시상은 달에 대한 애착은 강했다. 달 속에는 계수나무가 있다느니 토끼가 살고 있다느니 하는 상상으로 시상을 일으켰다. 시인도 달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한 달에 주기적으로 변하는 달의 모습을 보고 시상을 일으켰던 오언절구가 우리 손에 잡혀져 전한다.

시인은 달과 놀고 싶었다. 보름달이면 더욱 좋겠지만, 초승달, 그믐달, 상현달, 하현달을 가리지 않고 시인의 품안에 넣고 마음껏 즐기며 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텅 비어 있는 산에는 달빛들이 흐르고 흘러 넘쳐나고 있는데, 산과 들을 홀로 거닐며 노니는 이 밤이 유별나게 좋았다는 시상이다.

세월이 흐르듯이 달빛이 흐르는 그림자를 따라 이태백을 능가하는 그런 시를 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화자의 시적인 상상력은 후정으로 갈수록 그 짙음을 더하고 만다.

달은 누구 위해서 먼 먼 이 정(情)을 남기면서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냐라고 묻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달을 향한 이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어라’라고 음영했다. 달의 깊은 웅덩이 속으로 쑤욱 빠져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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