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생 양띠 2015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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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생 양띠 2015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 조 원·서용덕 기자
  • 승인 2015.01.0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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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푸른 양들을 만나다

새해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 푸른 양의 해다. 홍성군내에서 최고령 양띠는 다섯 명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기미년(己未年)에 태어난 아흔 일곱 살 동갑내기(만 96세)이며, 모두 광천읍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벽계리 강화수 할아버지, 내죽리 홍일점 할머니, 담산리 이봉예 할머니, 원촌리 황순분 할머니, 옹암리 김유예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이들 중 강화수 할아버지와 홍일점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만남이 이뤄지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새해를 앞두고 만난 이들 세 할머니들은 100년 삶을 눈앞에 두고 겹겹이 쌓여온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깊은 주름 곁으로는 귀까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세상살이 힘겨워도 그럭저럭 견디며 살아온 인생살이 그대로였다. 기자가 만난 이봉예 할머니와 황순분 할머니, 김유예 할머니의 미소는 소녀처럼 해맑고 환한 행복의 웃음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노인이 돼야 나타난다고 했다. 세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굵은 주름과 깊은 사색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빛나는 세월의 지혜, 깊은 경험은 아름다운 한 폭 인생의 풍경화였다. 을미년 푸른 할머니 양들을 만나봤다.

‘아들아, 딸아! 너희들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딸아! 늙은 어미 아비의 행복이 뭔지를 아니,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이나 ‘너희들은 내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세 들어 살고도 한 달 치 방세도 내지 않았지 않느냐.

몇 년씩 따뜻한 우유를 받아먹고도 한 푼도 갚지 않은 것을 탓 하더냐. 한 몸이 갈려 서로 다른 몸이 되었어도 그 아픔을 너희들에게 물어 보더냐’고 물으며 ‘어미나 아비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좀 보태주거라’는 되 뇌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새해다.

▶원촌리 황순분 할머니
광천읍 원촌리에 사는 황순분 할머니는 곁에 살고 있는 칠십을 바라보는 외동딸(김선례·68)과 사위가 보살피고 있다. 벌써 15년이 넘는 세월을 딸과 사위의 정성과 사랑에 기대 살아온 황 할머니는 최근 거동이 불편해져 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쉬는 것이 일과가 됐다고 한다.


단촐한 황 할머니의 방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양띠 해를 맞아 축하인사를 전했더니 황 할머니는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았소. 그런데 귀가 잘 안 들려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황 할머니는 딸 김선례 씨에게 “손자냐”고 물으면서 기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부드러운 할머니의 손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손이 참 곱고 얼굴 표정이 인자하도록 맑은 황 할머니는 “사람들이 나보고 정정하다고 해. 그런데 지금은 다 늙었지 뭐. 기자 양반이 우리 손자 같구먼”이라며 입술을 굳게 다문다.

딸 선례 씨는 “지금은 눈도 잘 안 보이시고 귀도 잘 안 들리시지만 2년 전만해도 시력이 무척 좋으셨어요. 늘 정직하라, 좋은 사람 되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렇게 살아 오셨는데 최근엔 많이 쇠약해지셔서….”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했다.

사위 강현식 씨도 “요즘 노인들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며 “자식 된 도리로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꾸 쇠약해지시고 건강이 안 좋아 지시니까 밤낮으로 돌봐드려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잖아요”라며 깊은 한숨으로 답했다.

황 할머니에게 새해 덕담을 부탁했더니 “잘 살고 건강하게 살아해.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지 말고. 인생이 글렀다는 얘기를 듣는 게 난 제일 싫어. 사람이 돼야 해. 좋은 사람 말여.” 새해를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100년을 향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지표이며 삶의 철학으로 다가왔다.

▶담산리 이봉예 할머니
광천읍 담산리 오서산 등산로 옆에 자리한 이봉예 할머니 댁은 마침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 할머니를 돌봐주던 도우미와 이웃의 동생들이 찾아와 윷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낯선 방문객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는 시골의 인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주름이 여기저기 내려 않았지만 검버섯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운 피부를 가진 이 할머니는 100세를 눈앞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고우시고 건강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건강해 보이면 뭐해. 곧 있으면 백살인디”라며 “젊은 때는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봤지”라고 말하면서 수줍게 미소 짓는다.

양띠 해를 맞아 소원을 묻는 질문에 이봉예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산 것도 죄송한데 소원이 어딨겄슈”라며 쑥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젊었을 때는 밭만 일구며 살았다는 할머니는 아들 셋에 딸 다섯을 둔 자식부자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넷째 딸과 살고 있는 할머니는 “지금은 저 애 덕을 보고 있어. 이렇게 보여도 올해 육십을 넘었어. 이쁘고, 고맙지”라며 딸의 손을 꼭 잡아준다.

할머니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더니 “손자가 손자며느리나 잘 얻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서 곁에 있던 딸을 바라본다. 말은 안했지만 더 큰 소망이라면 백세를 넘어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우리네 모든 어머니들의 새해 소망은 아닐까.

▶옹암리 김유예 할머니
광천읍 옹암리의 김유예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들른 마을회관에는 마을사람들 십여 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곳의 어르신들에게 김유예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냈더니 주민들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칭찬을 쏟아놓았다.


이구동성으로 “그만한 효자·효부가 따로 없다”고 서로가 앞을 다툰다.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가족처럼 챙긴다”며 “그 할머니도 그렇고, 그 집 아들이며 며느리도 그렇고, 나라에서 상 받아야할 분들이여. 웬만해선 우리가 칭찬을 하간디.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잘할 수가 없어”라며 칭찬일색이다. 김유예 할머니를 젊은 시절 언니처럼 따랐다는 한 어르신은 “그 할머니도 젊은 시절 효부로 이름났제. 지금은 날이 추워서 그렇지 평소는 나보다도 더 부지런하게 돌아댕겨”라며 오히려 동네사람들이 더 놀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옹암리 기찻길 옆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예 할머니 댁. 이곳에서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우면서 100년을 향한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큰 아들(김영운·68)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집에 찾아간 날, 기자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할머니를 몇 번 부른 후에야 문이 열렸다.

김 할머니는 ‘양띠 해를 맞아 인사드리러 왔다’고 전하자 “귀가 들려야 말이지”라며 웃으시는 순간 손은 귓쪽를 향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오래 살아서 걱정이여. 밥 잘 먹고 자식들 괴롭히지 않으니까 다행이지, 안 그려”라며 웃음으로 넘긴다.

마을회관에서 자제분과 할머니 칭찬이 대단하더라고 전했더니 “마을회관에 가고 싶어도 넘어져 다칠까봐 지금은 갈 수 없어. 내가 아프면 자식들이 괴롭잖아. 안 그려”라고 할머니는 되물으며, 오히려 동문서답이다. 김 할머니에게 ‘새해 소망이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해맑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방문을 마치고 떠나올 때도 한사코 밖에까지 나와 배웅하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가슴에 담고 맞이하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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