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오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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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오롯하다
  • 글=한관우 발행인/자료·사진=한기원 기자
  • 승인 2015.04.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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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 홍성에서는 지금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홍주’라는 고유지명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홍주종합경기장’의 표지석과 오른쪽에는 ‘홍주종합경기장과 홍주의 유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사진 오른쪽)


충남을 홍주·공주부로 나누고 홍주부에 22개 군현을 둠
홍주(洪州)지명 사용 시기 995~1018년 사이로 추정돼
홍주·공주·충주·청주 충청 4목 중 ‘홍주’지명 못 찾아
1914년 일제 행정구역 개편 때 강제로 ‘홍성’으로 개명


사람의 이름에 뜻이 있듯, 우리가 부르는 지명 역시 뜻을 갖고 있다. 깊은 뜻, 재미있고 해석적인 뜻, 슬픈 뜻 등 여러 역사와 문화가 지명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마을의 이름에 역사와 삶의 문화가 담긴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질 것이다. 현재의 지명이 생성된 유래, 지명과 관련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은 우리 고유의 옛 이름의 깊이와 생동감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까지 전승되어 온 고유한 지명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지명에 얽힌 선조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비롯하여,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이름에는 명분이 있고 지명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부르는 지명 역시 고유의 깊은 뜻을 갖고 있다. 부모가 우리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좋은 뜻을 지어주듯,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마을의 이름에는 지난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담긴 압축적인 뜻이 들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름이 갖고 있는 뜻을 알면 내가 발붙이고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청지방에서는 지금도 큰 고을 명칭에 ‘주(州)’를 붙이고 있다. 옛날 관찰사가 주둔하고 있던 공주(公州)나 충주(忠州), 청주(淸州)가 그런 고을들이다. 그러나 한 때 공주, 충주와 같은 목사가 있었던 큰 고을 ‘홍주(洪州)’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홍성(洪城)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홍성 사람들은 스스로를 ‘홍주인’이라 부른다. 홍성읍을 휘감고 있는 1.7㎞의 성곽이 ‘홍주성’이며, 주변은 물론 예로부터 ‘홍주골’로 불러온 고장이다. 지금의 홍성군청 정문 옆에는 옛날 홍주목사가 집무를 보았던 ‘홍주아문’과 ‘안회당’이 서 있다. 그런가 하면 홍주의 진산(鎭山)인 백월산에는 ‘홍주청난사’라는 옛 사당이 있어서 홍성의 본래 이름이 홍주임을 증언하고 있다. 홍주는 지명역사 1000년이 넘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본래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전국에서 ‘주(州)’자가 붙은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본래의 고유지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다. ‘홍주’라는 지명 이름은 1012년(고려 현종 12)에 처음 붙여졌으니 역사가 1000년이 넘는 지명이다. 1358년(공민왕 7) 목(牧)으로 올리고 5군 14현을 관할하였으며, 조선 초기에도 ‘홍주목’이었다가 세종 때는 목사가 첨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홍주’라는 이름은 유서 깊은 지명이다. 하지만 일제에 의하여 홍주는 홍성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고 아직도 빼앗긴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홍주지명 되찾기 범군민운동’과 맞물려 광복 70년을 맞으며 지역의 토종지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군민들의 여론이다.

 

 

 

 

 

▲ 홍성의 명문사학인 ‘홍주중학교’와 ‘홍주고등학교’의 정문 전경. 100년 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옛 고유지명 ‘홍주’를 오롯이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홍성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감계비리국이 있던 곳으로써 백제시대에는 고막부리 현이 있었으나, 좀 더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왕건은 934년 운주(지금의 홍성)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충남의 서북부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 여세를 몰아 936년 경북 선산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한다. 이후 고려 성종 14년(995) 전국을 재편성 할 때 이곳 홍성지역을 운주라 하고, 현종 3년(1012) 개편 때 ‘홍주(洪州)’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여 조선조까지 같은 지명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군은 ‘결성현(結城縣, 지금의 결성면)’의 11개 면을 병합하면서 홍주군의 ‘홍(洪)’자와 결성현의 ‘성(城)’자를 따서 ‘홍성군(洪城郡)’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홍성에는 ‘홍주’라는 지명의 흔적이 홍주성, 홍주아문을 비롯하여 홍주초등학교, 홍주중·고등학교, 홍주종합경기장, 홍주문화회관, 홍주체육문화센터 등 각종 명칭으로 역사와 삶속에서 오롯이 살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1012년부터 ‘홍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101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정식으로 ‘홍주’라는 지명이 행정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명이란 것이 전혀 사용하지도 않던 지명이 행정명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 지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해 온 지난 2012년 홍주지명역사 1000년을 맞이했지만 홍성군에서는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1018년을 원점으로 잡고 기념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자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1012년부터 ‘홍주’라는 지명이 문헌에 등장한 점이나 역사적인 추론을 감안할 때 ‘홍주’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를 최소한 995~1018년 사이로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지명의 역사가 1000년을 올곧이 이어오는 지역도 드물다. 고려사 등 각종사료와 홍양사, 홍성군지 등에 기록된 역사를 중심으로 ‘홍주지명 1000년’의 의미는 홍성(홍주)역사의 정체성과 정서적 통합 및 충남도청 홍성이전에 따른 시승격 등에 대비 고유지명인 ‘홍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단위성과 함께 기념사업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면서 이를 계기로 옛 토종지명인 ‘홍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홍주(洪州)’ 지명역사 1000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1969년 8월 15일에 발행된 ‘홍양사(洪陽史) 연혁편 군명’에 ‘성종 14년(1995)을미(乙未)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현종 3년(1012) 임자(壬子)에는 지주사를 두고 홍주(洪州)로 명칭을 곳쳤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980년 12월 15일에 처음 발행된 ‘홍성군지’ 제2편 역사 서(緖)의 홍성지명의 역사적 유래에 ‘고려시대’의 왕 또는 연도에 ‘성종14년(995)’ 명칭에는 ‘운주(運州) 안평(安平) 해풍(海豊) 홍양(洪陽)’이라 기록했고, 설명에는 ‘도단련사(都團鍊使) 둠. 홍양(홍주일부)현 신설관할. 원군(遠軍) 3군 11현 관할’이라 기록돼 있다. 하지만 명칭을 ‘홍주(洪州)’로 사용한 왕은 ‘현종 3년(1012)’으로 명시돼 있으며, 설명에는 ‘현종 9년(1018) 주지사(州知事) 둠. 고구(高丘, 喬丘)현 여양(驪陽, 黎陽) 흥양(興陽)현 통합 관할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현종 3년(1012)’부터 정식으로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사용된 것으로 명시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이보다 앞서 ‘홍주(洪州)’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해 진다. 따라서 이 기록대로라면 995~1012년 사이에 이미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사용됐거나 불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거가 이후 1018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식 행정명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해 진다. ‘홍주’라는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1012년이나 1018년이라는 명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조선시대 세종 시에는 홍주진(鎭)을 설치해 세조 시까지 계속되다가 영조시대에 폐지됐으며 태종 13년 결성현을 설치했고, 현종 시에 홍양(洪陽)현을 다시 진(鎭)으로 승격했다. 고종 32년(1895)에는 ‘홍주부(洪州府)로 충남을 공주부와 홍주부 둘로 나누고 홍주부 밑에 22개 군현을 두었다. ‘고려사’에도 ‘지방통치제도가 정비되면서 홍성지역에는 성종 14년(995년) 운주에 도단련사를 파견한 이래, 현종 3년(1012년)에는 도단련사를 폐지하고 지주사를 두었으며, 홍주로 개칭한 뒤 양광도에 배속시키면서 3군 11현을 관할하도록 했다’고 기록돼 있어 ‘홍주(洪州)’라는 지명 사용 기록이 ‘홍양사’나 ‘홍성군지’등의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후 광무 원년(1897)에는 홍주군(郡)으로 이어져 오다가 일제식민통치기인 1914년 총독부령 111호에 의거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지면서 ‘홍성군(洪城郡)’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홍주’라는 지명역사가 1000년이 넘었고, 과거 전국의 목사고을 가운데 유일하게 토종지명을 지금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는 지역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충남도청소재지 도시로 시승격 등에 대비해서도 필수적 현안이 됐다.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로 복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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