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짓는 장인의 숨결, 흙 가마에서 굽는 옹기 명맥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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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짓는 장인의 숨결, 흙 가마에서 굽는 옹기 명맥 잇다
  • 한관우, 장윤수
  • 승인 2015.06.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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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통기업 대를 잇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 <2>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던 방식 그대로, 지금까지 백 년을 넘어 이어오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성촌토기에서 제작한 옹기입니다.” 손자까지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성촌 토기 대표 이완수(81) 옹기장의 말이다. 새조개나 대하, 각종 젓갈이 유명한 홍성에서는 이러한 해산물을 담아 보관할 수 있는 전통옹기 제작기술이 전수돼 내려오고 있다. 갈산면에 있는 성촌 토기 옹기마을에서는 6대째 장인정신으로 전통옹기제조를 고집하고 있는데, 전통옹기의 제작과정을 보고 직접 옹기장이가 돼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또한 전통 가마에도 직접 들어가 관찰하고 체험하며 우리 것을 지키려는 장인의 노력을 느껴볼 수 있다. 사라지는 전통가업과 대를 잇는 사람들, 그 두 번째로 성촌 토기 이완수 옹기장을 만났다.

 

이완수 옹기장이 직접 만든 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6대째 가업 이으며 우리 전통옹기 제작방식 고수해
천연 잿물 유약 사용해 살아 숨 쉬는 무공해 옹기

“우리 옹기의 특징은 화공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대로 잿물에 담갔다 굽는 재래식 방식 그대로 옹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화공약을 사용하게 되면 가마에서 900도가 넘었을 때, 약 처리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온도를 높여 구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공약품을 사용한 옹기가 깨진 조각을 보면 덜 익어 흙 색깔이 붉죠. 그렇게 흙이 덜 익은 항아리에 음식을 보관하면 냄새가 나고 썩거나, 심지어는 곰팡이가 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흙의 염도를 맞추고 1200도까지 온도를 올려 굽기 때문에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옹기가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성촌토기의 옹기들은 다른 항아리보다 두께가 훨씬 두껍지만, 깨진 조각을 살펴보면 높은 온도에 잘 구워져 잿빛인 반면, 다른 옹기들은 얇으면서도 잘 구워지지 않아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지난 1990년 5월 8일 무형문화재 96호로 등재된 이완수 옹기장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옹기 만드는 일에 전념해왔다. 이 옹기장이 어린 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는 이들이 많지 않았고, 이 옹기장 또한 초등학교만 나오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이 옹기장의 아버지인 고 이종각 옹기장은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농토도 없으니 이거라도 배워야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면서 이 옹기장에게 가업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러나 이 옹기장은 “부모의 일을 이어받아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가업을 계승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옹기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란 이 옹기장은 ‘흙으로도 그릇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신기해하며 심부름을 곧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 옹기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똑바로 못 만드냐’며 혼나기 일쑤였다. 가끔은 화가 나서 다시는 옹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옹기를 만들었던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에 이르게 됐다.

특히 이 옹기장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먹을 것이 없고 배는 고파 근력은 없는데 옹기를 만들어야 했을 때”라면서 “배가 고파도 이걸 해야 먹고 산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옹기를 만들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옹기도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이에 맞춰 이 옹기장은 용도에 따라,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예전에는 쌀독이나 장독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에는 물을 보관하는 정수기용 옹기나, 화분 종류, 작은 다기들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이 옹기장은 “최근에는 김치나 젓갈, 된장 등을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무공해 항아리인 옹기에 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특히 음식뿐만 아니라 물도 옹기에 담아 보관하면 맛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 정수기처럼 꼭지를 단 옹기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또 이 옹기장은 “성촌 토기는 광고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한 번 사용해 본 사용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게 됐다”며 “주부들이 항아리를 한 번 사 가서 사용해본 뒤 좋다고 친구나 이웃에게 알려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옹기장이 전하는 옹기의 역사엔 슬픈 사연이 배어있다. 천주교를 믿다가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 산에 가서 먹고 살 길을 찾다가 그릇을 연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옹기는 흙과 물, 나무만 있으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옹기를 만들었고, 아낙네들이 머리에 이고 나가 판매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옹기를 파는 아낙들은 ‘이 그릇은 봄에 만든 것이라서 음식을 담아도 상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여김을 받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옹기의 과학적 원리가 그 때부터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옹기는 사양산업이 됐다. ‘굳이 깨지는 그릇을 뭐 하러 쓰느냐’, ‘무겁고 불편한 것이 옹기’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이 옹기장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는 식탁에 놓고 반찬을 담을 수 있는 옹기부터, 커다란 장독에 이르기까지 수 백 가지 모양의 옹기들을 제작하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옹기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대로 옹기를 만들기 위해선 크던 작던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엄격히 배워야 제대로 만들 수 있죠. 그렇게 만든 옹기에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 젓갈을 담으면 제 맛이 나는 겁니다.” 이 옹기장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그릇을 써 봤더니 좋더라’, ‘참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손수 만든 옹기 하나하나가 자식처럼 느껴진다는 이 옹기장은 옹기를 어루만지며, “단 하나를 만들어도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 옹기장의 손길을 거친 옹기가 많은 이들의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현재 서울은 물론, 강원도, 대구, 대전에까지 대리점을 두고 옹기를 판매하고 있다.

 

이완수 옹기장이 만든 다양한 종류의 옹기들.

시대 따라 수요자 중심의 다양한 종류의 옹기 제작
흙을 딛고 흙 만지며 사니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

옹기를 빚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가마에서 굽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재래식 가마의 경우 3일간 불을 때고, 2~3일간 식히는 과정을 거치는 등 일주일을 꼬박 지켜야 제대로 된 옹기가 만들어진다. 또, 불이 꺼져서 바람이 들어가거나 온도가 급격히 변하면 옹기에 금이 가거나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불을 때는 동안에는 가마 앞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정도로 온 신경을 불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처럼 가마에서 구워지는데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재래식 가마로는 1년에 10번 정도 구우면 잘 구웠다고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2대의 기계식 가마가 도입돼 훨씬 수월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재래식 가마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이 옹기장은 대를 이어온 재래식 가마를 보존하며 전통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은 손자까지 이 옹기장을 따라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이 옹기장은 “어릴 때부터 흙을 가지고 잘 놀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섰다”면서 “이왕 가업을 잇게 된다면 다양하게 생각하고 연구하며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도예과에 입학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방학이나 휴일이면 이곳을 찾아 작품을 만들고 일손을 돕는 등 적극적으로 가업의 계승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성촌 토기에는 종종 옹기 만드는 법을 전수받겠다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짧게는 일주일부터 한 달까지 찾아와 숙식을 하며 배워가는 경우가 있다고. 이 옹기장은 “하지만 짧게 배워서 옹기를 제대로 만드는 것은 무리”라며 “적어도 수년은 옹기에만 매달려야 제대로 된 옹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참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 전통문화인 옹기를 만들고 그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죠. 또, 제 건강의 비결은 흙을 딛고 매일 흙을 만지며 사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든 옹기와 함께 여러분도 언제나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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