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4>
상태바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4>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7.10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 수암골, 낡은 달동네 허름한 골목길‘대박 났네’

드라마‘영광의 재인·카인과 아벨·제빵왕 김탁구’촬영지
생활문화공동체‘마실’만들어 수암골 주제 문화상품개발
1970년대 풍경이 펼쳐지는 곳, 지역의 대표 관광명소로
공공예술프로젝트 서민들의 옛 생활담은 골목벽화 그려

수암골목에 그려진 ‘웃는 아이 삼남매’벽화. 작가는 실제로 이 집에 살고 있던 아이들을 캐릭터화해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벽화마을이 곳곳에 있는데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말이 벽화마을이지 도시의 옛 추억을 대신 기억해주고 있는 달동네로, 언제 재개발로 사라질지 모르는 애환이 깃든 마을이기도 하다. 그런 마을들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다양한 방법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벽화마을의 공통점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작은 마음이 모여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붓과 손길로 초라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동네는 다시 태어난다. 이런 한 동네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암골목길 1번지다. 우암초등학교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가다 보면 청주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달동네가 나타나는데, 청주의 어머니 산이라고 불리는 우암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동이라는 동네다. 이웃 우암동과 더불어 수암골이라고도 불린다. 수동은 해방 직후 중국, 일본에서 돌아온 귀향민과 한국전쟁의 피란민 등이 뒤섞여 마을을 이뤘다. 이때부터 수암골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 빈민가로 꼽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담벼락,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197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1970년대에 재개발, 2000년 초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이뤄졌지만 달동네라는 별명은 사라지지 않은 곳. 이 동네에 2007년부터 골목의 벽마다 그림이 그려지면서 주민들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최근엔 활기가 가득 넘치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벽화그리기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

수암골 입구 관광안내소 앞의 할머니들은 관광객들이 다가오자 환한 웃음으로 반기며 마을소개가 담긴 유인물을 건네고, 체험객들은 그림그리기에 바쁘다.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곳 수암골이 지역의 대표 관광명소로 뜨면서 동네할머니들이 바빠진 이유다.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이주하면서 생겨난 마을로 우암산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수암골이 지역의 명소로 거듭난 것은 지난 2008년 공공예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골목벽화가 그려지면서 부터다. 이 마을은 지저분한 동네 이미지를 벗고 아기자기한, 동심이 살아나는 벽화마을로 거듭났다. 허름한 수암골에 삶의 생기가 돌도록 희망의 색을 입힌 것은 다름 아닌 청주지역의 예술가들이었다. 지난 2008년 봄 이홍원 화백 등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민예총 전통미술위원회 회원작가, 청주대·서원대 대학생 작가 등 10여명이 수암골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기획은 연극인이자 예술가인 이광진 씨가 맡았다. 이들은 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벽화를 그려나갔다. 구름과 학, 소나무 등 십장생과 익살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무채색의 벽이 화사한 아이들의 희망차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가득 찼다. 벽돌이 드러난 곳에는 환한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 먹보아이의 얼굴을 그렸고,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도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3개월 뒤 무채색의 허름한 마을에서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난 수암골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알음알음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수암골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벽화 감상은 청주시내에서 우암초등학교 옆쪽으로 올라오면 바로 수암골 아트투어의 시작점이다. 마을 입구의 삼충상회부터 시작해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인 배우 소지섭, 한지민이 다정한 포즈로 있는 포토존이 있고, 그 위의 골목길에는 다양한 현태의 삶에서 묻어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암골의 한 집 담벼락에는 3남매가 환하게 웃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암골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키우는 이 집에는 3남매가 살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수암골 번영회장을 맡았던 수암골의 터줏대감인 팔순이 넘은 박민영 노인은 마을 입구에서 삼충상회를 운영하며 마을의 변화를 지켜봐온 장본인이다. “당시 전쟁을 피해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은 청주시 상당구 수동 23육군병원(현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일원) 주변에 천막을 치고 살다가 800여m 떨어진 지금의 수암골 일대인 우암산 자락에 간이 판잣집을 짓고 고달픈 타향살이를 시작했지. 달동네라고도 불렀던 이곳 산자락에 빽빽하게 집이 들어서면서 3000명이 넘게 살았어. 지금이야 차타고 쉽게 올라올 수 있지만 옛날엔 리어카도 올라오기 힘든 마을이었지.” 이들은 실향민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로 똘똘 뭉쳐 땅을 공동으로 사들인 뒤 한 지붕 두 가구 형태로 집을 짓고 살면서 내 땅 네 땅 경계도 없이 한 울타리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는 설명이다. 이 마을은 여느 달동네처럼 30여분쯤 골목을 기웃거리면 동네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다. 닫힌 듯 열린 녹슨 철대문, 쓰러질 듯 기대선 담 벽, 대문짝만하게 적힌 ‘근면·자조·협동’이라고 쓰인 표어가 옛 풍경화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산비탈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처음 찾아온 사람들도 길을 잃지 않는 골목길이 있는 곳이 바로 수암골 벽화마을이다. 신기하게도 길들은 어떻게든 서로가 만난다. 따라서 수암골의 매력은 단연 골목길 곳곳에 삶의 풍경이 진솔하게 그려진 벽화다.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된 여자아이는 큰 나무에 기대 숫자를 세고, 쌍둥이 남매는 환한 웃음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다. 전래동화 ‘햇님달님’에 나오는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울상을 짓는다. 관광객들은 익살스러운 벽화에 환한 미소로 연신 웃음꽃을 피운다. 이렇듯 수암골은 우리네 1970년대 삶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풍경과 벽화가 어우러지며 청주시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수암골은 SBS드라마 ‘카인과 아벨’에 이어 KBS의 ‘제빵왕 김탁구’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그야말로 ‘전국에 떴다’는 설명이다. 평일에는 1000여 명, 주말에는 4000~5000여 명이 마을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동네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한 할머니는 “50여 년을 이 마을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는 처음이여. 우리 동네가 텔레비전에 나오고, 벽화마을로 만들더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와”라고 말한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가 빵을 만들던 곳인 수암골 초입의 세트장 ‘팔봉제과점’은 실제 빵을 팔면서 덩달아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며 ‘살맛난다’고 전한다. 취재차 찾아간 이날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빵과 음료수를 사고 있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빵은 요즘의 세련된 빵이 아니라 보리빵, 옥수수빵, 곰보빵 등 큼지막하게 구워 내놓는 빵은 소박하면서도 푸짐하다. 또 수암골 음식점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는데, 드라마 ‘영광의 재인’에서 나오는 ‘영광이네 국수’다. 극 중 김영광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인 영광이네 국수가게는 실제 국수를 판매하는 음식점을 하는데, 사람들이 몰려 성업 중이라는 설명이다.    

수암골은 전체적으로 지대가 높아 청주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주민들은 수암골을 주제로 한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기 위해 2011년 생활문화공동체 ‘마실’을 만들었다. 수암골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광진씨는 사무국장으로서 심부름꾼을 자처했고, 마을 입구에 자리를 마련한 주민들은 ‘수암골 밥상’과 ‘수암골 예술시장’을 마실의 첫 상품으로 내놓았다. 우암산 도토리로 만든 묵과 칼국수, 비탈 밭에서 가꾼 채소로 소박한 밥상을 차렸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의 공예작가들에게 배워 만든 공예품을 관광객들에게 선보였다. 주민들은 ‘마실’을 사회적 기업으로 수암골을 관광상품화 하고, 수익금 등은 공동 관리해 마을발전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주민들 스스로 ‘마실’을 통해 수암골을 더욱 발전시킬 계획이어서 무채색의 허름한 달동네가 희망마을로의 변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00여 가구, 30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던 수암골은 어느새 60가구 100여명의 노인들만 사는 허름한 언덕마을로 변했지만,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사람향기로 가득한 ‘희망마을’을 꿈꾸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