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공예로 5대에 걸쳐 오롯이 한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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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공예로 5대에 걸쳐 오롯이 한 길을 걷다
  • 한관우·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7.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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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통기업 대를 잇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 <4>

지승공예는 종이를 꼬아 엮어서 그릇을 만드는 것으로 일명 ‘노엮개’라고도 한다. 발생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종이로 된 그릇이 많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지승공예는 선비나 스님들이 주로 여가시간에 하던 공예다. 일반인들에 비해 서적이나 한지를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여가 시간에 오래된 고서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종이를 노끈처럼 꽈서 공예품을 만들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종이로 갑옷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를 ‘지갑(紙甲)’이라고 불렀다. 지갑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찰갑 형태의 지갑과 조선 전기에 널리 사용된 지포엄심갑(紙布掩心甲)이 있었다. 지포엄심갑은 엄심갑(掩心甲), 지갑엄심(紙甲掩心), 지엄심(紙掩心)이라고도 불렸는데, 종이와 천으로 조끼 모양을 만들어 가슴과 등을 방호할 수 있도록 만든 갑옷이다. 지포엄심은 태종 6년 때 기록에서 처음 나타나며, 연산군 5년에 이극균이 올린 상소에는 이 엄심갑의 제작 방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최영준 선생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공예와 달리 스님·선비들이 하던 지승공예
‘지갑’기록 등 조선시대 전부터 전해오던 것으로 추측
 문화재청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등재 심사 앞둬  
 “홍성만의 브랜드가 되고, 홍성이 지승의 메카 되길”

또한 지난 2013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30년대 옥중에서 종이를 이용해 직접 만든 발우와 바구니가 80년 만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지승공예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가업 잇는 장인들, 그 네 번째로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승공예를 5대에 걸쳐 계승하고 있는 충남 무형문화재 2호 지승장 최영준(64) 선생을 만났다. “시할아버지께서는 지승공예를 오래도록 계승해오셨습니다. 시할아버지를 모시면서 자연스럽게 지승공예를 접하게 됐죠. 돌아가실 때까지 8년간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옆에서 시중을 들다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지승공예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됐네요.”

최 선생의 시할아버지인 고 김영복 옹(1979년 무형문화재 지정, 1986년 작고)은 서산 부석사 벽허 스님에게로부터 지승공예를 배웠다고 한다. 최 선생은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인 1986년 11월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다. 이후 최 선생은 시할아버지가 그리워 부석사를 찾아 당시 벽허 스님께 배웠던 기록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최 선생은 “시아버지께서도 지승공예를 하셨지만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제가 바로 전수를 받고 무형문화재가 됐다”면서 “한약방을 하시던 시할아버지를 항상 가까이서 도와드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전수를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준 선생이 전승자인 며느리 주혜원 씨, 손녀들과 함께 지승공예를 하고 있다.

지승공예로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먼저 한지를 잘라 새끼를 꼬듯이 물에 적셔서 꼬고, 꼰 종이끈을 반으로 접어 한 올씩 엮어가는 것이다. 과거에는 선비들이 쓰던 고서들을 잘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한지에 글씨가 인쇄된 종이가 판매되고 있어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에 옻칠을 하면 물이 새거나 썩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최 선생은 “예로부터 공예라는 것은 서민들이 주로 하던 것”이라면서 “옹기 제작이나 농요 같은 소리도 모두 서민들이 했지만, 유일하게 선비들이 하던 공예가 바로 지승공예”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승공예는 손 끝 자극이 많이 돼 수지침의 역할을 하며, 치매 예방도 된다”고 말했다.

최 선생은 지승공예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전통적인 모양의 찻상, 화병, 자기 등을 만들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느낌의 가방, 지갑 등도 만들었다. 최 선생은 “어느 날은 한 백화점 명품관에 직접 종이로 만든 손가방을 들고 갔는데, 점원들이 우르르 나와 어디서 구입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면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전통 방식만을 고수하며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지승공예품을 만들었지만 최 선생은 “현대 감각에 맞는 제품들을 현대적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재창조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지승공예로 만들어진 작품 하나하나가 홍성의 명품 브랜드로 탄생할 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최 선생은 지승공예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각 시도마다 제자들을 두고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14명의 대표적인 제자들이 있다는 최 선생은 “일부 사람들은 ‘벌써부터 왜 제자들을 그렇게 많이 키우느냐’, ‘왜 모든 기술을 전부 다 알려주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고 제대로 된 지승공예 전승자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느 곳에 가든 제자들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자 양성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자들도 성품이 다 바르고 스승을 올바르게 따를 줄 알아 귀히 여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자들만 14명이지 지금까지 거쳐 간 제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얼마 전 회갑 때는 제자들이 해외에 보내 줘 여행도 다녀올 만큼, 정말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인들의 감각과 생활패턴에 맞춘 작품들도 제작하고 있다.

사실 지승공예는 다른 분야와 달리 생업과 연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 선생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함을 느끼고, 중요문화재로 등재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현재 최 선생은 지승공예 종목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에 등재할 것인지에 대한 문화재청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지승공예의 전통성, 기술성 등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도 평가하지만, 지역의 여론이나 자치단체의 의지도 중요한 항목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 선생은 “지승공예라는 우리의 중요한 유산을 많은 이들의 관심과 격려로 꼭 중요문화재로 등재해 홍성만의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면서 “홍성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승공예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승공예 작품은 적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5~6개월까지 걸리는 등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옻칠 등 마무리 작업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때문에 작품의 가격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강원도 원주시에서는 최 선생의 작품을 구매해가기도 했고, 괴산 한지박물관, 온양 민속박물관, 안산 종이박물관 등에서도 최 선생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최 선생은 호주 파워하우스 박물관에 지승공예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최 선생은 “지금도 어느 박물관이든 작품을 기증해달라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면서 “우리의 전통이자 아름다운 유산인 지승공예가 널리 알려지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최 선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민들은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중요 문화유산인 지승공예가 제대로 자리 잡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충남 서천에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모시타운’을 개발해 모시를 짜는 이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그것을 활용한 관광자원의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공주에서도 ‘한옥마을’ 안에 공방을 만들어 각종 기능인들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하고 전시, 체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유산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이에 대해 최 선생은 “홍성에도 다양한 분야의 무형문화재와 기능인들이 있는 만큼,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역량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도록 많은 지역민들의 관심과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최 선생의 며느리인 주혜원(42) 씨가 최 선생을 이어 지승공예를 전승하고 있다. 또한 최 선생은 “손녀 2명도 초등학생이지만 열심히 종이를 꼬고 있다”면서 “손녀들까지 5대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전통가업인 지승공예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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