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에서 전국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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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에서 전국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 서용덕 기자
  • 승인 2015.07.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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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소규모 학교가 살아야 지역도 살아난다 <7>

제주시 애월읍 중산간 지대인 납읍리에 유일한 학교인 납읍초등학교는 제주 학교 살리기 운동의 발상지로 불리는 곳이다. 납읍초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납읍리 사장밭(현 금산학교마을)에서 개교했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으로 교사가 모두 불에 타 폐교가 되는 등 근현대사의 아픔을 겪은 학교다.1950년 6월 재개교했으나 1990년대부터는 분교 격하 대상으로 지정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현재는 제주교육청으로부터 제주형 혁신학교인 ‘다디 배움학교’로 지정받는 등 선공신화를 이룬 학교로 평가되고 있다.

제1회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된 제주 납읍초 전경.

납읍초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20여 년 동안 해마다 졸업생 1~3명씩 서울대에 진학해 수재가 많이 배출된 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납읍리는 조선 중기 이후 20여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해 ‘문촌’으로 크게 명성을 떨친 마을이다.1970년대 350명을 웃돌던 납읍초의 학생 수는 이촌향도 현상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점차 줄어들어 1990년에는 98명으로 감소, 1991학년도 분교 격하 대상 학교로 통보 받기에 이르렀다. 납읍리 주민들은 납읍초의 분교 격하는 폐교로 이어지는 길임을 직감하고 학교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납읍초가 사라지면 젊은 세대들이 도시로 떠나며 마을이 붕괴할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1991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댄 끝에 마을 빈집을 수리해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 무상으로 임대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1992년 ‘빈집 무상 임대’를 통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도시민을 유치하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주민들의 노력으로 외지 학생 유치에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줄어드는 학생 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6년에는 납읍리 출신 36명, 타지역 학생 17명 등 전교생 숫자가 53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도달했다.

 

학교 인근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375호인 금산공원(납읍난대림지대)에서 학부모와 주민들을 초청해 공연하는 모습.

빈집 무상임대 사업으로는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느낀 주민들은 반드시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아래 또다시 이마를 맞댔다. 그래서 내려진 결과는 공동주택을 신축해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가정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마침 북제주군(현 제주시)도 ‘돌아오는 농촌만들기’ 사업을 추진했다. 주민들은 이 사업에 붙여 군의 지원을 받아 마을 서하동에 있는 연못 2곳을 매립해 공동주택 2개동 19가구를 지었다. 그것이 1997년의 일이다.주택을 지어 학생을 유치하는 것은 전국 최초였기에 매스컴을 타게 됐고 출향인들도 도와줌으로써 주민들의 노력은 즉시 결실로 이어졌다. 이듬해 학생 수가 83명으로 늘고, 1999년에는 114명까지 증가했다.주민들의 이같은 노력은 ‘문촌’의 전통을 살리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많은 훈장들과 서당이 있어 사학의 중심이었고 애월읍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서 고을읍자를 고집할 정도로 납읍리 주민들의 자존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학문을 익혀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탓인지 그 후손들 가운데엔 공직자가 유난히 많다.

납읍리 김경호(52) 이장은 “납읍리는 교육열이 높고 협동심이 강한데 학교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며 주민들의 자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며 “납읍초가 앞으로도 마을 화합과 발전의 역할을 수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납읍리의 학교 살리기 열정은 공동주택 조성을 넘어 마을과 학교의 다양한 교류로 확산되고 있다. 납읍리 청년회는 어린이 공부방을 운영하고 전교생 대상 임해훈련도 맡고 있다. 노인들이 학교를 찾아 인성교육을 실시하면 학생들은 노인학교 행사에 참가해 공연을 펼친다. 납읍초는 2001년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주최한 ‘제1회 전국 가장 아름다운 학교’ 대상을 수상했고 2009년 ‘다디 배움학교’ 선정된 후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9월에는 공동주택 36가구를 추가로 건설, 외지 학생을 위한 공동주택을 총 55가구로 늘림으로써 올해 학생수는 134명으로 늘었다. 이중 외지 학생이 110명이다. 이제는 안정적으로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어 학생 수를 늘리는데 연연하지 않고 각 지역의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함께 화합하고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에도 ‘다혼디 배움학교’로 지정돼 창의적인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다혼디 배움학교’는 한번 지정되면 4년간 유지되는데 현재 제주도내 5개 초등학교가 선정, 운영되고 있다.

납읍초는 ‘다혼디 배움학교’로 지정됨에 따라 담임교사들은 교무 업무나 행정업무에서 손을 떼고 교과 수업과 학생 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담임교사들이 맡던 업무는 교장과 교감 및 부장 교사, 추가로 배치된 ‘실무사’ 등이 대신 맡는다. 방과후 돌봄교실, 자료구입, 정보공시, 학습기자재 관리, 행사지원 등 교사들이 맡았던 업무는 새로 배치된 실무사들이 수행한다.납읍초 21회 졸업생이기도 한 문명자 교장은 “외부에서 유입된 만큼 이들이 납읍초·납읍리 출신이란 점을 인식하도록 매달 1회 발행하는 학교소식지 첫 장에 납읍리 역사·문화 등 내력을 소개하고 납읍소리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행사에 학생들이 공연하는 등 마을과 학교의 교류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3월부터 소규모학교를 살리기 위해 임대용 공동주택 건립사업 및 빈집정비사업 등을 지원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소규모학교 소재 통학구역 마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도내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는 것에 공감해 소규모학교에 학생이 유입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하며 학교와 마을 살리기에 행정도 지원에 나선 것이다.

 


 

소규모학교 살리기 행정도 지원 나섰다

읍·면 학교 폐교되면 마을도 붕괴

제주도 납읍리는 소규모학교를 살리기 위해 주민 주도로 임대주택을 건립해 학생과 학부모를 함께 유치한 첫 사례이자 첫 성공 사례다. 이후 제주도 전역에서 학교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며 임대주택 건립이 이어졌고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 소규모학교 소재 통학구역 마을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소규모학교 지원을 담당하는 제주특별자치도 특별자치행정국 평생교육과 교육지원분야 고영철 담당은 “1990년대 전국적으로 통폐합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많이 발생했다”며 “도시와 달리 읍면지역은 학교가 사라지면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동창회 등도 붕괴돼 마을 자체가 와해돼 이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많이 제기됐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자구노력으로 공동주택을 건립해 학생과 학부모 유치를 희망하는 마을이 늘어나자 도에서도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해 조례를 제정했다는 것이다.고 담당은 “마을에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사업으로 마을 주민들이 강하게 단합하고 장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효과도 있어서 지원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는 3개 마을, 올해는 4개 마을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구 증가 및 학생 유치에 효과를 거두고 있고 조례가 지정돼 사업비의 절반을 도에서 보조하고 있지만 마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 고 담당은 “공동주택을 건립하기 위해서 억 단위의 비용이 드는데다 사후 관리는 마을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관리상의 문제도 만만치 않아 마을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조례는 소규모학교를 살리기 위한 임대용 공동주택 건립사업, 빈집정비사업 등을 지원하며 도와 마을이 절반씩 사업비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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