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5>
상태바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5>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7.23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추억 새록새록 이어지는 군산근대문화유산 골목길

최근 각 지역마다 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산책로 개발이 한창이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다양한 코스를 만드는가하면 그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에겐 색다른 관광의 맛을 제공하며 지역을 알리고 있다. 전북 서해의 거대한 항구도시 군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쇠퇴한 군산에는 조금 더 독특하고 이색적인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바로 ‘구불길’로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져 여유와 풍요,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여행길이 군산 옛 골목길의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탁류길은 소설 ‘탁류’의 배경인 된 곳으로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할 수 있는 문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코스다. 근대문학을 느낄 수 있으면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잔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1930년대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골목길을 알리는 안내판.

군산의 구불길은 총 11개 코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단강길, 햇빛길, 미소길, 큰들길, 구슬뫼길, 물빛길, 달밝음길, 탁류길, 신시도길, 새만금길, 고군산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답니다. 총 길이는 188.4㎞에 이른다는 것.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자유·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길’에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현장 교육과 근대문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평가다.

1899년 근대적 항구로 개항한 군산 내항의 인근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본식 가옥이 들어선 장미동, 월명동, 신흥동 일대를 돌다보면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묻혀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금강(錦江)하류의 강물은 군산의 아픈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흐린 탁류다. 군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에는 모두 4400여 점의 유물과 자료가 전시돼 있는데, 이중 2250점이 군산시민과 단체들이 기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9월30일 개관한 박물관은 그렇게 시민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졌음을 방증한다. 박물관 3층에 있는 근대생활관에는 근대의 중간 길목인 1930년대를 테마로 그 시절의 풍속과 애환을 담아낸 그 시절의 광경이 펼쳐진다. 인력거방과 잡화점, 술도가, 내항 창고, 군산역 등 건물 11채가 옛 모습으로 재현돼 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묘사되고 있는 군산 만월표 고무신집과 뜬다리 부두, 되로 팔던 성냥개비와 지게, 막대저울 등 눈길을 끄는 자료가 많다. 옥구 구마모토 농장 토지대장과 상공인 회계서류 등도 전시돼 있어 과거로의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군산의 근대사는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함축돼 있다.

장미갤러리.

정숙희 문화관광해설사는 “군산은 인근의 호남평야와 항구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혼란했던 한국사에 시대적 배경지로 자주 등장했지요. 도심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의 형태적 특성을 알고 답사 길에 오른다면 좀 더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군산의 근대문화골목에서 핵심 구간이라면 단연 구불 6-1길이다. 구불 6-1길은 ‘탁류’의 무대가 되는 군산항 주변 구시가지 골목을 헤집는 길로, 탁류길이라고도 불리는데, 첫 출발점인 옛 군산세관 본관건물이 옛 정취를 담고 그 자리에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군산세관 1990년대까지 실제 군산세관 업무를 보던 곳이다. 부속건물은 신사옥을 지으면서 철거됐지만 본관은 외형이 그대로 유지된 채 남아 있다. 유럽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 건축됐다고 전해진다.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옛 군산세관 건물은 현재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면서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표지석.

군산의 과거·현재, 미래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근대역사박물관
학생들 현장 교육 통해 근대문학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
탁류길 첫 출발점, 옛 군산세관건물 옛 정취 담고 고풍스럽게
근대역사문화거리, 우리네 삶 고스란히 담고 영화촬영 명소로

멀지않은 곳에 군산내항 부잔교, 일명 뜬다리부두가 있다.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부두라고 했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총 6개가 만들어져 연 80만 톤에 달하는 우리의 미곡을 수탈해 갔던 곳이다. 밤낮으로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선창의 철도는 녹슨 채로 나란히 잠들어 있다. 지금은 할 일을 잃은 듯 무심하게 길손을 맞고 있는 뜬다리 부두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한 ‘탁류’ 속 주인공 초봉의 슬픈 삶도 무심하게 묶여있는 건 아닐까 싶다. 소설 속의 탁한 금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여전히 탁류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일까, 채만식은 ‘탁류’에서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고 쓰고 있다. ‘탁류’는 군산 옆 옥구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1902∼1950)의 대표작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풍자적 시선 속에 담아 낸 작가다. 탁류는 군산의 미두(米豆)장에서 가산을 탕진한 정 주사와 딸 초봉이가 돈과 애욕에 얽혀 겪게 되는 개인의 비극을 식민지와 자본주의라는 이중적인 상황 속에서 역사와 사회적 안목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미두란 현금 대신 쌀로 가치를 매긴 증권이다. 그걸 사고파는 선물시장이 미두장인데, 일제하 미곡 수탈 항인 군산에선 한몫 잡기 위해 부나비처럼 너도나도 달려들던 노름판이었다.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히는 군산시 장미동의 옛 군산세관 건물. 1908년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지은 이 건물은 고딕과 로마네스크를 섞은 일본식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이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한 구불 6-1길을 걷다 보면 눈에 익은 건물이나 거리가 자주 나타난다. 파란 대문과 붉은 담장이 인상적인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영화 ‘타짜’와 ‘장군의 아들’에 나온 집이라는 것이 동네주민들의 설명이다. 키 작은 가로수가 늘어선 낡은 골목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남녀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골목으로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 곳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조금은 버거운 듯 버티고 있는 건물들의 흔적은 이제 우리 자취의 일부가 되어 먼지 뽀얀 세월과 함께 남아 있다. 그렇게 구불 6-1길은 굴곡 많은 우리네 삶을 닮아 있다. 그래서 군산은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문화의 보고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곳이다.

돈은 없었지만 감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깨끗이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다녀 ‘불란서 백작’으로 불렸던 작가 채만식. ‘내성적 성격에 외곬스런 면까지 지녀 폭넓은 교우관계를 갖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남의 집에서 식사할 때는 수저를 닦아먹을 정도로 결벽했다’는 그는 ‘생전에 10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는 것이 후배문인들이 전하는 말이다. 노후성 폐결핵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구불1길로 향해야 한다. 금강 제방을 따라 18.7Km나 이어진 길, 그 길에 채만식 문학관이 있다. 채만식문학관 1층 전시실에는 그의 치열했던 삶의 여정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가난과 고독, 질병과 싸우면서도 시대상을 고발하고 풍자로 사회에 맞서던 그도 결국 일제 말기에 이르러 시대와 타협하고 만다. 이 무렵 내놓은 작품은 친일소설로 분류되고 있으며, 해방 후 채만식은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했다. 문학관 주변, 콩나물고개를 상징하는 둔뱀이 오솔길을 걸으며 금강하구언의 일몰이 인생의 고단한 삶을 안고 저문다. 스스로 ‘민족의 죄인’이라 불렀던 채만식의 지난했던 삶의 여정을 껴안고 그렇게 금강에 비치는 석양빛은 저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