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 ‘결성농요’의 명맥 이어가는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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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리 ‘결성농요’의 명맥 이어가는 장인
  • 한관우·장윤수 발행인
  • 승인 2015.08.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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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통기업 대를 잇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 <6>

결성농요 예능후보자 최용식 씨

결성은 예로부터 농업과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며,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일노래’도 함께 발달했다. 본래 ‘결성농요’란 결성면 일대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던 모든 일노래를 총칭하지만, 현재 전승되는 결성농요는 1989~1990년에 문화재청에서 추진한 ‘결성지역 향토민요 조사’에서 발굴된 자료로, 결성면 성남리와 금곡리 일대에서 전하는 농요를 재구성한 것이다. △용신제 △모내기 △건쟁이 △뚝막이 △아시매기 △쉴참놀이 △만물 △행진 △마당두레놀이 등 모두 아홉 마당으로 구성된다. 그중 일노래는 △모내기 △김매기(건쟁이) △뚝매기(가래질) △초벌(아시벌)매기 △지게놀이 △만물매기의 여섯 마당에서 불린다. 결성농요는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96년 11월 30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최용식 씨가 결성농요 중 모심는 소리인 ‘어럴럴럴 상사리’를 부르고 있다.

농업과 문화 발달 더불어 ‘일노래’도 함께 발달해
1989년 발굴 이후 대통령상 수상 등 재빠른 발전
일본·중국·필리핀 등 해외에서도 큰 관심 줄 이어
생계와 별개인 문화유산 농요 보존 ‘주어진 숙제’

충남 무형문화재 제20호 지정과 동시에 예능보유자인 고 최광순, 최양섭 씨와 후보자로 고 최홍식, 고 정정수, 장성철 등 5인이 지정됐다. 또한 KBS TV ‘국악춘추 결성농요 한마당’ 출연을 비롯해 중요 행사 100여 회 공연에 이어 민속촌에서 진행됐던 국제행사인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축제’에 세계 10개국 대표단과 함께 참가한 바 있다. 또 1997년 10월 11일 일본의 초청으로 일본 견산시민문화회관에서 ‘국제민속예능대회’에 한국, 필리핀, 일본 등 11개 단체가 출연한 가운데 결성농요가 구성진 연기로 대회를 완전 리드하는 쾌거를 떨치고 돌아왔으며, 2차 초청으로 10월 25일과 26일 이틀간 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순으로 국제민속예능 페스티벌에 출연해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성농요를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노력한 ‘결성농요보존회’의 역할이 컸다. 그 가운데에서도 초창기부터 연습과 공연에 함께 참여하며 지금까지도 결성농요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최용식(78) 씨를 만났다. “초대 결성농요보존회 회장이셨던 김청규 회장님이 제 음정이 좋다면서 꼭 결성농요 공연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셨죠. 당시 저는 집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집을 다 지은 뒤에 같이 하자고 했고, 한 달이 지난 뒤부터 연습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난 1989년 당시 한국농민요보존회장이었던 이소라 문화부 문화재 전문위원이 직접 농민요를 순회 채록하던 중 결성의 모심는 소리인 ‘어럴럴럴 상사리’, 논매는 소리 ‘얼카덩어리’, ‘두레소리’ 등을 이 지방에서 자생한 훌륭한 농요로 고증·발굴함과 동시에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결성농요 연습과 공연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최 씨도 당시 연습과 공연에 참여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결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학기가 시작되면서 방해가 될까봐 결성고등학교로 옮겨 연습을 하게 됐죠. 고등학교는 운동장이 건물보다 아래쪽에 떨어져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6~7개월 연습을 한 뒤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게 됐는데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결성농요 공연 모습.

이후 결성농요는 전국은 물론 해외를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가게 됐는데, 최 씨는 “타 지역에 공연을 나가서 실수할까봐 하는 점이 제일 걱정이었다”면서도 “공연을 하면 악기도 함께 연주를 하기 때문에 항상 흥겨워 즐거운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결성농요의 발자취와 함께해 온 최 씨는 지난 2008년 예능후보자로 등록됐다. “현재 결성농요보존회에는 예능보유자 2명, 예능후보자 5명, 이수자 3명이 있고 저도 후보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보유자가 두 분 더 계셨는데 작고하셨죠. 때문에 지금의 후보자 중 한 분이 보유자 신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보유자가 되기 위해선 후보자 자격으로 만 4년이 지나야 신청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5년이 되는 작년에 다시 신청을 했는데, 법령이 바뀌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답니다.”
최 씨는 “보유자를 늘리기 위해 보존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제도가 바뀌게 되면서 등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후보자들의 의욕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 법령이 바뀌어 보유자가 된다고 해도 노래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소용없는 일이니 하루 빨리 조속한 대책이나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결성농요를 하며 가장 즐거웠던 추억 한 가지를 떠올렸다. “수 년 전에 한 대학교에서 대학생 20여 명이 일주일간 이곳에 와 먹고 자며 농요 전수를 받으러 온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일주일간 열심히 소리를 배우고 돌아가는 마지막 날, 각자 신명나게 노는 놀이 한 마당을 열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습니다.” 또 최 씨는 최근 홍성역사인물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준비하고 연습해 공연한 ‘상여소리’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손꼽았다.

“결성농요는 익히 잘 알려졌기 때문에, 조금 더 색다른 것으로 상여소리를 준비했는데 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상여소리 하는 사람이 목이 참 좋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홍성은 물론 갈산, 해미, 서산 등 각지에서 풍물이나 소리를 하는 강사들이 찾아와 배우려 하고, 군에서도 주민자치센터에 결성농요와 상여소리를 개강해 강습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처음에 50주 강습을 부탁했는데, 저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절반인 25주만 하고 나머지 25주는 조광성 회장님이 강습을 하고 있죠.” 이처럼 소리에 타고난 소질을 보이는 최 씨는 본래 전문 소리꾼이 아니었다. 지역 내 한 상회에서 상업활동을 하며 생계에 전력했고, 20여 년 간은 농사에 전념하던 농사꾼이었다. 물론 취미가 있어 풍물놀이를 즐겼긴 하지만 말이다. “결성농요 예능보유자나 후보자들을 보면 최 씨들이 참 많습니다. 대부분이 일가친척들인데 같은 피가 흘러 그 끼가 이어지고 있지 않나 싶네요.” 최 씨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결성농요가 계속 계승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최 씨는 “결성농요의 명맥을 후계자들에게 전수해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를 물려받을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밝혔다. “결성농요는 반드시 이어져야 하고 지켜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입니다. 그럼에도 생계와 연관이 없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이것에만 전념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또 결성면민들만 참여해선 계속 이어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때문에 관내에 거주하는 지역민 중 결성농요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고 전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참여하거나 지원하고 있는 인원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초창기 대통령상을 수상할 당시만 해도 결성농요보존회 회원은 150여 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그 인원이 줄어 68명에 그치고 있다. 최 씨는 “타 지역에서라도 결성농요에 관심이 있고 전승하고 싶다는 이들이 찾아온다면 얼마든지 가르쳐주고 전승해 후대에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요량이 있다”고 밝혔다. “결성농요는 생계와 별개이긴 하지만, 1년에 20회 정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젊은이들은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 찾아와 함께 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처럼 결성농요는 보존회원들의 노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가고 있으며, 현재 결성농요보존회 사무국장인 최덕수(64) 씨는 결성농요 예능보유자였던 고 최광순 씨의 아들로 가업을 계승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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