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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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3〉
  • 조현옥 전문기자
  • 승인 2015.08.27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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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보내는 공소行 편지
홍동면 운월리 공소.
홍동면 운월리 공소.

공소, 신자들의 애경사와 신앙을 함께 키워내는 곳
사목을 하는 사제 주거 않는 ‘평신도들의 믿음살이’
교회 모습으로 시작 건물을 만든 전형적 성당 전신


비가 내립니다. 언제고 저의 길을 함께 걸을 미래의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던 6월 말경 그동안의 밀린 일들을 마무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이고 걷고 싶어 이것저것 찾다가 집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걷다가 다시 그날로 돌아 올 수 있는 도보 여행을 생각해냈습니다.

여행이요? 여행이랄 것도 없습니다. 작은 배낭 하나에 물 두병, 초콜릿 바 두 개, 새콤 달콤 청포도 사탕 3알을 넣고 마냥 걷는 것. 가다가 만나는 사람들의 정경과 산과 들의 풍경, 작은 마을에 멈춰 물도 마시고 자장면도 사먹고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이야기도 나누다가 어두워지면 돌아오면 좋겠지요. 문득 예산 신종리에 있는 여사울 성지가 떠오르더군요. 그곳은 제가 아는 선배의 친할머니가 시집오기 전 살았던 친정동네랍니다.

그거 아세요? 그 할머니가 글쎄 90이 넘으셨다합니다.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생활을 한 그분의 친정얘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전통적 유교와 서양의 종교가 한 마을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공존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듣고 싶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몇 번 할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물 한 병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초콜릿 바와 사탕을 분홍배낭에 챙겼겠지요? 허 참, 새벽 5시로 알람을 맞춰 놓고 자리에 누워 걸어갈 코스를 슬슬 정리하노라니 그냥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입니다. 우선, 얼마 전부터 2시간가량만 걸으면 무릎이 아파오던 터라 과연 하루 종일 걸을 수 있을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로는 그곳을 잘 찾아가겠지만 걸어서 길을 찾아 갈 수 있을지 장담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파리 노틀담 성당.
프랑스 파리 노틀담 성당.

아침이 밝았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삼성마트에서 물 한 병을 더 샀습니다. 혹시나 가게가 없을까 걱정이 되었지요. 그대도 나중에 아시겠지만 저는 치마를 주로 입습니다. 해서 긴 치마에 등산남방을 입고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 때 썼던 기념 모자를 쓰고 배낭을 짊어진 모습으로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등굣길이 복잡하지 않은 홍남초등학교 길을 지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가시연꽃이 피던 역재방죽 길에서 왼쪽으로 틀어 롯데마트를 지나기까지 40분이나 걸렸습니다.

혹시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해 마냥 큰 길만 따라 걷기로 정했습니다. 혼자 걷는데 위험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금마로 가는 길과 외곽도로가 만나는 지점까지 나아가는데 아침햇살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1시간을 걸은 것입니다. 금마면 장성리 논 들녘을 만나니 만감이 교차해 쉬고 싶은 유혹이 들었으나 1차 목표인 ‘죽림리 공소’에서 휴식을 취하겠다는 생각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 참 그대에겐 ‘공소’가 생소하겠군요. 도회지에 사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생경한 말일 테니 잠깐 설명해드릴까 합니다. 우선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가톨릭 교리서에 따르면 ‘교회(敎會)’란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으로 ‘불러 모은’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성체)으로 양육되어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신비체)이 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조금 어렵지요? 한 마디로 ‘교회’란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건물인 ‘성당’과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있는 노틀담성당은 ‘성당’인 것이지요.

거기에 그리스도 신자들이 모여 교회를 이룹니다. 뭐, 초기엔 건물보다는 이렇게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있어 오다가 비가 오거나 추워지니 차츰 건물을 짓고 모이게 되었다고 보면 되겠지요? 그럼, ‘공소’와는 뭐가 다르냐고요? 글쎄요,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공소’는 ‘교회’의 모습으로 시작 되다가 건물을 만든 전형적인 성당의 전신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00여 년 전, 박해를 피해 다니던 천주교 신자들이 깊은 산 속에서 화전을 일구며 옹기를 구워 팔면서 이루기 시작한 교우촌 입니다만, ‘공소 집’ 또는 ‘강당’이라고도 불렸습니다.

1890년대 말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늘어난 외국인 선교사와 원조 덕분에 건물을 짓게 되면서 성당이 생기게 되었지요. 성당의 수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시골마을엔 아직도 공소가 존재하고 신자들의 애경사와 신앙을 함께 키워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공소에는 성당처럼 사목을 하는 사제가 주거하지는 않습니다. ‘평신도들의 믿음 살이’라고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관할 사제의 사목을 받고 있지요.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성당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감실’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대를 생각하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만큼 걷다보니 이 여행이 어쩌면 그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대를 위해 사진을 찍고 길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도중에 만난 어려움과 고통, 기쁨과 감사를 기억하고 떠오르는 싯귀를 또박또박 들려드리며 흥얼거리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대도 사람을 그리워하고 마을을 산책하며 또 다른 그대를 그리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막 죽림리 공소로 접어듭니다. 다시 쓸 때까지 그대의 영혼이 건강하시길.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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