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집의 손맛, 사회적 기업으로 이어가는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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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의 손맛, 사회적 기업으로 이어가는 장인
  • 한관우·장윤수 기자
  • 승인 2015.10.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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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통기업 대를 잇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 <9>

 

▲ 담양 전 씨 종가 종부 전희영 씨가 고추장을 살펴보고 있다.


담양 전 씨 종가음식 간장·고추장·된장 등 명맥 이어
찹쌀고추장보다 제조가 까다롭고 어려운 보리고추장


문중의 큰집인 종가에는 가문을 대표하는 맛이 이어져오기 마련이다. 각 종가는 고유의 독특한 손맛이 남아있는 김치, 떡, 국수, 장류 등을 수 백 년에 걸쳐 전수해오고 있다. 우리 고장에도 이러한 손맛을 이어오는 종가가 있다. 구항 거북이마을에 있는 담양 전 씨 종가가 바로 그곳이다. 현재 구항 거북이마을에서 농어촌인성학교와 농업회사법인 땅과바다 대표, 내현권역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병환(61) 씨와 아내인 종부 전희영(56) 씨는 담양 전 씨 종가음식으로 보리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장류, 도화주 등 발효음식의 손맛을 이어오고 있다.

“보리고추장은 우리가 흔히 먹는 찹쌀고추장에 비해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찹쌀고추장의 경우 찹쌀가루로 풀을 쒀서 메주가루, 고춧가루, 조청, 엿기름 등과 섞은 뒤 숙성시키면 바로 먹을 수 있죠. 그러나 보리고추장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보리고추장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보리를 발효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담양 전 씨 종가의 전수 기술이다. 발효시킬 때 사용하는 메주가루와 콩가루의 비율을 정확히 맞춰야만 적절히 발효가 되고 제대로 된 보리고추장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리고추장은 가을에 첫 서리가 오고 나서 바로 담는 것도 특징이며, 겨우내 저온 발효를 시켜 춘분이 지나 봄이 되면 먹기 시작한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하다 보니 보리고추장은 보편적인 음식이 아닌 독특하고 특별한 음식이 됐다. 담양 전 씨 종가에서는 그런 점을 활용해 일부 매니아 층과 마을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상품화에 나섰는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는 관내 주요 기관 등에서도 선물용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종가에서는 보리고추장뿐만 아니라 간장이나 된장, 절임류 등 다양한 장류도 만들고 있다. 담양 전 씨 종가에서는 쌀을 발효시키면 술이 되고, 보리를 발효시키면 고추장, 콩을 발효시키면 된장이 되는 발효과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일명 ‘쥐눈이콩’이라고 불리는 서목태를 메주로 띄워 봄에 5년 이상 묵은 천일염으로 장을 담그는데, 이는 ‘약으로 쓴다’고 해서 ‘약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장은 빛깔이 굉장히 검은 것이 특징이며, 이 색깔로 인해 조림류에 주로 사용하는데 노인의 기력 회복을 위해 많이 사용돼 왔다. 또 예로부터 소갈병(현재의 당뇨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종가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기업에 기술을 전수해
전통은 머무르지 않고 현대에 발맞춰 발전해 나가야 


담양 전 씨 종가에서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 등 장류의 제조 방법을 마을 부녀자들이 세운 사회적 기업에 전수해 상품화에 나섰다. 사회적 기업에서는 연간 3톤가량의 장류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수익이 수 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밖에도 담양 전 씨 종가에서는 일명 장군주라고도 불리는 ‘도화주’를 만들고 있다. 주 원료는 쌀과 찹쌀인데 각각 5:5의 비율로 넣고 두 번을 빚는 이앙주다. 일반적인 술은 밀기울 누룩을 사용하는 반면, 도화주는 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화주에 들어가는 복숭아 꽃은 봉오리를 따서 말린 것으로 꽃자루와 꽃을 함께 넣어 술을 담그면 복숭아보다 향이 더 강하게 나게 된다. 또 독특한 것은 도화주는 어느 정도 마시다보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도화주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한산 이 씨 가문의 토정 이지함이 ‘집안의 미래를 점쳐보니 술을 너무 마셔 문제가 된다’며 제조법을 비방으로 전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도화주는 현재 판매하지 않고, 담양 전 씨 종가 9대조 조부 석천공 전일상 장군의 춘추제향으로부터 모든 제사와 성인식, 폐백 등의 제주와 의례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바지 음식이나 선물 등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전병환 씨는 “전통을 중시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집안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라며 “집안의 고유한 것을 이어감으로써 우리만의 정체성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 기업 기반으로 이어져 가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찹쌀고추장을 사먹을 때, 우리는 보리고추장의 향수를 가진 일부 사람들을 노려 틈새시장을 공략했죠. 그들은 보리고추장을 통해 고향의 맛을 느끼고 싶어 하지만, 만들기가 까다롭고 복잡하며 번잡해 맥이 끊어졌고, 담그는 곳이 많지 않은데 우리가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략이 적중했고, 나름대로 값어치 있는 상품으로 자리매김해 지금까지 15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 향수를 자극하는 담양 전 씨 종가음식인 보리고추장.

이처럼 사회적 기업으로 이어진 담양 전 씨 종가의 전통음식은 이제는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자 자랑이 되고 있으며, 17명의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전 씨는 이와 관련해 “전통 속에 갇혀 있으면 헤어나지 못한다”면서 “맥을 이으면서 시대를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정된 제도와 새로운 변화 사이에서 전통의 맥을 어떻게 잇고, 현대와 어떻게 조화를 맞춰갈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만들기만 하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후손들은 박물관에서나 ‘옛 사람들은 이런 것을 먹고 살았구나’ 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학교 급식에도 우리의 전통 음식들이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릴 때 맛을 알고, 그 맛에 대한 향수를 갖게 되면 성인이 돼서도 그 맛을 찾게 되거든요. 이것이 전통이 세대를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전 씨는 이밖에도 발상의 전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새우젓도 요즘 사람들은 짜다고 많이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덜 발효된 새우젓 또는 저염 새우젓을 개발하거나 햄버거, 토스트용 새우젓 등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야겠죠. 김도 마찬가집니다. 두툼하게 해서 계란프라이와 함께 먹는 김이나 토스트용 김 등도 생각해야지, 꼭 쌀밥에 김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벗어나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집니다. 아이들에게 맵고 짠 김치만 주니까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냄새가 안 나고 덜 맵고 덜 짠 김치를 개발하는 등 발상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죠.”

전 씨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전통의 맥은 끊어지게 돼 있다”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장인정신이 깃든 영역은 발전 방향이 정해져있다고 봅니다. 대장장이든 옹기장이든 우리가 전통방식 그대로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에 발맞춰 새로움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이죠. 미래를 생각하며 현대에 발맞춰 나갈 때, 우리는 우리가 이어온 전통을 후세에 온전히 전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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