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빼앗긴 우리의 고유지명 되찾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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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빼앗긴 우리의 고유지명 되찾은 곳
  • 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15.11.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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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 기획-일제에 빼앗긴 고유지명 되찾기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지난 1996년부터 시작된 일제에 빼앗긴 지명 찾기와 고유지명 되찾기 운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을 꼽는다면 경상남도와 충청북도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도로와 마을이름 등을 순수 우리말로 변경하는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결과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경남 진주시는 지난 2006년 가로명에 관한 조례와 지적명 변경 기초작업을 실시, 간선도로 22곳의 이름을 순수 우리말로 변경하고 표지판도 교체했다. 기존 상당수 도로명이 일본식이거나 한자 또는 외래어로 표기돼 있고 일부는 역사적 사실과도 달라 지역 특성에 맞게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진주시는 ‘봉황이 앉아있다 날아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상봉동 ‘비봉로(飛鳳路)’를 ‘봉황로’로, 촉석루~진주교간 ‘ 인사로(仁寺路)’는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논개로’ 로 각각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남 함양군은 일제 때 없어진 마을 이름을 되찾기 위한 ‘마을 옛 이름 찾기운동’을 전개, 192개 마을의 이름을 찾았다. 지난 2003년부터 각종 문헌과 주민 증언 등을 통해 군내 11개 읍·면, 253개 자연마을 가운데 일제 때 이름이 사라진 192개 마을의 옛 이름을 찾아낸 것. 또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기존 마을 표지석에 행정명과 옛 이름을 함께 새겨 넣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식 또는 한자식으로 표기된 195개 마을이름을 우리말로 고친 셈이다. 마을 뒤에 대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진 함양읍 죽곡(竹谷)마을은 ‘대실마을’로, 일제시대 관청이 있었다는 함양읍 관동(官洞)마을은 마을 터를 잡을 때 나무에 갓을 걸었다고 해 ‘갓거리마을’로 바꿨다.

 

 

▲ 경남 남해군 마을표지석. 마을 입구에 표지석과 함께 마을의 유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시장·군수 명칭변경 승인 광역단체장에게 보고토록 요건 완화
경남 지자체, 우리말 길·마을 이름 짓기 활발… 정겨운 표지석
경북 울진군 서면을 금강송면,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지명변경
부산 강서구 천가동을 가덕도동으로 변경에 주민들 90% 찬성


경남 마산의 경우 고유지명 되찾기를 위해 김정대 경남대 교수 등 8명으로 지명위원회를 구성, 187개소에 대한 조사를 펼쳐 고유지명을 확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은 경남 남해군이다. 남해군의 각 마을 입구에는 마을 이름과 함께 순 우리말로 된 옛 지명이 적힌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옛 지명들은 마을의 형성 유래와 지형, 지세 등을 감안해 지어진 것으로 선조들의 문화와 풍속, 지혜, 애환 등을 느낄 수 있어 남해를 찾는 관광객들과 출향인들에게 정겨운 느낌을 안겨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남해읍 광포(廣浦)마을은 마을이 넓다는 뜻의 ‘너웃개마을’로 고쳤다. 옛 이름인 ‘너웃개’는 옛날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해서 불려졌다. 순 우리말로는 ‘넓은 개’, ‘너른 개’, ‘넓은 포구’라는 뜻이다. 남해읍 내금(內金)마을의 옛 이름은 ‘당넘’으로 당집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 인근의 야촌(野村)마을은 마을 지형이 풍수설에 의해 떠 보이고 물결이 이는 것 같다 하여 ‘사부랑(娑浮浪)’이라 했다가, 들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 들 가운데의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들사부랑마을’로 고쳤다. 고현면 갈화(葛花)마을은 가는 곶 모양으로 돼 있어 ‘갈곶이’로도 불린다. ‘갈곡’, ‘갈고지’라고도 했으며 갈화마을은 음만 따 왔을 뿐 원래 이름 뜻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경주 최 씨들이 피난처로 찾아들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남해읍 봉성(鳳城)마을의 옛 지명은 ‘새방’이다. 마을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그 모양이 ‘나뭇가지 위에 얹힌 새집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같은 우리 고유의 마을이름들은 일제강점기 때 행정조직 등을 일본식 한자로 개편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한때 우리말 지명 되찾기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 일제 때 바뀐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경북 울진군 서면과 원남면의 명칭이 각각 금강송면과 매화면으로 바뀌었다. 서면과 원남면의 유명 관광지인 금강송 군락지와 매화나무 단지가 아예 지명이 된 것. 설문에 응한 서면 주민 96%, 원남면 주민 72%가 마을의 이름을 바꾸는 데 찬성했다. ‘지명이 갖는 역사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묻혀버렸다는 설명이다. 경북 고령군도 고령읍의 이름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고령읍 일대는 1600여 년 전 대가야의 도읍이다. 고령군은 이런 대가야의 역사성을 브랜드화해 관광산업 등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복안이다. 고령군 관계자에 따르면 “의견조사에 참여한 주민들 역시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전폭적으로 동의(83.1%)했다”고 전했다.

부산시 강서구는 천가동을 가덕도동으로 지명을 변경했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잘 알려진 가덕도는 대구와 숭어 등 해산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부산의 자랑이다. 가덕도가 속해 있던 천가동은 외부인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다 주민들 대다수가 명칭 변경에 찬성(90%)해 지명이 변경된 경우다. 더욱이 섬 이름을 지명으로 쓰면 인지도 또한 높일 수 있다는 게 부산 강서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미 2009년 포항시 대보면은 해맞이로 유명한 호미곶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호미곶면’으로 이름을 바꿨고, 강원도 영월군은 한반도 모양을 닮은 선암마을이 있는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김삿갓의 고장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한바 있다.

한편 전남 순천시 왕조2동의 경우는 본래의 지명을 되찾은 경우다. 지난 1996~1999년까지 택지개발로 시행한 ‘왕지지구’가 왕조2동 지역 내에 포함돼 있으나 그동안 도로표지판에는 오히려 왕조2동을 제치고 표기돼 왔다. 이곳의 주민들은 ‘왕지이름찾기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왕조2동’ 지명으로 표기해줄 것을 건의하는 등 시민들의 요청이 잇따르자 순천시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왕지지구’를 ‘왕조2동’으로 변경하는 행정절차를 마치고 국도변 2개소와 택지 내 도로 2개소 등 4곳의 도로표지판을 모두 수정했다. 이밖에도 일제시대 잘못 붙여진 이름이 지금껏 사용되는 지역은 부지기수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전봉준 장군의 옛 집이 있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梨坪面)은 동진강으로 배가 드나든 들판이라 해서 ‘배들’이라 불렸는데, 일본인들이 먹는 배로 착각해 붙인 이름이 쓰여 지고 있는 곳. 인천 남구의 수봉공원은 일본인들이 수봉(壽鳳)이라고 고쳤으나 원래는 서해 쪽으로 하천이 자리 잡아 눈이 쌓이면 물이 불어나 봉우리가 비친다는 의미로 수봉(水峯)공원이라고 부른 만큼 옛 이름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남 여수시 돌산읍 두문리(杜門里)의 본래 이름은 두문리(頭門里)다. 두문리는 ‘바다로 가는 첫 마을’이라는 의미로 당시 이 마을은 주변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이었으나 일제의 강제적 지명 변경 이후 못사는 마을로 전락했다. 심지어 올바른 옛 지명을 되찾았지만 주민 스스로가 일본식 이름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북 익산시 춘포면(春浦面)은 일본인 지주 이름을 따서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다 1996년 ‘봄나루’란 옛 뜻을 살렸지만 아직도 마을 교회와 가게 등에서 ‘대장’이란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전주시 동산동(東山洞)은 원래 ‘쪽구름’ ‘조각구름’ ‘편운리(片雲里)’ 등의 운치 있는 이름으로 불렸던 동네였으나 일제시대 일본인 대지주의 농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명칭이 붙은 곳이다. 학자들과 사회단체 등이 나서 마을 이름을 바꿔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주민들이 “인지도가 높은데 왜 그러느냐”며 반대해 수십 년째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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